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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중복상장 가이드라인이 공개되면서 신용평가사들도 관련 기업들의 재무 리스크 점검에 나섰다. 규제의 목적은 모회사 일반주주 보호와 기업가치 훼손 방지에 있지만, 프리IPO(상장 전 지분투자)를 유치한 기업들에는 예상치 못한 신용 리스크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상장이 지연되거나 무산될 경우 재무적투자자(FI)의 투자금 회수 요구가 현실화하면서 대규모 현금 유출과 차입 부담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이달 시행을 목표로 '중복상장 가이드라인'과 거래소 상장·공시규정 개정안을 공개했다. 이번 가이드라인에는 물적분할 자회사 IPO에 대한 주주동의 의무화가 담겼다. 상장사가 물적분할로 설립한 자회사를 다시 상장하려면 모회사 주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주주동의를 거치지 않으면 투자자 보호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다.
자회사 상장 과정에서 모회사 일반주주 권익이 훼손되는 이른바 '쪼개기 상장'을 막겠다는 취지다. 향후에는 모회사와 자회사 간 사업 중복 여부, 일반주주 보호방안, 상장 필요성 등에 대한 심사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평사들은 규제의 부수적 영향으로 일부 기업들의 자금조달 유연성이 낮아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프리IPO를 통해 대규모 자금을 유치한 기업들은 상장을 전제로 한 계약 구조가 많아 IPO 일정이 틀어질 경우 재무적 부담이 예상보다 크게 확대될 수 있다.
프리IPO는 기업이 상장 전 FI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통상 계약에는 일정 기간 내 IPO를 완료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포함된다. 약속한 시점까지 상장이 이뤄지지 않으면 FI는 보유 지분을 기업이나 모회사에 되팔 수 있는 풋옵션을 행사하거나, 제3자 매각을 요구하는 동반매도청구권(드래그얼롱)을 행사할 수 있도록 설계되는 경우가 많다.
증시 침체나 기업 실적 악화 등 시장 환경 변화가 IPO 무산의 주요 변수였다. 그러나 앞으로는 중복상장 규제 강화로 상장 심사 자체가 까다로워질 가능성이 생기면서 계약상 리스크가 확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FI가 회수권을 행사하면 기업이나 모회사는 투자자가 보유한 지분을 직접 매입해야 한다. 대규모 현금을 즉시 마련해야 하는 만큼 자체 자금이 부족한 기업은 추가 차입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이는 차입금 증가와 순차입금 확대, 부채비율 상승 등으로 이어져 재무안정성을 훼손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상환 부담은 투자 원금에 그치지 않는다. 프리IPO 계약에는 연 5~10% 수준의 내부수익률(IRR)을 보장하는 조항이 포함된 사례도 적지 않다. IPO가 무산돼 풋옵션이 행사되면 원금에 약정 수익까지 더해 지급해야 한다. 실제 상환 규모가 최초 투자금을 크게 웃돌게 된다. 신평사가 단순한 현금 유출보다 신용도 저하 가능성에 주목하는 이유다.
실제 사례도 이미 나타나고 있다. SK에코플랜트는 최근 프리 IPO에 참여했던 FI들의 지분을 전량 매입했다. SK에코플랜트가 원금에 7% 중반대 IRR을 얹은 1조500억원을 돌려주는 조건이었다.
이 외에도 HD현대로보틱스, SK플라즈마, LS MnM 등 프리IPO 투자 유치 이력이 있는 기업들도 향후 규제 환경 변화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대상으로 거론된다.
신평사들은 이 같은 계약 구조가 회계상 금융부채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상환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재무지표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 수 있어 관련 기업들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한 신평사 관계자는 "프리IPO 계약에 따른 상환 의무는 회계상 금융부채로 인식되는 사례가 적지 않아 차입 부담 확대와 재무안정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며 "중복상장 규제 강화로 IPO 성사 가능성까지 함께 점검해야 하는 만큼 조건부 자금조달 기업들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장에서는 이번 규제가 장기적으로는 프리IPO 계약 관행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는 IPO 실패 시 FI가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하는 강한 의무조항이 일반적이었지만, 앞으로는 규제 환경 변화까지 기업이 통제하기 어려운 만큼 계약 구조도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IPO 완료 시한을 보다 유연하게 설정하거나 옵션 행사 요건을 완화하고, IPO 외 제3자 매각이나 전략적투자자(SI) 유치 등 다양한 회수 방안을 함께 명시하는 방식으로 계약이 바뀔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프리IPO 계약에서도 IPO를 절대적인 회수 조건으로 보기보다 다양한 엑시트 방안을 함께 설계하는 방향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며 "단기적으로는 일부 기업들의 재무 부담이 커질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보다 현실적인 계약 관행이 자리 잡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