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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자산운용사들의 전주 사무소 설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와의 접점을 넓히고 위탁운용사 선정 과정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명분이다.
다만 운용업계 내부에선 전주 사무소가 실질적인 운용 거점이라기보다 가점 확보를 위한 최소 요건에 가까운 만큼, 본사 내 비핵심 인력 재배치와 맞물릴 수 있다는 뒷말도 나온다.
12일 운용업계에 따르면 최근 주요 운용사들은 전주 사무소 개소를 준비하면서 현지 채용에 나서고 있다. 전담 인력을 전주에서 뽑고, 서울 본사의 운용·마케팅 조직이 상시 협업과 수시 지원을 맡는 구조다. 국민연금 및 지역 기관과의 대면 접점을 늘리되, 실제 운용과 상품 관련 업무는 본사와 연계해 처리하겠다는 구상이다.
운용사들이 전주행에 나선 배경에는 국민연금 위탁운용사 선정 기준 변화가 있다. 국민연금이 기금운용본부 소재지에 업무 거점을 둔 운용사에 별도 배점을 부여하기로 하면서다. 국내 최대 기관투자가와의 위탁 경쟁에서 1점이라도 뒤처질 수 있다는 부담이 커지자, 주요 운용사를 중심으로 전주 사무소 설치가 사실상 선택지가 아닌 과제가 됐다는 평가다.
다만 상당수 운용사는 실제 인력 배치에 앞서 사무실부터 확보해 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연금과 매일 대면 협의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운용과 리서치, 매매 등 주요 업무가 서울 본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만큼 전주에 직원을 상주시켜도 당장 맡길 업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사무실을 마련하고도 상주 인력을 두지 않거나, 국민연금과 일정이 잡힐 때만 본사 인력이 내려가는 형태로 운영한 곳도 상당수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렇다고 사무소를 장기간 비워둔 채 유지하기도 어렵다. 국민연금 대응과 지역 금융 생태계 조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만큼 단순 임차 공간을 넘어 최소한의 상주 인력과 업무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부담이 커지고 있어서다.
최근 운용사들이 현지 채용에 나서거나 본사 인력 전보를 검토하는 것도 전주 사무소가 '공간 확보' 단계에서 '사람 채우기' 단계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문제는 '누구를 보낼 것인가'다.
전주 사무소의 역할은 국민연금 대응과 자료 전달, 일정 조율, 본사와의 행정 지원 등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운용 판단과 포트폴리오 조정, 리서치, 리스크 관리 등 핵심 기능은 여전히 서울 본사에서 이뤄진다. 전주에 공간을 마련한다고 해서 운용 의사결정권까지 함께 내려가는 구조는 아니다.
이 때문에 운용사 입장에선 핵심 인력을 전주에 상주시킬 유인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성과를 내는 운용역이나 기관 네트워크를 가진 영업 인력은 본사 조직과 실시간으로 움직여야 한다. 주요 회의와 매매, 리서치 협업, 판매사 및 기관투자가 대응도 대부분 서울에서 이뤄진다. '에이스'급 인력을 전주에 묶어둘 경우 본사 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고, 당사자 입장에서도 경력 관리와 보상 측면에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현지 채용도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기관영업과 운용업 이해도를 갖춘 인력을 전주에서 바로 확보하기 쉽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지역 거주자를 우대하는 방식으로 채용 문을 열더라도 국민연금 대응 경험과 자산운용업 이해도를 동시에 갖춘 인력 풀은 제한적이다. 채용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결국 본사 인력을 전보하는 방식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 때문에 전주 발령은 본사 내 인력 재배치와 맞물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이와 직급은 쌓였지만 본사에서 맡을 역할이 모호해진 중간 연차 인력, 핵심 운용·영업 라인에서 벗어난 인력, 조직 효율화 과정에서 재배치가 필요한 인력이 우선 검토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전주 사무소가 국민연금 대응 조직이라는 외형을 갖추는 동시에, 본사 인력 구조를 정리하는 현실적 해법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몇몇 인력이 회사로부터 전주행을 권유받았는데, 명시적이진 않았지만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불이익이 있을 거 같다는 압박을 받았다는 뒷얘기가 돌았다"며 "전주에 사무실을 운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운용사가 비슷한 상황인 것 같다"고 말했다.
운용업계에서는 전주 발령이 공식적인 구조조정은 아니더라도 사실상 인사상 메시지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을 거론한다. 전주 사무소에서 맡게 될 업무가 국민연금 대응과 행정 지원에 집중될 경우, 운용 성과나 신규 자금 유치처럼 개인의 실적을 명확히 드러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본사 핵심 조직과 거리가 멀어질수록 승진과 보상, 이후 보직 배치에서도 불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결국 전주 사무소가 당분간 '소수 상주 인력+본사 지원' 형태로 운영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기관영업 상근 인력 1~2명을 두고, 실제 운용역과 상품 담당자는 필요할 때 서울에서 내려가는 방식이다. 사무소는 두되 핵심 기능은 본사에 남기는 구조다. 가점 요건은 맞추면서도 핵심 인력 이탈과 조직 공백을 최소화하려는 절충안인 셈이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국민연금 대응 사안인 만큼 전주 사무실 운영은 불가피하지만 현실적으로 핵심 인력이 지방 근무를 자처하겠느냐"며 "회사들도 전주에 누구를 보낼지를 두고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고, 결국 본사에서 역할이 애매한 인력을 재배치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