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삼성·현대차·한화 해외行에 외국계 로펌 서울오피스도 다시 분주
입력 2026.07.23 07:00

SK하이닉스 ADR·삼성 해외 M&A 잇단 참여
반도체 담합·현대차 집단소송도 일감으로
시간당 2000~3000달러에도 수임 증가 추세
규제·분쟁 등 고부가 대관 자문이 관건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SK하이닉스의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상장, 삼성전자의 해외 M&A 등 국내 대기업들의 해외 사업이 본격화하면서 한동안 위축됐던 외국계 로펌 서울사무소도 다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방산, 조선 등 국내 기업들의 해외 사업이 확대되면서 미국 증권법과 국가안보 규제, 국제분쟁 등을 다루는 외국계 로펌들의 역할도 커지는 분위기다.

    대표 사례는 SK하이닉스의 265억달러 규모 ADR 발행이다. 발행사인 SK하이닉스의 미국법 자문은 클리어리 가틀립(Cleary Gottlieb)이, 인수단 측 미국법 자문은 폴 헤이스팅스(Paul Hastings)가 맡았다. 이번 거래에서 법률·회계 등을 포함한 자문수수료는 약 135억원 규모로 책정됐다. 올해 글로벌 자본시장 내 초대형 공모 거래인 만큼 로펌 서울 사무소 역시 발행사와의 실무 조율 및 국내 규제 대응을 맡으며 거래를 지원한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전자의 해외 M&A에도 외국계 로펌들이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발표한 독일 플랙트그룹 인수에서는 화이트앤케이스(White&Case)가 삼성전자 측 법률자문을 맡았다. 매도자인 트라이튼은 레이텀앤왓킨스(Latham&Watkins)를 선임했다. 오멜버니(O'Melveny)도 거래 자문에 힘을 보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자회사 하만의 ZF ADAS 사업부 인수에서는 클리포드 챈스가 삼성 측 자문사로 참여했다. 최근 삼성전자는 AI 반도체와 바이오 등 복수 분야에서 해외 지분투자와 M&A 기회를 검토하고 있어, 거래가 구체화할 경우 외국계 로펌의 추가 수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과 몸값이 높아진 만큼 현지 소송 위험도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에서 특허침해 소송에 꾸준히 노출돼 있다. 최근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을 상대로 D램 가격 담합을 주장하는 집단소송도 제기됐는데, 여기에 외국계 로펌 서울사무소가 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 

    한 외국계 로펌 변호사는 "기업 실적이 좋아지고 배상 여력이 커졌다고 판단되면 미국 원고 로펌들이 소송을 제기하려는 유인도 커진다"며 "반도체 호황은 M&A 자문뿐 아니라 소송 수요를 함께 늘리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한화그룹의 미국 사업 확대도 외국계 로펌의 일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화의 미국 필리조선소 인수에는 폴 헤이스팅스가 참여했다. 미국 함정 유지보수(MRO) 협력이 확대되면서, 한화그룹의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 심사 관련 자문 수요도 커지는 추세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미국 내 제조물책임 집단소송과 보스턴다이내믹스 관련 규제 대응이 주요 과제로 꼽힌다. 현대차를 상대로 차량 결함과 사고 관련 소송이 꾸준히 제기되는 데다, 자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산업용·상업용 로봇 사업을 확대할수록 미국 정부와의 기존 약정도 계속 살펴야 한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미국 국방 연구과제에서 출발한 기업으로, 현대차그룹의 인수 과정에서 미국 정부와 기술보호 등에 관한 일정한 약정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해당 약정에는 사업영역과 기술 이용에 관한 제한, 중국 측의 핵심 기술 접근을 막는 조치 등이 포함됐다.

    앞선 로펌 관계자는 "현대차는 거래를 끝낸 뒤에도 미국 정부와 맺은 조건을 지속적으로 준수해야 해 규제 자문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역시 미국으로 전선이 확대됐다. MBK파트너스·영풍 측은 미국 로펌이자 워싱턴 대관 조직을 갖춘 스콰이어 패튼 보그스(Squire Patton Boggs)를 선임해 미국 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핵심광물 관련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처럼 외국계 로펌이 다시 주목받고 있지만 서울사무소의 고민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지난 2012년 외국법자문사 제도가 도입된 뒤 글로벌 로펌들이 잇달아 서울에 진출했지만, 기대만큼 일감이 늘지 않자 클리포드 챈스와 심슨 대처 등 일부 로펌은 서울사무소를 폐쇄했다. 지난해에는 클리어리 가틀립의 M&A 인력 일부가 김앤장으로 이동하는 등 외국계 인력이 국내 대형 로펌으로 옮기는 흐름도 이어졌다.

    높은 비용 구조도 부담이다. 외국계 로펌 한국 파트너의 시간당 자문료는 2000달러(한화 약 300만원)를 웃돈다. 국내 대형 로펌 파트너의 시간당 보수가 통상 120만~150만원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두 배 안팎의 차이가 난다.

    외국계 로펌은 대부분 성과보수 없이 실제 투입 시간을 기준으로 비용을 계산하는 타임차지 방식을 적용한다. 최근 원·달러 환율 상승까지 겹치면서 국내 기업이 체감하는 자문료 부담도 커졌다. 이에 고객사 사이에서는 "김앤장 등 국내 로펌보다 돈을 더 지급하는 만큼 업무도 더 많이 맡아달라"는 요구도 강해진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로펌의 크로스보더 역량이 높아진 점도 외국계 로펌에는 과제다. 과거에는 외국계 로펌이 계약서 초안과 부속서류 작성까지 맡았지만, 최근에는 국내 로펌이 실무 대부분을 수행하고 외국계 로펌은 미국법 검토와 핵심 쟁점에만 참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오히려 국내 로펌이 전체 거래를 총괄하며 해외 로펌의 업무 범위와 투입 시간을 관리하기도 한다. 미국법이나 현지 규제처럼 외국계 로펌이 꼭 필요한 부분만 맡기고, 나머지 업무는 국내에서 처리해 자문료를 고객사의 예산에 맞추는 방식이다.

    결국 외국계 로펌이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분야는 IPO나 ADR 같은 정형화된 자본시장 거래보다 미국 정부 규제와 반독점 조사, 수출통제 등 대관(對官) 영역에 있다는 평가다. 다만 이들 업무는 서울사무소보다 워싱턴·뉴욕·실리콘밸리 등 현지 사무소의 전문인력이 주도하는 경우가 많아, 서울오피스가 실적을 온전히 가져가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한 외국계 변호사는 "미국과 관련된 거래와 소송이 늘면서 일감 자체는 분명 많아지고 있다"면서 "대기업의 규제와 소송 업무를 해외 본사팀에 얼마나 연결하고 지속적인 수임으로 이어가느냐가 서울사무소의 실적을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