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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SK하이닉스의 대규모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자금이 하반기 외환시장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ADR 발행으로 조달한 265억달러(약 40조원)가 순차적으로 원화로 환전될 경우 외환시장에 대규모 달러 공급이 이뤄질 수 있어서다. 시장에서는 통화스와프에 버금가는 수급 효과를 거둘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그런데 이 같은 달러 공급에도 원·달러 환율이 과거 수준으로 되돌아가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글로벌 달러 강세와 국내 투자자의 해외투자 확대 등 구조적 요인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20일 오후 기준 원·달러 환율은 1481원대 초반으로 집계됐다. 이달 들어 미국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전월 말 대비 4.27% 올랐다. 영국 파운드화(+1.45%), 호주 달러(+0.88%) 등 주요 20개국 통화 중 통화 가치 상승 폭이 가장 컸다.
시장 참가자들은 하반기 원·달러 환율의 가장 큰 변수로 SK하이닉스의 ADR 자금 환전을 꼽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최근 ADR 상장을 통해 265억달러를 조달했으며, 이를 국내 반도체 투자 재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순차적으로 원화로 환전할 계획이다.
투자 자금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팹 건설과 청주 패키징 공장 투자, 부대 비용 등에 투입된다. 일부는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구매에도 사용될 예정이다. EUV 장비는 유로화로 결제되는 만큼 조달한 달러 전액이 원화로 환전되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에서는 상당 규모의 달러가 외환시장에 공급될 것으로 보고 있다.
SK하이닉스 ADR 대금 납입일은 지난 14일이었다. 회사는 상장을 앞두고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이기 위해 선물환 매도에 나섰고, 이후 1500원을 웃돌던 원·달러 환율은 1480원대로 소폭 하락했다. 아직 본격적인 현물 환전이 시작되지 않았음에도 시장 심리에 영향을 준 셈이다.
실제 환전은 이르면 이달 말부터 오는 9월까지 순차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 번에 대규모 물량을 소화하기보다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나눠 환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한 외환시장 관계자는 "265억달러는 국내 외환시장 규모를 감안하면 단기간에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환전이 분산돼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일정 기간 동안 달러 공급 우위 환경을 만드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 외에도 주요 수출기업들의 선물환 매도가 이어지면서 외환시장 수급은 이전보다 완화되는 모습이다. 대표적으로 한화오션은 그동안 환오픈 전략을 유지해 왔지만 최근 환헤지 비율을 70% 이상으로 높이기 위해 선물환 매도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원·달러 환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동안 환율을 고정하려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기업들의 이 같은 움직임 자체가 환율 고점 인식의 신호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현재 환율 수준을 기업들이 사실상 고점으로 판단하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며 "SK하이닉스의 대규모 달러 매도로 환율이 추가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확산되면 다른 수출기업들도 환차손을 줄이기 위해 보유 달러를 원화로 바꾸려는 유인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외국인 자금 흐름도 환율에는 우호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 증시가 조정을 받으면서 외국인의 주식 순매도 규모가 이전보다 다소 축소됐다. 연기금의 자국 투자 확대 방침으로 엔화가 약세 흐름을 멈추고 소폭 강세로 돌아선 점도 원화 강세를 뒷받침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경우 이달 기준금리를 연 2.50%에서 2.75%로 0.25%포인트(p) 인상했다. 2023년 1월 이후 3년 6개월 만의 첫 인상이다. 목표치를 웃도는 물가 상승률과 수도권 집값 상승, 1500원대를 넘나드는 고환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정이다. 이번 인상으로 한·미 금리차는 기존보다 0.25%포인트 좁혀졌으며, 이는 원화 강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이번 달러 공급이나 금리 인상이 환율의 방향성을 일부 바꿀 수는 있어도 장기 추세를 되돌리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2024년 이후 외환시장을 움직이는 구조적 요인이 과거와 달라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고금리 기조와 글로벌 달러 강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기관과 개인의 해외증권 투자 규모도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해외 주식과 해외 대체투자에 필요한 달러 수요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면서 과거보다 환율의 평균 수준 자체가 높아졌다는 평가다.
실제 시장에서는 2024년 3월 이후 원·달러 환율의 평균 레벨이 1408.2원로 한 단계 올라섰다고 보고 있다. 일시적인 달러 공급 이벤트가 발생하더라도 구조적인 달러 수요를 상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앞의 관계자는 "향후 지정학적 리스크나 글로벌 금융시장에 새로운 충격이 없다면 환율이 지금보다 다소 낮아질 가능성은 있다"면서도 "글로벌 달러 강세와 내국인의 해외증권 투자 확대라는 구조적 요인이 유지되는 만큼 단기간에 과거 평균 수준으로 회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