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수익률 3배' 약속한 국민연금…"연금 만능주의 경계해야"
입력 2026.07.23 07:00

NPS '기금형 퇴직연금사업자' 지정 여부 '촉각'…이달 말 '윤곽'
수익률 3배 '착시'…"운용 역량 아닌 규제 격차로 국민연금 판정승"
"연못에 고래 들어오는 꼴"…업계, 공적 기금 '사적 연금' 독점 우려

  • 국민연금공단이 기금형 퇴직연금 사업 참여 의지를 드러내며 퇴직연금 시장의 판도를 흔들고 있다. 금융권은 '공공성'과 '수익성'을 내세운 국민연금의 행보가 되레 연금 시장 생태계를 망가뜨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이달 말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간 퇴직연금 기능 강화를 위해 구성된 '노사정 태스크포스(TF)'가 제시한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관련 다양한 의견들이 정부 구체안에 반영될 전망이다. 기금형 퇴직연금은 가입자가 개별 상품을 선택하는 구조가 아닌, 별도로 설립된 수탁법인(기금)과 전문 운용 조직이 은퇴 자산을 책임지고 운용하는 제도적 틀을 말한다.

    제도 도입 배경으로는 금융 지식이 부족한 개인의 장기 투자 부담이 꼽힌다. 현행 계약형 구조에서는 금융 지식이 부족한 개인이 장기간 자산 배분과 리스크 관리 등 복잡한 투자 판단을 계속해야 한다. 결국 가입자들이 부담감을 느끼며 무관심과 선택 회피에 빠진 결과, 지난해 적립금의 75.4%가 연 2~3%대 저수익률을 내는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방치되는 구조적 결함이 발생했다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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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에 국민연금이 기금형 퇴직연금 운용 주체로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압도적인 자산 배분 역량과 기금 운용 전문성을 바탕으로, 민간 금융사 대비 3분의 1 수준의 수수료로 3배 이상의 수익률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실제로 지난해 국민연금의 연평균 운용 수익률은 18% 후반대로, 같은 기간 6.47%의 수익률을 기록한 퇴직연금사업자의 약 3배 높은 수준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높은 수익률이 국민연금의 운용 역량에서 비롯됐다기보다, 제도적 차이에 따른 구조적 결과라고 해석한다. 퇴직연금은 위험자산 보유 제한 규제 등 구조적 제약이 있지만, 국민연금은 자산 배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은 국민연금이 퇴직연금 사업 참여 명분으로 내세운 '공공성'에 대해서도 우려를 제기한다. 국민연금은 영국의 국가퇴직연금(NEST) 등 해외 사례를 들어 시장 경쟁 촉진을 통해 수수료 부담을 낮추는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해외 사례를 국내 시장에 일률적으로 대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꼬집는다. 한국에 비해 유럽 등 연금 선진국은 대체로 공적 연금 규모가 작고 사적 연금의 성숙도가 높아 공공 기금이 들어와 시장의 '메기' 역할을 할 여지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반면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적 연금 비중이 절반에 달해 전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이다. 이에 학계에서는 국내 자본시장에서 비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단일 공적 기금의 퇴직연금 시장 참여가 시장 독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공공형 기금의 본질적 존립 근거는 중소·영세 사업장의 사각지대 해소와 가입자의 은퇴 수급권 보호에 있다"며 "이미 근로복지공단이 중소기업 퇴직연금 '푸른씨앗'을 통해 기금의 공공적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만큼, 국민연금의 퇴직연금 사업 참여 명분과 효율성은 부족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연금의 사업 참여 방식 측면에서도 시장의 견해가 엇갈린다. 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이 기금형 퇴직연금 시장 진출 방안으로 제시한 '공공기관 개방형 모델'이 해당 기금화 방식을 논의한 노사정 TF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 이사장은 기금형 퇴직연금 시장 내 민간 금융사와 마찰을 최소화할 방안으로 전체 기업의 0.2%에 불과한 국내 공공기관 342곳의 퇴직연금 운용을 맡는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업계는 이를 '공공기관 개방형 모델'에 대한 국민연금의 왜곡된 해석으로 보고 있다. 공공기관이 '운용 주체'가 돼 중소사업자 중심 기금 운용을 하는 모델을 공공기관이 '가입 대상'이 되는 것으로 잘못 해석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한 연금 전문가는 "국민연금이 운용 대상으로 지정한 342곳에는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수력원자력 등 대형 공공기관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이들은 이미 민간사업자를 통해 DC형(확정기여형) 상품에 가입돼 있는 만큼, 국민연금이 제시한 시장 진출 방식은 공공적 목적보다는 시장 확보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학계 및 금융권은 국민연금이 퇴직연금의 운용 주체가 되는 것을 사실상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의 일원화로 바라보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만약 공적연금과 퇴직연금의 운용 주체가 국민연금으로 단일화된다면, 국민연금의 판단 오류 하나만으로 국가 전체의 노후 보장 포트폴리오가 붕괴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민연금이 그간 보여온 자산 운용상의 한계는 이와 같은 우려를 키우고 있다. 국민연금은 정부의 시장 안정화 기조에 따라 자율적인 리밸런싱(자산 재조정)을 원활히 수행하지 못하는 등 자율성 훼손 논란을 겪어온 바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기존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을 개선하고 기금형 제도 적용 기준을 체계화한 후에 국가 기금의 유입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한다. 현재 정부와 국민연금의 퇴직연금 '개혁 드라이브'에 대한 속도 조절 필요성이 제기된 셈이다.

    디폴트옵션에 대해서는 현행 '선택형(옵트인)' 구조에 가입자들을 묶어둔 제도를 별도 선택이 없더라도 전문적 운용이 개시되는 '옵트아웃' 방식으로 개선해야된다는 입장이다. 예컨대 원리금보장상품을 디폴트옵션으로 지정하지 않고, 원금 보장 수요가 뚜렷한 소비자가 필요시 운용 지시를 내리는 방식으로의 전환을 뜻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현시점 퇴직연금 시장에 참여하는 것은 연못 안에 고래를 넣는 셈"이라며 "여당 출신 이사장의 주도 아래 충분한 인프라와 지배구조 합의 체계도 갖춰지지 않은 채 기금형 퇴직연금 운영 주체로 국민연금으로 선정하는 것은 위험 요소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