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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금융기관의 지방 이전론이 다시 불붙은 가운데 민간 자본시장에서는 정책자금을 따라 운용사의 거점이 이동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수도권 벤처캐피탈(VC)이 부산으로 본사를 옮기고 서울 운용사가 부산·경남에 지사를 설치하는 등 지역 거점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공제회 등의 지방 이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2차 공공기관 이전 대상 기관과 이전 지역은 전혀 확정된 바 없다"고 해명했지만, 금융권에서는 정부의 균형발전 기조 자체는 한층 선명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공기관 이전은 아직 논의 단계지만 정책 출자사업의 '지역 프리미엄'은 이미 구체적인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가장 상징적인 사례가 국민성장펀드다.
금융위원회는 국민성장펀드 내 지역전용 리그를 통해 매년 2000억원 이상, 5년간 총 1조원 이상의 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다. 결성액의 60% 이상을 지방 소재 기업에 투자하도록 하고, 지방기업에 대한 정보와 네트워크를 보유한 지방 소재 운용사에는 선정 가점을 부여한다.
지난 13일 마무리된 국민성장펀드 2차 위탁운용사 선정에서도 지역전용 리그의 인기가 두드러졌다. 전체 지원 운용사 65곳 중 절반이 넘는 37곳이 지역전용 리그에 지원했다. 최종적으로 SBI인베스트먼트와 KB증권·에코프로파트너스 컨소시엄이 운용사로 선정됐다.
다만 지원이 몰린 배경을 지역투자에 대한 관심만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지역전용 리그는 정책 출자 비중이 높고 운용사 의무출자 비율도 약정총액의 1% 이상으로, 다른 리그의 2% 이상보다 낮게 설계됐다. 민간 출자자의 자금이 국민성장펀드로 몰리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펀드 결성 부담이 작다는 점도 운용사를 끌어들인 요인이다.
지역 가점은 지역투자를 유도하는 정책 수단인 동시에 펀드레이징 시장의 경제적 유인으로 작동한다는 분석이다. 정책자금을 확보하기 어려운 시기에는 지역 사무소 설치 비용보다 출자사업 선정으로 얻는 편익이 훨씬 클 수 있다. 운용사 입장에서 지방 거점은 지역기업 발굴을 위한 조직인 동시에 정책 LP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인프라가 된다는 설명이다.
중앙정부 출자사업이 투자금의 목적지를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지자체 출자사업은 운용사의 주소까지 직접 겨냥하는 경우가 많다.
부산기술창업투자원이 올해 진행한 부산시 출자 펀드 운용사 모집은 부산에 본사나 지사를 둔 운용사만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부산시 출자액의 두 배 이상을 부산 소재 기업에 투자해야 하며, 지역투자 규모를 더 높여 제안하면 가점을 받을 수 있다. 지방 거점이 우대사항을 넘어 출자사업 참여를 위한 입장권이 되는 구조다.
모태펀드에서도 지역 우대는 특정 지역계정에 국한되지 않고 일반 출자사업으로 확산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올해부터 일반 모태 자펀드에 비수도권 투자 20% 의무를 부과했다. 지방 중소·벤처기업에 30% 이상 투자하겠다고 제안한 운용사에는 선정 가점도 준다.
이에 따라 지역투자 가점을 신청한 운용사 비중은 지난해 29%에서 올해 83%로 뛰었다. 선정 운용사 가운데 지방 소재 운용사 비중도 같은 기간 8.8%에서 13.3%로 높아졌다. 과거 지역투자가 일부 지자체 펀드의 별도 조건이었다면, 이제는 일반 정책 출자사업에서도 운용사 선정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가 된 것이다.
실제 VC들의 조직 배치도 달라지고 있다. 비전에쿼티파트너스는 지난해 8월 수도권에서 부산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나우IB캐피탈은 2024년 부산지사를 설치한 데 이어 지난해 경남지사까지 열었다. BNK금융그룹은 지난해 9월 BNK벤처투자 본사를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전하기로 확정했으며, 올해 하반기까지 이전을 마치겠다는 계획이다.
부산은 지자체와 산업은행, 모태펀드, 지역 금융그룹의 재원이 결합된 지역펀드가 상대적으로 활발하다. 본·지점 보유 여부를 출자 자격과 연계하는 사업도 있어 다른 지역보다 운용사 유치 논리가 분명하다는 평가다.
관건은 주소 이동이 실제 투자 기능의 이전으로 이어지느냐다. 지사 등기나 소규모 연락사무소만으로도 일부 출자사업의 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면 지역 거점이 정책자금 확보를 위한 형식적 장치에 머물 가능성도 있다. 국민성장펀드 지역전용 리그에 서울 대형 운용사들이 대거 참여한 점 역시 지역투자 확대와 운용사 이전을 동일시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역 벤처생태계가 자립하려면 투자금뿐 아니라 기업을 발굴할 심사역과 후속 투자를 담당할 대형 운용사, 기업공개(IPO)·인수합병(M&A)을 지원할 증권사와 법률·회계 인력까지 함께 자리 잡아야 한다는 분석이다. 투자위원회와 주요 의사결정 권한이 계속 서울에 남는다면 지방 사무소가 늘어도 지역 금융중심지로서의 기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한 VC업계 관계자는 "지역 가점이 커지면 운용사들이 본사를 옮기거나 사무소를 설치할 유인은 충분히 생기고, 실제로 올해 본사 지방 이전을 검토하는 하우스들도 늘어나는 분위기"라며 "다만 좋은 투자 인력과 기업의 성장을 지원할 경영 인프라가 함께 갖춰지지 않으면 주소만 지방에 둔 사무소가 늘어나는 데 그칠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