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5개 발전자회사 통합 급물살…몸집만큼 커질 채권시장 존재감
입력 2026.07.24 07:00

'에너지 대전환' 앞세운 발전사 5사 통합
기후부, 연내 최종 구조개편안 확정 계획
사채 발행 한도 등 자금조달 관련 특례 필요

  • 정부가 한국전력공사 발전 자회사 5곳의 통합 작업에 속도를 내면서 자본시장도 통합법인의 자금조달 전략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40년 석탄발전 전면 폐지와 재생에너지 확대 등 에너지 대전환의 핵심 공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수조원 규모의 투자 재원이 불가피한 만큼, 통합법인이 이를 어떻게 조달할지가 향후 사업 추진의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로 떠오른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한국남동·중부·서부·남부·동서발전 등 발전 자회사 5곳을 하나의 법인으로 통합하는 방안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정부는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을 거쳐 연내 최종 구조개편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2040년 석탄발전 전면 폐지와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력산업 재편을 뒷받침하기 위해선 현재보다 훨씬 큰 투자 집행 능력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배경이다.

    정부 내부에서는 권역별로 2~3개 회사로 재편하거나 지주회사 체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됐지만, 자본력이 분산된 구조로는 대규모 설비 투자와 신재생 사업 확대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규모의 경제를 확보해 투자 여력을 키우는 것이 이번 통합의 핵심 목적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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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시장에서는 통합법인이 출범할 경우 가장 먼저 달라질 부분으로 자금조달 구조를 꼽는다. 현재 한전이 특수채인 한전채를 발행하고, 발전 자회사들은 각각 독립적으로 회사채를 발행하는 구조다. 통합 이후에도 발전 통합법인은 한전 별도 법인으로 존속하는 만큼 회사채 발행 주체 지위는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발행 주체가 기존 5곳에서 1곳으로 줄어드는 만큼 시장 내 존재감은 지금보다 훨씬 커질 전망이다. 개별 회사별로 나뉘어 있던 발행 수요가 하나의 법인으로 집중되면 발행 규모와 만기 전략, 차환 일정 모두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날 기준 발전 자회사들의 회사채 발행 잔액을 살펴보면 ▲한국남동발전 4조4500억원 ▲중부발전 5조7400억원 ▲서부발전 5조9400억원 ▲남부발전 4조5900억원 ▲동서발전 2조6400억원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전체 발행 잔액 합계만 23조3600억원에 달하는데, 이는 한국전력의 발행 잔액(15조1400억원)보다 8조원 이상 많은 규모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현재는 발전사별 발행 시기가 분산돼 있어 시장이 이를 흡수하는 구조지만 통합 이후에는 사실상 발전 부문의 대표 발행자로 자리잡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연간 발행 계획이나 만기 관리 전략에 따라 회사채 시장 수급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에너지 전환 정책이 본격화될수록 조달 규모 역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석탄발전 설비 폐지와 재생에너지 확대, 계통 안정화 투자, ESS 및 송배전 연계 투자 등 대규모 자본지출(CAPEX)이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자체 현금만으로 이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는 평가다.

    발전 5사는 최근 수년간 연료비 변동성과 탈석탄 정책 대응 과정에서 수익성이 이전보다 악화했다. 발전 믹스 변화에 따른 비용 부담도 커진 상황이다. 통합을 통해 운영 효율성을 높일 수는 있지만, 출범 초기부터 대규모 투자가 병행될 경우 외부 조달 의존도가 높아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통합법인의 조달 여력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로 특별법 제정이 거론된다. 정부 연구용역을 수행한 삼일회계법인도 안정적인 통합법인 출범을 위해 특별법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산과 부채 승계뿐 아니라 사채 발행 한도와 자금조달 관련 특례가 어떻게 규정되느냐에 따라 통합법인의 실질적인 조달 능력이 달라질 수 있다.

    시장에서는 특히 사채발행한도 규정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일반적으로 상법상 회사는 순자산의 일정 범위 내에서 사채를 발행하도록 제한받지만, 공공성이 강한 기관의 경우 특별법을 통해 별도 기준을 두는 사례도 적지 않다. 향후 특별법에 어떤 형태의 조달 특례가 담기느냐가 대규모 에너지 전환 투자 속도를 좌우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과거 정부가 발전 자회사들의 기업공개(IPO)를 추진했던 전례가 있다는 점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16년 발전 5사를 포함한 에너지 공기업 상장 방안이 다시 추진됐지만 공공성, 기업가치 산정, 정책 변화 등의 변수로 실제 상장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결국 이번 통합 역시 단순한 조직 개편을 넘어 향후 자본시장을 활용한 투자 재원 확보 방안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합을 통해 몸집은 커질 수 있지만, 에너지 전환이라는 막대한 투자 과제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회사채 발행 체계와 제도적 지원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통합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통합 이후 얼마나 안정적으로 자금을 조달해 에너지 전환 투자를 이어갈 수 있느냐가 성공 여부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