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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러 파이낸싱(Seller Financing)의 역사는 꽤나 오래됐다.
기원전 메소포타미아와 고대 이집트, 로마에서는 토지 등을 매매하면서 "대금을 나중에 지급하는 거래"가 드물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여러 점토판과 파피루스 문서에는 '담보 설정', '대금의 분할 지급' 등이 등장한다. 인류가 생각보다 일찌감치 '신용경제'(Credit Economy)를 도입했다는 의미다.
사실 정확한 의미의 셀러 파이낸싱은 아니다. 지금과 같은 상업은행 등 제도권 금융이 없으니 파는 사람이 직접 돈을 빌려줬던 상황일 뿐이다. 은행이 멀쩡히 제 역할을 하는데도 매도인이 '내가 빌려줄게'라고 해야 셀러 파이낸싱이라 부를만 하다.
가장 적합한 사례는 1800년대 후반 미국 서부 개척시대 철도회사들이 주변 토지를 개척민들에게 팔 때였다. 당시 미국 정부는 철도 건설을 독려하기 위해 '유니온 퍼시픽' (Union Pacific Railroad), '벌링턴&미주리' (Burlington & Missouri River Railroad Company), '노던 퍼시픽' (Northern Pacific Railroad)등 여러 철도 회사들에게 엄청난 규모의 토지를 무상 지급했다. 토지가 남아도니 철도 회사들은 주변 토지를 서부 개척민들에게 팔면서 이를 수익원으로 삼았다.
하지만 개척민들은 현금이 없었고 1870년대 미국 서부는 은행망이 빈약했다. 그러자 철도회사들은 "10년 할부, 계약금 10%, 첫해는 이자만 납부"와 유사한 조건을 내밀어 은행을 거치지 않고 장기할부로 개척민들에게 토지를 팔아댔다.
투자은행(IB)들이 난무하는 현대 자본시장에도 셀러 파이낸싱은 종종 등장했다.
1980년대 미국에서 LBO(Leveraged Buyout)을 도입한 사모펀드들이 본격 활동할 당시. 펀드 수익률을 높이고자 M&A에서 대규모 차입을 활용했지만 은행이 모든 자금을 공급하기에는 위험이 컸다. 그러자 매도인은 인수대금 일부를 나중에 받겠다는 '차용증(Seller Note)를 수취하는 거래가 빈번해졌다.
이런 방식들이 발전해 나중에 돈을 더 벌면 이를 매도자-매수자가 공유하는 '언아웃'(Earn-Out) 등으로 파생되기도 했다. 매도자가 매수인이 인수대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적당한 은행 등을 미리 찾아놓는 스테이플 파이낸싱(Staple Financing)은 셀러 파이낸싱의 '사촌' 쯤 된다. 셀러 파이낸싱은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발발로 은행들이 대출을 급격히 줄이고 회사채 시장도 마비될 때 다시금 M&A시장에서 유행했다.
그래도 가장 많이 활용된 분야는 역시 부동산이다.
논란도 적지 않았다. 셀러 파이낸싱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악용'되는 경우가 많아서였다. 1950~60년대 미국 중서부 시카고나 디트로이트 등지에서 흑인 매수자를 겨낭한 '토지(주택)분할매매계약' (Contract for Deed)가 제일 유명한 악용 사례다.
미국 연방정부(연방주택청)는 대공황을 겪은 이후 각 지역별로 대출위험도를 평가한 지도를 제작했다. 이때 흑인이 거주하는 동네를 '빨간색'으로 표시하고 '위험지역'으로 분류하는 이른바 '레드라이닝'(Redlining)을 진행했다. 그러자 은행들은 이 빨간 선 안쪽 지역에서는 일절 주택담보대출(모기지)를 승인하지 않았다. 그러니 흑인은 신용도나 소득과 무관하게 오로지 피부색만을 이유로 은행 대출에서 원천 배제됐다.
부동산 투기업자들은 이런 흑인들을 대상으로 분할매매계약을 강요해 집을 팔아 댔다. '은행 없이,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높은 이자로 분할 매수'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1950년대 시카고에서 흑인이 매입한 주택의 약 85%가 이 방식으로 거래됐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하지만 수년간 분할대금을 내다가 단 한번이라도 연체하면 집도 잃고 그간 낸 돈도 거의 못 돌려받으면서 문제가 됐다. 후세에 "가난한 흑인을 대상으로 한 약탈적 금융'으로 기록됐다.
현대로 와서는 더 자율적인 수준에서 부동산 셀러 파이낸싱이 자주 활용됐다. 주로 은행 고금리를 피하기 위한 목적이다.
1978~79년 무렵 미국 모기지 금리는 두 자릿수를 넘겼는데 이러면서 1980년대 초반에 부동산 시장에서 셀러 파이낸싱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또 2007년 1월 뉴욕타임스에는 "When a Seller Finances the Sale'라는 기사가 실렸는데 당시의 부동산 셀러파이낸싱이 다시 늘어났다는 내용이다. 주택가격이 높고 대출심사는 까다로워지면서 매도자가 은행처럼 매수자 신용조사와 금리결정, 계약작성까지 진행한다는 것.
2022년 미국 모기지 금리가 급등, 7%대를 오르내리면서 부동산 셀러 파이낸싱은 또 한번 주목 받았다. 이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23년 7월 "Seller Financing: Bargaining Chip or Big-Time Risk?"이란 제목으로 기사를 싣기도 했다. 30년 고정 모기지 금리가 7% 안팎까지 오르자 은행 대출을 포기하는 매수자가 급증했고 일부 매도자가 직접 대출을 제공하기 시작했으며, 고가주택 등에서 협상카드로 활용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심지어 부동산 셀러 파이낸싱을 '사업 아이템'으로 내세운 스타트업도 나왔다.
2024년 10월 미국 오스틴(텍사스)에서 기반한 스타트업 'MORE Seller Financing'이다. 매도인이 기존에 보유한 저금리 주택담보대출을 그대로 활용해 매수인에게 시중 대출보다 낮은 금리를 제공하는 구조다. 이 프로그램의 주력 가격대는 고가주택 또는 플로리다 등지의 콘도 등이었다. 몇 달째 안 팔리던 매물(만료된 리스팅)의 매도인일수록 이 전략을 적극 활용했다고 알려진다.
따져보면 셀러 파이낸싱 자체가 위법은 아니다. 상대방을 속였거나, 계약을 불공정하게 했거나,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악용했거나, 금융회사를 기망했다면 모를까. 계약이 투명하고 위험이 충분히 설명된 경우에는, 특히 고금리·신용경색기에는 은행 대출을 보완하는 합법적이고 유용한 거래 방식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위험이 크다. 매수자가 잔금을 제때 안내면 매도자가 직접 회수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이자율이나 상환기한, 연체이자, 조기상환 등 각종 조건이 명확하지 않으면 분쟁이 불가피하다.
애당초 이런 위험을 회피하고자 은행과 제도권 금융이 생겼고 현대적인 신용평가와 리스크 관리체계, 그리고 부실채권 회수절차가 도입된 거다. 어쨌든 확실한 점은 셀러 파이낸싱은 금융시장이 혹은 상업은행이 '제 역할을 못하거나 시장 참가자들의 기대를 충족못할 때' 활성화됐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 금융시장은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는 목표를 천명한 정부의 대출 규제로 상당수 거래에서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제한됐다. 은행들의 여신심사와 별개로 정책적인 대출한도가 적용된터라, 매수자들은 신용도가 높고 원리금 상환능력이 증빙되어도 주택구입자금을 양껏 빌리지 못한다.
어디까지나 정부가 직접 주도한 금융시장 환경 변화다.
이를 주도해 온 행정부의 수반이자,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본인의 고가주택을 파는데 셀러 파이낸싱을 사용했다. 그러자 '대통령의 인증을 받은 기법'이라며 '매도자 대출가능' 꼬리표가 붙은 매물이 출현한다고 한다. 도대체...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