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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SK하이닉스가 국내 크레디트 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인공지능(AI) 반도체 호황으로 쌓인 막대한 현금을 운용하기 위한 투자지만, 특정 기업의 매수세가 시장 수급과 금리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졌다는 우려도 나온다. 삼성전자 역시 채권 투자 확대에 나설지 시장의 관심이 쏠린다.
2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최근 증권사 신탁계정 등을 통해 우량 회사채뿐 아니라 여신전문금융회사채(여전채), 지주사채, 기업어음(CP)까지 폭넓게 매입하고 있다. 최근까지 브로커들이 확보한 신규 발행 물량을 대부분 소화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투자하면서 사실상 국내 회사채 시장의 최대 수요처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렇다 보니 SK하이닉스의 채권 수요를 확보하려는 증권사 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SK하이닉스가 거래하는 증권사 신탁계정에서 필요한 채권의 종류와 조건을 제시하면 브로커들이 시장에서 해당 물량을 구해 공급하는 방식이다.
SK하이닉스의 매수 여력이 크다 보니 발행사와 주관사 입장에서도 이 회사의 투자 여부가 수요예측 결과와 유통금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브로커들도 하이닉스 자금을 운용하는 증권사 신탁계정에 물량을 공급하기 위해 경쟁하는 상황”이라며 “매수 여력이 워낙 크다 보니 발행사와 금리 협상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시장에 나오는 우량 물량은 대부분 검토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AI 반도체 호황으로 크게 늘어난 현금을 운용하는 과정으로 풀이된다. 당장 대규모 투자처를 찾기 쉽지 않은 만큼 유동성과 안정성을 갖춘 채권에 자금을 배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현재 AA급 이상 우량 신용채를 중심으로 투자 대상을 선별하고 있으며, 증권채 가운데서도 신종자본증권은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비교적 보수적인 운용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가 확보한 채권 투자 여력의 절반가량이 아직 남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주식시장의 변동성도 확대된 만큼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채권 매입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특정 기업의 자금이 국내 크레디트 시장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수요가 일부 채권에 집중되는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규모 매수세가 우량채의 발행금리와 유통금리를 끌어내리고, 기업별 신용도보다 큰손 투자자의 선호가 가격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향후 SK하이닉스가 투자 규모를 줄이거나 자금을 회수할 경우 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삼성전자가 비슷한 방식으로 채권 투자를 확대할지도 관심사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일부 여전채에 투자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아직 SK하이닉스처럼 회사채 시장 전반에서 적극적인 매수에 나선 정황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전자까지 대규모 채권 투자에 가세하면 국내 크레디트 시장의 수급 구조가 대기업의 현금 운용 방향에 따라 크게 좌우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의 경우 대규모 인수합병(M&A)에 나설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업계에서는 현재 삼성전자의 현금 규모를 감안하면 의미 있는 자금 활용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최소 수십조원 규모의 거래가 필요하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 때문에 단기간 내 대형 M&A가 성사되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IB업계에서는 지난해만 해도 삼성전자가 수조원 규모의 매물을 적극적으로 검토했지만, 올해 들어서는 이 정도 규모의 거래는 사실상 주요 검토 후보군에도 들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전해진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사실상 회사채 시장의 큰손으로 자리 잡으면서 삼성전자가 막대한 현금을 어떻게 운용할지가 최근 업계의 관심사 중 하나”라며 “단기간 내 대형 M&A가 쉽지 않다면 SK하이닉스처럼 채권 투자를 확대하는 방안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관측이 나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