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락장에 연기금은 어디로…리밸런싱 여력 소진에 '안전판' 약화
입력 2026.07.29 07:00

4~5월 외국인 매물 받아낸 기관…이달 순매도로 전환
6월 2조 넘게 판 연기금, 이달 순매수는 800억원에 그쳐
"목표비중 상향에 리밸런싱 여력 소진"…급락장 '안전판' 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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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코스피가 중국 반도체발 공급 확대 가능성에 급락했지만 국민연금 등 기관들이 '시장 안전판'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상반기 주가 상승 시기에 기관 자금이 외국인 차익실현 매물을 받아내느라 급급했던 데다 국민연금의 리밸런싱 여력도 상당 부분 소진되면서, 정작 급락장에서 추가 매수에 나설 여지가 줄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8일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0.84% 내린 6023.63에 마감했다. 장중 6000선이 붕괴되기도 했다. 중국 최대 D램 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상장과 중국산 액침형 심자외선(DUV) 노광장비 생산 소식이 메모리 공급 확대 우려로 번지면서 외국인 매도세가 코스피를 강타했다.

    과거 급락장에서는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보험사 등 장기 투자자가 외국인의 매물을 받아내며 지수 하단을 지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올 상반기에도 외국인이 대규모 순매도에 나설 때 기관과 개인이 매물을 나눠 받으며 낙폭을 제한하는 모습이 반복됐다.

    실제 기관 수급은 4~5월 뚜렷한 방어 역할을 했다. 기관은 4월 9조3000억원, 5월 8조7000억원을 각각 순매수하며 외국인 매물을 흡수했다. 그러나 순매수 규모는 6월 2조6000억원으로 급감했고, 7월에는 1조1000억원 순매도로 돌아섰다. 상반기 증시를 떠받쳤던 기관 수급이 빠르게 약해진 셈이다.

    국민연금이 포함된 연기금 등은 지난달 코스피에서 2조3454억원을 순매도하며 비중 조정에 나섰다. 시장에서는 6월 리밸런싱 이후 이달 조정장에서 연기금이 다시 매수에 나설 것이란 기대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 매수 규모는 미미했다. 연기금 등은 이달 들어 28일까지 코스피에서 약 800억원을 순매수하는 데 그쳤다. 이날 장중 800억원 넘게 순매수했음에도 월간 누적 매수액은 6월 순매도 규모의 4%에도 미치지 못했다. 지난달 확보한 자금으로 시장 하단을 받칠 것이란 기대와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시장에서는 연기금이 급락장에서 적극적으로 매수하지 못하는 배경으로 상반기 리밸런싱 구조의 변화를 꼽는다. 

    통상 연기금은 주가 상승으로 국내 주식 비중이 목표치를 웃돌면 일부를 매도하고, 조정 국면에서는 확보한 자금으로 다시 매수한다. 상승장에서는 과열을 식히고 하락장에서는 시장 하단을 지지하는 구조다.

    그러나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 5월 올해 국내 주식 목표비중을 기존 14.9%에서 20.8%로 5.9%포인트 높였다. 당시 실제 국내 주식 비중이 목표치를 크게 웃돌자 목표비중 자체를 현실화해 기계적인 리밸런싱 매도 부담을 줄이는 방식을 택했다.

    목표비중 상향으로 코스피 상승 과정에서 상단을 눌러야 할 리밸런싱 매물은 줄었다. 외국인과 패시브 자금,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 자금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형주로 집중되는 동안 연기금의 기계적 매도 압력도 약해졌다. 시장에서는 이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가격 조정이 지연되고 지수가 기업 실적보다 빠르게 상승했다고 보고 있다.

    문제는 매크로 환경이 악화되고 수급 방향이 바뀐 이후다. 외국인과 레버리지 자금이 동시에 이탈했지만 기관의 순매수 강도는 이미 약해졌고, 6월 리밸런싱 이후 기대됐던 연기금의 재매수도 제한적인 수준에 그쳤다. 상반기 상승장에서 기관성 자금과 리밸런싱 여력을 앞당겨 활용한 결과, 급락장에서 동원할 수 있는 '총알'이 부족해졌다는 설명이다. 

    국민연금의 본래 역할은 증시를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 수익률과 기금 안정성을 고려해 자산을 운용하는 데 있다. 다만 올해 국내 주식 목표비중이 상향되면서 리밸런싱을 통해 시장 변동성을 완충하던 기능은 이전보다 약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상승장에서는 매도 압력이 줄어 증시를 떠받쳤지만, 반대로 급락장에서는 추가 매수 여력도 제한되면서 시장 변동성이 확대됐다는 분석이다.

    한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코스피 6000선 이상은 펀더멘털보다 수급이 앞선 오버슈팅 구간이었다"며 "5월 목표비중 상향으로 상단에서 브레이크를 걸어야 할 물량이 잠겼고, 외국인과 패시브, 레버리지 자금이 한 방향으로 몰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