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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해 상반기 은행과 연기금·공제회 등 기관 투자가(LP)의 자금 운용을 관통한 키워드는 증시 쏠림이었다. 예금 만기 자금과 대기성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이동했고, 기관투자가들은 높은 수익률을 내는 상장주식에 무게를 실었다. 회수가 막힌 사모펀드(PEF)에 새로 돈을 묻어둘 유인은 그만큼 약해졌다.
하반기 들어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증시가 급등락을 반복하는 가운데 한국은행이 3년6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시중자금이 다시 예금으로 이동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상반기 PEF 출자 계획을 미루거나 축소했던 출자자들도 시장으로 들어오는 자금이 얼마나 되는지 살피며 하반기 집행 여력을 다시 계산하기 시작했다.
상반기와 비교하면 자금 흐름의 변화는 뚜렷하다. 지난 1월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은 한 달 동안 22조4705억원 감소했고 정기예금도 2조4133억원 줄었다. 반면 투자자예탁금은 지난해 말 87조8291억원에서 1월 말 106조324억원으로 18조2033억원 늘었다. 코스피 상승세가 가팔라지자 은행에 머물던 돈이 증권계좌로 이동한 결과로 풀이됐다.
7월에는 방향이 뒤집혔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 15일 기준 965조2949억원으로 6월 말보다 15조8950억원 증가했다. 지난해 5월 이후 1년2개월 만에 가장 큰 증가 폭이다. 코스피가 9000선을 넘어섰던 지난달 23일 136조8314억원까지 불어났던 투자자예탁금은 이달 16일 108조819억원으로 28조7495억원 감소했다.
한국은행이 지난 16일 기준금리를 연 2.50%에서 2.75%로 올린 데 이어 주요 은행이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를 3%대로 높인 점도 자금 이동을 자극하고 있다. 상반기에는 주식시장의 기대수익률과 비교해 예금의 매력이 크게 떨어졌지만, 최근에는 증시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연 3%대 확정금리의 상대적인 매력이 커졌다.
다만 정기예금 증가액 전부를 증시에서 빠져나온 신규 자금으로 보기는 어렵다. 같은 기간 5대 은행의 수시입출식예금 잔액은 17조7879억원 감소했다. 기업과 기관이 대기성 자금을 정기예금으로 옮긴 영향도 섞여 있는 만큼 실제 은행권 순유입 규모와 자금 주체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평가다.
LP들도 비슷한 분위기다. 자금시장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곧바로 PEF 출자 규모를 확대하기보다는 회원 부담금과 예탁금 등 자체 자금 유입, 기존 투자자산의 회수, 앞으로 예정된 캐피털콜 규모를 함께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상반기처럼 출자 가능성을 일찌감치 닫아두기보다 하반기까지 선택지를 열어놨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로 꼽힌다.
올해 초만 해도 주요 LP 사이에서는 국내 PEF 출자를 한 해 건너뛰겠다는 기류가 강했다. 증시 호황으로 상장주식에서 목표수익률을 충분히 확보한 데다 PEF의 투자금 회수는 지연됐기 때문이다. 교직원공제회와 행정공제회 등은 국내 PEF 블라인드펀드 정기 출자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고, 일부 기관은 크레딧이나 기존 거래 운용사에 대한 개별 출자(리업)만 검토했다.
최근에는 하반기 출자 움직임이 하나둘 구체화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이르면 이달 중 국내 PE·벤처캐피탈(VC) 블라인드펀드에 4000억원 안팎을 출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해보다 출자 시점을 한 달가량 앞당기는 방안이다. 앞서 교직원공제회도 이달 VC 블라인드펀드에 최대 1000억원을 출자하기 위한 운용사 선정에 착수했다.
국민연금 역시 국내 PEF 출자 재개 가능성이 거론된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국내 PEF 정기 출자를 건너뛴 뒤 올해도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지만, 지난 9일 국내 벤처펀드 위탁운용사 6곳을 선정한 데 이어 22일에는 국내사모투자 위탁운용사 선정 기준을 공시했다. 아직 국내 PEF 출자 규모나 일정이 정식으로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시장에서는 관련 절차를 준비하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과학기술인공제회와 우정사업본부도 하반기 출자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그렇다고 LP 출자 가뭄이 곧바로 해소될 것으로 낙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기준금리 상승은 예금과 채권의 기대수익률을 높이는 동시에 차입 비중이 큰 바이아웃 투자의 부담도 키운다. 증시 조정이 깊어지면 전체 자산에서 대체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기계적으로 높아지는 '분모 효과'가 발생해 오히려 신규 출자 여력이 줄어들 수도 있다.
은행권 자금도 일반 블라인드펀드보다는 국민성장펀드와 연계된 정책성 펀드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은행이 일반 PEF에 지분성 자금을 출자하면 높은 위험가중치가 적용되지만 국민성장펀드 연계 투자에는 위험가중자산(RWA) 부담을 덜어주는 유인이 있기 때문이다. 예금이 늘더라도 시중은행 자금이 일반 PEF 시장으로 고르게 흘러가기는 어려운 구조다.
이에 따라 하반기 LP 자금은 전통적인 바이아웃 펀드에 일괄적으로 풀리기보다 회수기간과 현금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전략으로 선별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안정적인 이자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크레딧과 사모대출, 투자 회수와 유동성 공급을 함께 노릴 수 있는 세컨더리, 정책금융과 매칭되는 첨단산업 펀드 등이 우선 검토 대상으로 거론된다.
한 기관투자가(LP) 관계자는 "상반기에는 증시 수익률이 높고 가용자금이 빠듯해 PEF 출자를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면, 하반기에는 증시 변동성과 자금 회귀 가능성을 확인하며 출자 재개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라며 "다만 바이아웃보다는 크레딧과 사모대출 등에 우선순위를 두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