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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SK하이닉스가 분기 영업이익 60조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또 갈아치웠지만 주가는 파랗게 질려가고 있다. 사업은 순항하고 있지만 시장의 시선은 당장의 실적보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와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후속 제도 도입 등 외부 변수에 쏠려 있는 탓이다. 회사 펀더멘털과 시장 평가의 괴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29일 SK하이닉스는 실적 발표회를 열고 2분기 연결기준 매출액이 79조3187억원, 영업이익이 60조5426억원으로 각각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매출액과 영업이익 모두 재차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상반기 누적 매출은 사상 처음으로 100조원대로 올라섰고, 전년 동기와 비교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57%, 557% 증가했다.
이번 분기 당기순이익은 93조9225억원을 기록했다. 키옥시아(도시바) 투자지분 등 투자자산 매각·평가이익을 약 63조3000억원 반영하면서 순영업외이익은 62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당기순이익률은 118%에 달한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일부 고부가가치 제품의 출하가 하반기로 미뤄진 탓에 영업이익 자체는 시장 기대치를 소폭 밑돌았다. 그러나 올 들어 주요 고객사들과 벌써 10건 이상의 LTA를 체결했고, 하반기 이후 제품믹스가 개선되며 실적 상승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등 메모리 사업 자체는 순항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회사는 "클라우드 서비스사업자(CSP)들의 인공지능(AI) 투자는 중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이라며 전방 인프라 투자 둔화 우려를 일축했다. 중국의 고효율 AI 모델 등장으로 인한 전방 설비투자(CAPEX) 감소 우려가 있기는 하나 대규모로 구축한 AI 인프라의 활용도를 높이는 과정일 뿐 투자 축소 국면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또 고효율 AI 모델은 오히려 서비스 이용 확대로 이어져 메모리 수요를 늘릴 것이라 덧붙였다.
생산능력(캐파) 확대 역시 확인된 고객 수요를 기반으로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회사는 올해 CAPEX를 40조원 후반대로 예상하면서도 M15X 팹(Fab) 조기 양산과 용인 1기 팹 클린룸 개소 등 이미 발표한 투자 외에 추가적인 대규모 증설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고객 수요 가시성과 투자 효율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캐파를 탄력적으로 운영하겠다며 공급과잉 우려에도 선을 그은 것이다.
현금 창출력이 크게 강화한 만큼 주주환원 확대 의지도 재차 내비쳤다. 2분기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약 90조원 수준까지 늘어났다. 다만 미국 증권법상 ADR 관련 공시 규제로 인해 구체적인 환원 방안은 아직 공개하기 어렵다며, 다양한 주주환원 방안을 검토해 연내 시장과 공유하겠다고 약속했다. 회사는 "미래 투자와 재무 안정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자본배분 정책을 운영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장 초반 SK하이닉스 주가는 전일보다 4.45% 이상 오르며 161만9000원까지 올랐다. 그러나 실적 발표를 마친 뒤 폭락하기 시작해 결국 140만원선 아래로 내려갔다. 전 거래일 14% 하락한 데 이어 또다시 11%대 하락을 거듭한 것이다. 지난 6월 장중 기록한 최고가(298만7000원) 대비 하락폭은 50%를 훌쩍 넘기게 됐다.
시장이 이미 알고 있는 메모리 사업의 펀더멘털보다는 새로운 변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탓으로 풀이된다.
기관투자자 관심이 집중됐던 ADR 후속 제도와 관련해서는 양방향 편저빌리티(상호전환)가 당분간 제한될 것이라는 점이 처음 공식 확인됐다. 국내 금융당국의 후속 제도 미비와 규제 문제가 우회적으로 거론됐다. 이날 발행 신주가 한국거래소에 상장되는 만큼 30일부터 나스닥에 상장된 ADR을 원주로 전환하는 것은 가능해지나, 국내 증시에 상장된 원주를 ADR로 전환할 때에는 증권신고서 제출 등 비대칭 규제가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초 발행된 1779만주의 ADR 역시 사실상 유통한도처럼 작용할 가능성이 높게 됐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결국 이렇게 되나 하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크다. ADR 프리미엄이 나스닥에서 따로 형성된채 고여 있으면서 SK하이닉스 보통주 주가는 눌려 있게 될 전망"이라며 "후속 제도가 마련되지 않았을 때의 부작용이 더 커 보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중국 창신메모리(CXMT)와 양쯔메모리(YMCT)로 인한 글로벌 메모리 경쟁구도 변화에 대한 리스크 역시 이제 막 증시에 충격을 가하기 시작한 참이다. 투자업계에서는 양사가 당장 SK하이닉스나 삼성전자의 주력 시장을 위협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본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범용 메모리 공급사가 등장한 것 자체만으로도 SK하이닉스의 기업가치 평가 근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는 30일 예정된 삼성전자의 2분기 실적 발표회 역시 상당한 주목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 역시 SK하이닉스나 마이크론처럼 주요 고객사와 LTA를 속속 체결하고 있고, HBM에서 상당한 성과를 공유할 것이라 기대된다. 그러나 현재 시장의 조정·투매를 멈춰세울 수 있을지는 낙관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많다.
외국계 투자은행(IB) 한 관계자는 "기관 문의가 빗발치고 있기 때문에 정신 없이 대응하고 있는데, 사실관계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비이성적이고 과도한 조정으로 판단하지만, 이런 흐름이 언제 바뀔지는 알기 어렵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