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코스피가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가 발동하는 초유의 폭락장을 연출하면서 기관투자가들의 운용 현장에도 비상이 걸렸다.
최근 낙폭이 커진 반도체주를 저가 매수 기회로 보고 새로 담았던 기관들마저 예상보다 큰 추가 하락에 직면하면서다. 증권사 자기자본투자(PI) 부서와 공제회 등에서는 손절 기준에 근접한 포트폴리오를 다시 들여다보며 매도 여부를 저울질하는 분위기다.
3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기관투자가들은 급격한 지수 하락에 따라 보유 포트폴리오의 손실 규모를 점검하며 리스크 관리 수위를 높이고 있다.
코스피와 코스닥에서는 지난 28일에 이어 29일에도 거래가 일시 중단되는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양 시장에서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가 동시에 발동한 것은 처음이다. 코스피는 이틀간 16.82% 하락했다. 코스피 시가총액 1, 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2거래일 동안 각각 17.91%, 22.85% 하락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손절매(Loss Cut)를 고민하는 곳도 적지 않다. 증권사 PI와 공제회 등 주요 기관들은 내부 규정에 따라 일정 수준 이상의 손실이 발생하면 대응 절차를 밟는다.
업계에서는 투자 원금 대비 약 30% 안팎을 손절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정 기간 손실 기준을 하회하면 임원 보고 및 손절매위원회 등의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 식이다. 이틀 동안 상당수 종목이 20% 안팎 급락하면서 손절 기준에 근접한 운용 계정도 적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만 손절 기준에 도달했다고 곧바로 전량을 처분하는 것은 아니다. 내부 심의를 거쳐 손절을 유예하거나 보유를 이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이번 급락으로 손절 기준에 근접하거나 이를 넘어서는 포트폴리오가 평소보다 크게 늘어났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 기관투자가는 "손절매 기준에 해당됐다고 해서 기계적으로 전량을 파는 구조는 아니다"라며 "시장 상황이 좋지 않으면 손절을 유예하는 경우도 많고, 기관마다 판단 기준도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지금 같은 장에서는 손절 기준에 걸리는 포트폴리오가 평소보다 많아질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운용 현장에서는 손절 기준에 도달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비중을 줄이는 사례도 거론된다. 일정 기간 손실 한도를 초과하면 위원회 개최와 임원 보고 등 후속 절차를 거쳐야 하는 만큼, 향후 시장 전망이 밝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기준에 도달하기 전에 미리 비중을 줄이는 것이 낫다고 보는 운용역들도 있다는 설명이다.
한 운용사 운용역은 "이주 초엔 부서에 따라 종일 자리도 비우지 못하고 로스컷 대응을 하는 곳도 있었다"며 "오랜기간 증시를 지켜봐왔지만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는 예상치 못했던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운용 기조가 보수적으로 바뀌는 배경에는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 변화도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기관투자자들 사이에서는 "AI 인프라 투자 장이 사실상 끝났다"는 반응이 늘어나고 있다. 단기 반등 가능성은 열어두더라도 이전과 같은 강한 상승 국면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는 시각이 확산하면서, 최근 반도체주 비중을 늘린 기관들의 고민도 더욱 깊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시장에서는 지난주까지만 해도 반등 기대감이 형성되면서 선물 헤지 규모를 일부 줄였던 기관들이 이번 급락으로 대응 부담이 더욱 커졌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오늘은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손절 여부를 검토하느라 PI 부서가 쉴 틈이 없었을 것"이라며 "지금은 수익을 내는 것보다 손실을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한 국면"이라고 말했다.
다만 손절 압력 역시 기관별로 차이가 크다는 분석이다. 매입 시점과 평균단가, 레버리지 활용 여부, 보유 업종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단기 반등 가능성은 열어두면서도 이전과 같은 강한 상승 국면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당분간 기관투자가들의 운용 전략 역시 수익 확대보다 손실 관리에 무게를 두는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