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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연일 폭등과 폭락이 반복되는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어지럼증을 느끼는 건 비단 개인투자자들 뿐만은 아니다. 코스피가 1만포인트를 바라보며 환호했던 운용사들 상당수는 당장 '올 하반기에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부터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나마 버틸 수 있는 대형 기관들 역시 생존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데, 그 누구도 어떤 방식으로 탈출구를 마련해야 할지 가늠하기 어려운 형국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반도체의 호황은 더이상 새로운 호재로 작용하지 못한다. 역대급 실적 발표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은 이미 내년 이후의 리스크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코스피와 코스닥을 막론하고 마땅한 주도주를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 어쩌면 장기간 이어질 지 모르는 지루한 순환매장에선 제각각의 생존 경쟁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 1번지 여의도의 분위기는 침울하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코스피가 9000선을 넘나들며 따뜻한 연말을 기대했던 운용사들의 상당수는 마진콜 위기에 처했거나, 이미 대규모 손실을 확정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A)는 "2~3배 레버리지를 일으켜 투자하는 중소형 운용사들 가운데, 이번 주 폭락장에서 마진콜을 당한 곳이 많다"며 "이미 대규모 자본 손실을 기록하고 폐업을 고민하는 곳도 적지 않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시장을 이길 수 있단 자신감에 차 있던 액티브펀드 운용사들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펀드는 하락장에서도 일정 수준의 수익률 방어가 가능하다. 다만 개별종목과 파생상품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시장 벤치마크(BM)를 상회하는 수익률을 목표로 하는 액티브 운용은 상승장에선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반대로 하락장에선 수익률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액티브펀드를 운용하는 한 관계자(B)는 "담보 부족으로 레버리지 사용하는 헤지펀드 또는 부티크 하우스들의 청산이 계속 진행 중인데, 일부 청산이 이뤄지면서 신용잔고가 줄어들어야 시장의 변동성이 다소 줄어들 것으로 본다"며 "과매도 구간이 지나면 반드시 반등이 올텐데, 실적이 뒷받침되는 전기·전력·조선·방산·반도체 등 어떤 섹터에서의 반등이 가장 크게 올지 선별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증권사에서 기업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임직원들 사이에선 연초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국내 증권사 기업금융부 한 관계자(C)는 "장이 급락한다고 해서 영업의 스타일이 180도 바뀌진 않지만, 주가수익스와프(PRS), 주식담보대출, 인수금융 등과 같은 주가와 연동한 거래들은 아예 언급하지 않게 됐다"며 "대안으로 메자닌 상품을 제안하지만 이 역시도 (발행사에서) 굉장히 신중하게 검토하는 분위기다"고 말했다.
운용사에는 투자자들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자산을 위탁한 수익자로부터 목표수익률 변경치와 앞으로의 계획을 상세히 전달 해 달라는 요청이 대부분이다.
국내 한 중견 자산운용사 관계자(D)는 "최근 며칠 새 올해 수익률이 어떻게 될지, 운용은 어떻게 해나갈지에 대한 투자자들의 전화가 끊이질 않는다”며 "현재로선 운용 방식에 변화를 주긴 어려운 상황이지만, 목표 수익률 자체는 조정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연초 코스피의 상승은 반도체와 전력기기, 방산, 조선 등 일부 산업군의 상승에 기댄 측면이 강하다. 투자자들의 관심사는 역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이 다시 증시 주도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에 모이고 있다.
국내 한 대형 운용사 주식운용 관계자(E)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실적은 의심할 여지 없이 양호하지만, 최근 투자자들은 중국발 반도체 위기 그리고 AI생태계 순환자금에 대한 우려를 생각보다 크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리스크를 상쇄할만한 요인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 실적만으로 가파른 (주가의) 상승세를 회복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고 평가했다.
국내 한 대형 증권사 한 관계자(F)는 "반도체 기업들이 돈 버는 건 더 이상 주가 상승 재료가 못되고, 앞으론 현금을 어디에 쓰느냐가 더 중요해 보인다"며 "반도체 기업이 돈 많이 버는 게 오히려 AI 사이클 저해한다는 얘기도 있는데, 현재는 해당 기업들이 장기적으로 돈을 벌 수 있을지 없을지 의심하는 단계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하고 나면 주식시장에서 대단히 큰 수익을 거둘 수 있었던 종목은 많지 않았다. 사실 3000에서 9000, 다시 5000선까지 밀린 현재의 상황을 이변으로 여기지 않는 시각도 존재한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G)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를 빼면 코스피는 여전히 고평가 구간이라고 생각한다"며 "2분기 주요 기업들의 실적들이 예상보다 양호해 기업들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강해지고 있단 점은 긍정적으로 보지만, 연초와 같은 강한 상승세가 재현 될 수 있을진 미지수다"고 평가했다.
현재로선 증시안정자금과 같은 긴급상황에 투입될 정책 자금의 집행은 기대하기 어렵다. 지방선거를 앞둔 연초만 하더라도, 주가 부양에 대한 정치적 필요성이 컸지만 현재로선 정치적으로 현 상황을 타개할 유인도, 개연성도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운용사 관계자(E)는 "코스피가 3000선 수준까지 밀렸을 당시에도 증안자금의 투입은 매우 제한적이었는데, 현재의 상황에선 정책 자금이 투입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며 "개인 및 기관들의 손실의 폭이 커졌다고 해서 정부가 나서 시장에 개입하는 건 상당히 위험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삼성과 하이닉스가 주도하지 못하는 상황을 예측한 일부 투자자들은, 앞으로의 투자처를 찾기에 분주하다. 오히려 그동안 투자자들의 집중도가 떨어졌던 중소형주 또는 경기부양을 위한 수혜주들이 주목 받을 수 있단 전망도 제기되기도 한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F) "하반기부턴 대형주가 아닌 화장품, 엔터테인먼트, 소비재와 같은 비교적 주목도가 떨어졌던 종목들이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며 "주택 공급대책, 3기 신도시 정책 등으로 건설관련 종목들도 일부 수혜를 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개인과 증권사, 공제회 등이 잔뜩 움츠려 든 것과는 달리 현재의 상황을 기회로 여기는 투자자들도 있다. 바로 외국인투자자와 대형 연기금이다. 최근의 폭락장에서 개인들의 매도세가 나타난 것과는 달리 외국인들과 연기금 그리고 연기금의 자금을 받은 투자신탁계정에서 순매수가 늘어나는 현상이 발생했다.
국내 한 대형운용사 관계자(H)는 "28~29일의 폭락장에선 연기금의 매수 포지션을 설정하라는 요청이 늘어났다"며 "외국인 역시 저점 매수 포지션을 잡고 시장에 재진입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해당 주체들의 움직임이 코스피 상승을 이끌 수 있을진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IB 한 대표급 관계자(I)는 "SK하이닉스가 미국에 ADR을 상장하면서 외국인투자자들은 하이닉스를 마이크론, 브로드컴, 샌디스크와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있게 됐다"며 "미국 기업들의 밸류(기업가치)와 비교해 여전히 한국 반도체기업(삼성전자, 하이닉스) 등이 저렴하단 판단이 깔려 있기 때문에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한국 주식시장에 외국인들의 유입이 당분간은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