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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체감온도가 35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서 4000명이 넘는 범농협 임직원이 광화문 집회 현장에 모였다. 당초 예상 인원인 2000명의 두 배다. 이들이 집회를 연 이유는 정부와 정치권이 공공기관 이전안 내에서 검토 중인 농협 본사 지방 이전 때문이다. 그간 '농협 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한목소리를 내던 정부와 농협 조합원은 '지방 이전 시도'를 기점으로 급격히 갈라섰다.
농협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조직 재배치 소식에 당황스러울 만도 하다. 서대문역 인근을 'NH농협타운'으로 조성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사를 걱정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농협이 현행법상 공공기관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은 차치하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실익이 명확하다면 이해관계자 간 논의를 통해 관련 법 개정을 하고 이전을 추진하면 된다.
정치권과 농협의 법적 명분 싸움을 걷어내고 냉정히 따져볼 시점이다. 핵심 질문은 하나다. 농협 조직의 지방 이전안이 과연 막대한 비용을 들일 만큼 실효성이 있느냐다. 결론부터 말하면 낙제점이다. 수천억원의 재정을 투입하고도 정작 핵심 인력은 서울에 남는 모순된 구조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명분과 실익을 모두 놓친 고비용·저효율 정책인 셈이다.
지방 이전 논의의 시작은 정부의 '제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로드맵'이다. 여야 정치권도 농협 지방 이전을 위한 법안을 발의했다. 지자체는 인구 유입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기대한다. 특히 전남은 한국농어촌공사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등이 자리잡은 나주 혁신도시에서 농협중앙회와의 시너지를 강조한다. 수도권 중심 운영에서 벗어나 농업 현장 중심으로 의사결정 구조를 바꾸자는 논리다.
문제는 정책의 실체다. 지역 균형발전 효과는 착시에 가깝다. 업계와 노조 측 추산에 따르면 농협중앙회 중앙본부 인력 1167명 중 실제 이전 가능 인력은 460여명에 불과하다. 자산운용, 전산, 대관 등 필수 기능의 서울 잔류가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1차 공공기관 이전 당시 3000~5000여명의 인원이 12개의 혁신도시로 각각 옮겨간 것과는 상황이 대조적이다.
이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는 이미 구축된 지방 인력 구조에서도 확인된다. 범농협 전체 임직원 9만6000여명 중 73%인 7만여명은 현재 전국 지방 현장에 근무 중이다. 이미 대다수 인력이 비수도권에 배치돼 지역 경제의 실핏줄 역할을 하고 있다. 수백명 수준의 본부 인력을 추가 이동시킨다고 지자체가 기대하는 지역소멸 대응이나 균형발전 효과가 나타나기는 어렵다.
비용과 효율성 측면의 손실은 수치로 잡힌다. 사측은 토지 매입비를 제외하고도 청사 신축에 최소 2520억원 이상의 자금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한다. 과거 단일 시설 신축 및 IT 센터 이전 시에도 4000억원 이상의 비용이 투입된 바 있다.
농협은 정부 혈세로 운영되는 조직이 아니다. 200만 농민 조합원이 출자한 민간 조직이다. 실효성이 불분명한 신축과 본사 분산에 소요되는 수천억원은 결국 영농 자금 지원, 농가 부채 탕감, 재해 지원 등 농민에게 직접 돌아가야 할 사업 재원의 직간접적 축소로 직결될 위험이 있다.
농협 자체의 경쟁력 약화도 치명적이다. 서대문 'NH농협타운'의 분산은 자본시장과 유통망에서의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 IB(투자금융), 자산운용, CIB(기업투자금융) 및 대관 업무는 여의도·광화문 자본시장 및 금융당국과의 실시간 대면 접촉이 필수적이다. 이에 더해 농협의 수도권 유통망 대응력 저하를 비롯해, 국회와 언론을 상대로 농민 권익을 대변하는 농협법 제127조상의 농정(農政) 활동 역시 심각하게 무력화될 수 있다.
농협 조직 안팎에서는 피로감을 호소한다. 지배구조 쇄신과 조합원 실익 제고 등 농협법 개정을 통해 추진돼야 할 본래 개혁 작업은 입법 공방 속에서 정체돼 있다. 본질적 체질 개선은 뒤로 밀린 채, 난데없이 '본사 지방 이전'이라는 정치적 이슈에 직원들 사이에 혼란만 가중되고 있는 모습이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사태를 과거 KDB산업은행의 부산 이전 추진 과정에서 벌어진 파행과 유사하다고 본다. 앞서 산업은행 역시 자본시장 경쟁력 약화와 인력 이탈을 우려하는 노조의 반발 속에 이전이 무산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산은은 장기 집회와 법적 공방 등에 따른 막대한 비용을 치렀다. 공공기관인 산은조차 이전 문제로 조직적 진통을 겪었는데, 민간 조직인 농협에 동일한 방식을 강행할 경우 더 극심한 갈등과 역량 훼손을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농협 지방 이전이 강호동 회장의 사법 리스크 회피를 위한 정부 코드 맞추기라는 풍문이 있는 것 자체가 지방 이전이 실익보단 손실이 더 크다는 방증"이라며 "본사 이전이 정치권 일각의 주장에 따라 '농협 개혁'의 탈을 쓰고 있는 모양새인데 농협 개혁의 핵심은 지배구조 개편으로 농협 내 의사결정 구조를 합리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