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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부실기업을 신속히 퇴출하기 위해 강화한 시가총액 상장폐지 기준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시가총액 기준에 미달한 기업을 개인투자자들이 집중적으로 매수하면서 상장 유지 여부가 기업의 경영 개선보다 투자자 집단행동에 좌우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초기에는 장수기업과 사회공헌 기업을 살리자는 매수였지만 이후 저시가총액 종목 전반으로 번지며 '상폐 방어주 테마'로 변질된 셈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5월 한국거래소 상장규정 개정안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상장폐지 기준은 올해 7월 1일부터 300억원, 내년 1월 1일부터 500억원으로 높아진다. 코스닥시장 기준은 같은 기간 각각 200억원과 300억원으로 상향된다. 부실기업을 신속하고 엄정하게 퇴출해 시장 신뢰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기존에도 시가총액 미달은 상장폐지 요건 중 하나였다. 다만 지난해 말까지 기준이 코스피 50억원, 코스닥 40억원에 불과해 퇴출 장치로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앞으로 시가총액이 기준을 30거래일 연속 밑돌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고, 관리종목 지정 이후 90거래일 동안 45거래일 연속 기준을 웃돌지 못하면 상장폐지된다.
이달부터 상장폐지 기준이 대폭 강화되자, 엉뚱하게도 '애국 테마주' 열풍이 불었다. 기준이 강화 이후 시가총액 300억원에 미달하거나 이에 근접한 코스피 종목에 매수세가 집중된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종목 게시판을 중심으로 오랜 기간 국내에서 사업을 이어왔거나 사회공헌 활동을 해온 기업의 상장폐지를 막자는 움직임이 확산했다.
수산물 가공업체 한성기업이 신호탄을 쐈다. 한성기업이 25년간 6·25전쟁 유엔군 참전용사를 위한 음악회를 후원해 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애국기업을 살리자'는 매수세가 붙었다. 지난달 26일 3915원이던 주가는 이달 20일 1만7340원까지 4배 이상 올랐다.
모나미는 60여 년간 국산 필기구 시장을 지켜온 '국민 볼펜' 기업이라는 점이 부각됐다. 독립유공자 후원과 독도 관련 사회공헌 활동도 재조명됐다. 지난달 26일 1065원이던 주가는 이달 16일 4475원까지 뛰었고 시가총액은 200억원대에서 한때 800억원 안팎까지 불어났다. 한성기업과 모나미 경영진은 홈페이지에 자필 감사문을 올리기도 했다.
매수세는 주방가구 업체 에넥스로 번졌다. 복지기관과 아동보육시설에 가구를 기부해 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난 8일 908원이던 주가는 20일 2800원까지 올랐다. 이후 모나리자와 비비안, PN풍년, 손오공 등 다른 저시가총액 종목으로도 순환매가 확산했다. 초반의 '애국기업 구하기'가 저시총 종목 전반에 대한 테마성 매매로 옮겨간 것이다.
단기간에 주가가 급등하면서 일부 종목은 투자경고종목으로 지정되거나 하루 동안 매매가 정지됐다. 이후 매수세가 약해지자 주가는 이달 중순 고점을 기점으로 빠르게 하락했다. 27일 오후 2시 기준 에넥스 주가는 1410원으로 고점 대비 49.6% 떨어졌다. 한성기업은 7000원으로 59.6%, 모나미는 1754원으로 60.8% 하락했다.
시가총액도 다시 상장폐지 기준선 안팎으로 내려왔다. 같은 시각 에넥스의 시가총액은 168억원으로 현행 기준인 300억원을 크게 밑돌았다. 모나미는 322억원으로 기준을 22억원 웃도는 데 그쳤고 한성기업은 433억원을 기록했다. 내년 1월 적용되는 500억원 기준으로는 세 기업 모두 미달한다.
부실기업 퇴출을 위해 높인 시가총액 기준이 역설적으로 저시총 종목의 단기 투기 수요를 자극한 셈이다. 상장 유지 가능성 자체가 투자 재료가 되면서 주가가 수배 올랐지만 실적이나 사업 경쟁력의 변화가 뒤따르지 않자 불과 수일 만에 고점 대비 절반 안팎 급락했다.
유통물량이 많지 않은 소형주는 비교적 적은 매수 자금으로도 주가와 전체 시가총액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 기업이 수익성을 개선하거나 신규 성장동력을 확보하지 않더라도 투자자들이 주가를 떠받치면 형식적인 상장 유지 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 구조다.
미국 증시에서도 상장폐지 위기에 놓인 저가주의 요건 회복 가능성에 베팅하는 거래가 이뤄진다. 나스닥의 1달러 최저주가 기준을 회복할 가능성을 노리는 매매가 대표적이다. 다만 국내에서 나타난 '기업 살리기'식 집단 매수보다는 역주식분할이나 상장 유지 공시 등을 노리는 단기 이벤트 투자 성격이 강하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부실기업을 퇴출하기 위해 시가총액 요건을 단기간에 높였지만 오히려 상장폐지 위기에 놓인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하는 현상이 나타났다"며 "기업가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서 주가가 다시 급락한 만큼 제도가 또 다른 테마주를 만든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