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등락 속 발 묶인 '증안펀드'…구조적 한계에 시장도 당국도 '고심'
입력 2026.08.04 07:00

시총 935조 증발 후 급반등 장세…수급 안정화 대책 필요성 부각
6년째 묶여 있는 10.7조 증안펀드…실효성·당위성 부족에 가동 '난망'
"증안펀드 어렵다면 대안이라도"…'유동성 보완책' 요구 목소리↑

  • 국내 증시가 기록적인 폭락 이후 급반등을 오가는 등 극심한 변동성을 나타내고 있다. 시장 수급 안정화 수단으로 증시안정펀드(증안펀드) 가동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증안펀드는 과거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됐다. 다만 지난달 29일 정부가 긴급시장점검회의 후 내놓은 방안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펀드 투입 시점과 민간 시장 내 '공적 성격' 자금 투입의 당위성을 두고 고민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지수는 7월 한 달 새(지난 1일 대비 30일 종가 기준) 32.64% 하락했다. 특히 지난 28일부터 30일까지 사흘간 전체 증시에서 사라진 시가총액만 935조8740억원에 달한다. 이에 28일과 29일에는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이틀 연속 동시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는 등 시장 불안이 심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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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31일 장중에는 코스피 지수가 전일 대비 15% 넘게 급반등하는 등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으나, 단기간에 누적된 높은 변동성으로 인해 시장의 경계감과 불안 심리는 여전한 모습이다.

    증권가에서는 이같은 급등락 장세의 배경으로 기업의 펀더멘털 변화보다 '수급 충격'을 꼽는다. 글로벌 거시경제 불확실성에 따른 외국인 매도세와 국내 기관의 수급 공백이 맞물린 상태에서, 증시 대기자금 감소와 개인투자자의 매수 여력 악화가 시장 유동성 위축시켰다는 진단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수급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정책적 유동성 공급 장치인 증안펀드 가동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현재 거론되는 증안펀드는 지난 2020년 3월 코로나19 여파 당시에 금융지주와 국책은행을 비롯해 증권사 등 27개 기관이 출자 약정을 체결해 10조7600억원 규모로 조성된 '다함께코리아펀드'다.

    업계에서는 증안펀드가 공포 심리에 따른 투매를 완화하고 연쇄적인 반대매매 발생을 차단하는 수급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서킷브레이커가 매매를 일시 정지시키는 수동적 제어 장치라면, 증안펀드는 정책기관 주도 아래 주식을 매수해 매도 압력을 완화할 수 있는 적극적 대응 수단이라는 이유에서다.

    다만, '다함께코리아펀드'는 조성 후 6년간 한 번도 가동되지 않았다. 2022년 주가 급락 시기와 2024년 비상계엄 사태 이후 증시 변동성이 심화한 시기에도 집행되지 않았다. 여태까지 조성된 증안펀드가 실제 주식을 매수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마지막이다.

    물론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증안펀드가 즉각 가동되기 어려운 일차적 원인으로 구조적인 '집행 시차'가 꼽힌다. 약정액 10조 7,600억 원은 상시 적립된 현금이 아니라 투자 수요 발생 시 자금을 납입하는 '캐피털 콜' 방식이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24년 기준 증안펀드의 즉시 가용 가능한 현금성 자산은 1,200억 원 안팎 수준에 불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펀드 규모와 즉시 가용자금 사이에 차이가 분명한 셈이다.

    결국 펀드 가동을 결정하더라도, 현재 주식시장 내 유의미한 영향력을 미치려면 추가 자금 투입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투자심의위원회를 열고 출자 기관별 이사회 의결을 거치는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2020년 펀드 조성 당시에도 협약 체결 후 실제 자금 납입까지 민간 금융권 기준 9일이 소요된 바 있다. 이와 같은 행정적 시차는 증안펀드가 비상 대책으로써의 시의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물론 금융당국의 의지만 명확하다면 펀드 자금 투입에 소요되는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금융시장이 불안하면 출자 금융사들도 자본 비율과 유동성 관리 부담으로 일부 의사결정이 신속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며 "증안펀드 출자분에 대한 건전성 규제와 자본비율 산정에서 당국의 한시적인 유연성 검토가 이뤄진다면 더욱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당국의 미온적 태도다. 금융당국이 선뜻 증안펀드 대책을 시행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금리·환율·유가 등 향후 거시경제 변수의 불확실성이다. 이에 따라 펀드 자금 투입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업계 시선 역시 당국의 신중론과 궤를 같이한다. 증안펀드가 적절한 시점에 가동되면 투매 완화 효과와 단기 변동성을 잠재울 수 있지만, 주가의 급등락 추세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수단은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대내외 변수가 얽혀 있는 상황에서 확실한 종합 대책 없이 증안펀드를 가동하면, 정작 유동성 공급 효과는 미미한 채 향후 사용할 수 있는 핵심 정책 자원만 잃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업계 전반에 깔려 있다.

    민간 공동 자금으로 조성된 펀드의 사용 당위성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다. 주식시장에 대한 공공 성격의 자금 투입은 채권시장과 달리 특정 주식 투자자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특성이 있어 정부 개입의 명분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이 자본시장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와 함께 증안펀드가 외국인 등 기존 투자자의 매도 물량을 받아주는 출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상황이다.

    결국 당국은 지난 긴급 시장상황점검회의(F4 회의) 등을 거치며 레버리지 상품에 대한 시장 과열에 따른 수급 왜곡부터 억제하고 유동성 추이는 지켜보자는 미온적 대응으로 가닥을 잡았다. 업계에서도 당국이 증안펀드 가동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 기준은 단기 급등락보다, 개인 매수여력 저하의 고착화 등 수급 불안이 금융기관의 건전성 악화나 금융시스템 전체의 리스크로 전이되는지 여부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다만, 당국이 종합적인 상황을 고려하며 시장 수급 안정화 대책에 신중한 행보를 보이는 것을 두고 시장과 투자자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증안펀드 가동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시장 수급 충격을 매울 구체적 대안이라도 제시해야 됐다는 아쉬움이 터져나오고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증안펀드 가동에 있어 구조적 부담이 크다면 시장 플레이어로 참여하는 공적 기관인 연기금이나 국민연금의 시장 안정 역할 확대 등 대안이라도 선제적으로 제시했어야 했다"며 "현재 상황을 놓고 보면 금융당국이 갈피를 잡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