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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퇴직연금 기금화를 앞두고 국민연금공단의 역할이 어디까지 허용될지를 둘러싼 금융투자업계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은 공적 연기금의 운용 경험을 활용해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증권사들은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영역을 넘어 일반 기업과 외부위탁운용관리자(OCIO) 시장까지 참여할 경우 민간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와 노동계, 경영계 등이 참여한 실무작업반은 기금형 퇴직연금의 세부 제도 설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출범한 노사정 태스크포스(TF)는 올해 2월 기존 계약형과 기금형을 병행하고 퇴직급여 사외적립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내용의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정부는 이후 구체적인 제도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논의되는 기금형 퇴직연금은 은행·보험·증권사 등 금융회사가 참여하는 금융기관 개방형, 산업·업종별 노사가 공동으로 기금을 조성하는 연합형,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구성하는 공공기관 개방형 등이 거론된다. 수탁법인이 기금을 관리하고 필요에 따라 OCIO를 선정해 운용을 맡기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세부 방식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제도 설계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퇴직연금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꾸준히 모색해왔다는 설명이 나온다. 국
민연금은 과거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인 '푸른씨앗'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100~300인 사업장을 맡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공기업 등 공공기관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기금의 수탁법인 역할이 거론됐고, 최근에는 연합형 등 다른 수탁법인이 요청할 경우 OCIO 역할을 수행하는 방안까지 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의 역할론이 100~300인 사업장, 공공기관, OCIO로 점차 확대되는 흐름 자체에 주목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를 단순한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를 넘어 장기적인 제도 변화에 대비해 퇴직연금 시장에서도 공적 연기금으로서의 역할과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국민연금 제도 개편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적립금이 빠르게 증가하는 퇴직연금 시장이 국민연금의 새로운 역할을 모색할 수 있는 영역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다만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영역을 넘어 일반 기업과 민간이 조성한 기금까지 국민연금의 참여 범위가 확대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금융기관 개방형에서는 증권사와 은행, 보험사가 각자 수탁법인을 세워 가입자를 확보하고 운용 성과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이 시장에 국민연금이 같은 사업자로 참여하면 민간 기금 간 경쟁을 촉진하려던 제도 취지가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민간 운용사를 선정·평가하는 발주자인 동시에 퇴직연금 시장에서는 OCIO 경쟁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부담 요인"이라며 "국민연금의 위탁운용사인 금융회사가 퇴직연금 시장에서는 국민연금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이해상충을 막기 위한 정보 차단과 경쟁 원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도 설계 과정에서 기존 금융회사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도 업계의 불만이다. 업계에서는 정치권이 기존 퇴직연금 운용에 대한 금융회사들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 분위기인 만큼, 기금형 논의 과정에서도 금융회사들의 의견이 상대적으로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기금형 퇴직연금의 핵심 쟁점은 국민연금의 참여 범위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있다. 공공성이 필요한 영역에 역할을 한정할지, 민간이 경쟁하는 시장까지 참여를 허용할지에 따라 향후 퇴직연금 시장의 경쟁 구도도 달라질 전망이다.
한 증권사 퇴직연금 관계자는 "기금형 퇴직연금은 금융회사들이 운용 성과로 경쟁하고 가입자가 더 나은 기금을 선택하도록 하자는 취지"라며 "공공기관이 민간 금융회사와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참여 범위와 경쟁 조건부터 명확히 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