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IRP 수수료…퇴직연금 시장 '치킨게임' 조짐
입력 2026.08.05 12:06

삼성생명, 이달부터 IRP 수수료 전면 폐지
은행·증권 이어 보험까지…적립금 유치 경쟁 치열
"지속가능성 의문"…당국 판매 관행 점검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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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퇴직연금 시장이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은행과 증권사에 이어 보험사까지 수수료 무료 경쟁에 가세하면서, 적립금 유치를 위한 업권 간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이달 1일부터 IRP 운용관리·자산관리수수료를 전면 폐지했다. 가입 채널이나 적립금 규모와 관계없이 수수료를 없앤 것으로, 특히 대면 채널까지 수수료를 폐지한 것은 이례적이란 평가다.

    현재 증권사들은 대부분 비대면 가입자에 한해 수수료를 면제한다. 2021년 삼성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이 나란히 '다이렉트 IRP' 수수료 평생 무료를 선언한 이후, 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신한투자증권·KB증권 등 주요 증권사 대부분이 비대면 채널에 한해 운용관리·자산관리수수료를 받지 않고 있다.

    은행권은 적립금 규모 등에 따라 제한적으로 수수료를 부과한다. 신한은행은 비대면 가입 시 퇴직금 재원이 5000만원 이상일 경우에 수수료를 면제한다. KB국민·하나은행도 유사한 제도를 운영 중이다.

    삼성생명 입장에서 이번 조치의 재무적 부담은 크지 않다.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생명의 IRP 운용관리·자산관리수수료 수입은 약 105억원이다.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과 비교하면 0.05% 수준에 불과해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그럼에도 이번 조치가 주목을 받은 건 IRP 시장에서 성장 잠재력이 크다는 시각에서다. 삼성생명 전체 적립금(54조4000억원) 중 76.7%(41조7000억원)를 차지하는 DB형 상당수는 삼성그룹 계열사 물량으로 알려져 있다. DB형은 가입자가 퇴직하면 결국 IRP 계좌로 옮겨갈 수밖에 없는 구조인 만큼, 계열사 임직원들의 은퇴가 본격화하면 이 자금이 고스란히 IRP 시장으로 흘러 들어올 전망이다.

    현재 IRP 시장은 시중은행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작년 기준 적립금은 신한은행(19조5000억원), 국민은행(19조2000억원), 하나은행(16조3000억원) 순이었다. 삼성생명의 IRP 적립금은 약 4조원으로 업계 9위에 그친다. 이번 조치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IRP 부문에서 점유율을 끌어올리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IRP를 비롯해 퇴직연금 시장 전반의 고객 유치전이 한층 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IRP는 DB·DC에서 넘어오는 자금에 개인이 직접 납입하는 자금까지 있어 적립금 규모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베이비부머 은퇴를 시작으로 IRP 시장은 더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업자들의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다만 은행권은 신중한 반응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현재로선 수수료 정책을 바꿀 계획이 없다”며 "삼성생명은 DB 위주의 사업자라 IRP 시장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비용이 수반되는 대면 채널까지 수수료를 없앤 점을 두고 금융당국의 시선이 의식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면 상담·컨설팅에는 인건비 등 실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이를 '무료'로 내세운 마케팅이 과당 경쟁이나 원가 이하 판매 논란으로 번질 경우 당국의 판매 관행 점검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수수료를 없애도 비용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라며 "결국 다른 곳에서 메워야 하는 구조인데 이런 정책들이 한시적으로 운영되다 시장 상황에 따라 바뀐다면 투자자들의 혼란이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