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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민성장펀드가 정책자금과 민간 매칭자금을 앞세워 주요 사모펀드(PEF) 운용사(GP)의 펀드 결성을 예상보다 빠르게 마무리하면서 연기금과 공제회 등 기관투자가(LP)들의 하반기 출자 전략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GP들이 연기금과 공제회의 출자 공고를 기다렸다면, 올해는 기관투자가들이 유망 GP를 먼저 확보하기 위해 출자 일정을 앞당기는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오는 9월 국내 PEF 블라인드펀드 출자 재개를 준비하면서 일부 중견 운용사와 접촉해 실제 출자 지원 여부와 펀드 결성 상황 등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국내 PEF 정기 출자를 건너뛴 이후 2년 만의 재개를 앞두고 유망 운용사들의 펀딩 진행 상황을 먼저 점검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국내 사모투자 위탁운용사 선정 기준을 공개했다. 업계에서는 올해 대형 운용사와 중형 운용사를 다시 구분해 평가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대형 운용사 상당수가 이미 정책자금과 민간 자금을 확보한 만큼 중견 운용사에 대한 출자 기회를 확대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과학기술인공제회도 예년보다 출자 일정을 앞당기기로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기공은 지난해 9월 정기 출자사업을 공고했지만 올해는 8월 중 공고를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하반기 주요 기관의 출자 일정이 한꺼번에 몰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유망 운용사를 먼저 확보하기 위한 판단으로 풀이된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국내 PE·VC 블라인드펀드 위탁운용사 선정계획을 지난해보다 약 한 달 앞당겨 공고했다. 총 출자 규모는 3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800억원 줄었지만 공고 시점을 앞당기고 심사 절차를 서두르며 9월말~10월초 최종 GP를 선정할 계획이다.
한국교직원공제회도 기존 격년 출자 관행을 사실상 접었다. 교공은 현재 VC 출자사업을 진행 중으로, 절차가 끝나는 대로 이르면 9월 국내 PEF 출자사업을 공고할 예정이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PE와 VC 출자를 모두 진행하는 셈이다.
우정사업본부 역시 VC 출자사업을 시작했고 연내 국내 PEF 출자를 준비 중이다. 산재보험기금과 중소기업중앙회도 이미 운용사 선정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국민연금까지 9월 출자에 나설 경우 주요 기관의 공고와 심사가 사실상 같은 시기에 몰리게 된다.
업계에서는 올해 하반기 출자시장의 가장 큰 변화로 'LP도 GP를 선점해야 하는 시장'이 됐다는 점을 꼽는다. 과거에는 운용사들이 기관투자가의 공고를 기다리며 제안서를 준비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올해는 국민성장펀드 선정 운용사들이 민간 매칭까지 대부분 마무리하면서 기관투자가들도 먼저 GP의 펀딩 진행 상황을 확인한 뒤 출자 일정을 정하고 있다.
한 중견LP 관계자는 "좋은 GP를 놓치지 않으려는 기관들끼리 일정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출자 일정을 앞당겼다고 심사 기준이 완화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주요 기관들은 운용 경험과 외부 출자확약(LOC), 실제 펀드 결성 가능성 등에 대한 검증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군공은 올해 처음으로 동일 유형 블라인드펀드 운용 경험을 지원 자격으로 명시했고, PE는 최소 100억원, VC는 50억원 이상의 LOC를 요구했다. 과기공은 외부 전문기관을 통해 1차 정량평가와 운용사 실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국민연금 역시 운용사 체급을 다시 구분하고 트랙레코드와 펀드 결성 가능성을 중심으로 심사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LP 관계자는 "지금은 출자 시기를 늦추면 좋은 GP를 놓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 운용사에 돈을 넣을 수도 없다"며 "결국 펀드를 실제로 결성할 수 있는 운용사를 더 빨리, 더 까다롭게 고르는 경쟁"이라고 말했다.
국민성장펀드가 GP들의 자금조달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했지만 또 다른 경쟁도 시작됐다. 정책자금과 민간 자금을 확보한 운용사들이 늘어난 반면 실제 투자할 만한 기업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AI와 첨단산업 등 국민성장펀드의 투자 대상이 겹치는 만큼, 여러 운용사가 동일한 기업을 동시에 검토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펀드를 먼저 결성한 운용사들이 우량 투자처를 선점하기 위해 경쟁하는 구조다.
한 GP 관계자는 "국민성장펀드를 받은 하우스들은 펀딩은 대부분 끝났다고 보면 된다"며 "이제는 돈이 없는 경쟁이 아니라 좋은 회사를 먼저 찾는 경쟁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반면 국민성장펀드에서 탈락한 운용사들은 하반기 연기금·공제회 출자사업 결과에 따라 펀드 결성 여부가 갈릴 가능성이 크다. 정책자금을 확보하지 못한 만큼 일반 LP 자금이 사실상 마지막 대규모 펀딩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업계에서는 올해 하반기 출자시장이 단순한 유동성 회복 국면이라기보다 국민성장펀드 출범 이후 재편된 펀딩 질서 속에서 GP와 LP 모두 상대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에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에는 GP가 LP를 기다렸다면 이제는 LP도 GP를 기다려야 하는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