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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한국투자공사(KIC) 내 '전략투자계정' 설치에 속도를 낸다. 해외 국부펀드의 국내 유입을 이끄는 '앵커투자자' 역할을 맡기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글로벌 국부펀드에 비해 자본 규모가 작고, 이미 검증된 소수의 초대형 AI 딜에 자본이 쏠리는 모습이라 실제 유치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재정경제부가 발표한 '한국판 전략형 국부펀드 도입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KIC 내 전략투자계정을 신설해 반도체·AI데이터센터 등 첨단전략산업에 투자하고, 해외 국부펀드·자산운용사의 공동·후속투자를 유도하는 앵커투자자 역할을 맡기기로 했다.
재원은 산업은행·수출입은행·기업은행 등 공공기관 주식(약 16조원)과 물납주식(약 4조원)의 현물출자로 총 20조원+α를 조성하며, 경영권이 아닌 배당 목적으로 지분을 보유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한국투자공사법 개정안을 8월 중 발의해 연내 국회 통과, 내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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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정부는 애초 싱가포르 테마섹을 벤치마킹한 별도 기관 설립을 검토했다. 그러나 불과 몇 달 만에 방향을 바꿔 KIC 내 전략투자계정 신설로 선회했다. '신속한 운영 및 투자 개시'가 이유였지만 법 개정과 조직 정비 등을 거치면 기대처럼 빠르게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먼저 한국투자공사법을 개정해야 한다. 외화자산으로만 운용하도록 하던 기존 조문을 바꿔야 하고, 전략투자가 가능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된다. 2005년 법 시행 이후 처음으로 개정하는 사항이다. 현물 출자를 예정한 국책은행 등 관계기관과의 협의도 필수적이다.
결국 KIC를 동원한 건 국부펀드로서 쌓아온 '네트워크·위상'을 활용해 해외 국부펀드를 끌어와야 한다는 목적이 절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이 영역에 이미 여러 정책펀드가 겹쳐 있다는 점이다. 모태펀드, 국민성장펀드가 AI·반도체·소부장 등 비슷한 산업군에 투자 중이다.
정부는 국민성장펀드·모태펀드가 청산하는 시점에 우수기업을 선별해 지분을 이어받는 '이어달리기 투자'로 차별화를 설명했다. 다만 국민성장펀드가 아직 집행 초기 단계인 점을 고려하면 최소 수년간 역할 중복 등의 문제가 지속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전략투자계정이 본연의 기능 대신 정책펀드를 지원하는 역할에 그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조심스레 제기된다. 우선 자본 규모에서 경쟁력이 뒤처진다. KIC의 초기 자본금은 20조원(약 145억달러)으로 테마섹(401억달러)·무바달라(385억달러)·사우디 PIF(1212억달러) 등과 비교하면 매우 적다. 앵커 역할을 할 만한 실탄이 충분한지 의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 국부펀드가 국내 산업과 접촉한 사례도 많지 않다는 분석이다. 아랍에미리트 국부펀드 무바달라가 퓨리오사AI 투자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직 실제 투자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싱가포르 GIC가 카카오엔터테인먼트·배달의민족 등에 투자한 전례가 있지만, 정부가 유치하려는 AI·반도체 딥테크와는 결이 다르다.
더욱이 국부펀드 자금의 전반적인 흐름도 우려를 낳는다. 국부펀드 데이터를 집계하는 글로벌 SWF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걸프 국부펀드 투자액(539억달러·108건)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는데 이 중 절반가량이 미국으로 향했다.
스페인 IE 대학 국부펀드 연구소 보고서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준다. 18개월간(2024년 7월~2025년 12월) 국부펀드 직접투자 404억달러 중 AI 비중이 약 3분의 1이었는데, 그 자금 역시 스타게이트·오픈AI·데이터브릭스 등 소수 안건에 집중됐다. 세계 국부펀드 자금이 이미 검증된 소수의 초대형 딜로 쏠리고 있다는 뜻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국부펀드들이 전략적 투자를 확대하는 가운데 한국도 흐름에 맞출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인 일"이라면서도 "AI 밸류에이션에 대한 경계감이 커지는 시점에서 한국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성장펀드가 워낙 주목받는 상황이라 KIC 역시 단기 성과나 청산 실적에 맞춰 자금을 태우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온다"며 "기존 정책펀드의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장기 인내자본이라는 역할에 맞게 투자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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