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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휴가지 추천이요? 어휴 이런 시국에 어딜 가요. 자리 지켜야죠." (한 증권사 임원)
상반기 역대급 실적 축포를 쏘아 올렸던 여의도 증권가에 정적과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예년 같으면 한창 여름휴가를 떠날 시기지만, 증권사 임원진들 사이에선 휴가를 미루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하반기 들어 증시 변동성이 극에 달한 데다 금리 환경마저 불확실해지면서 리테일과 자산관리(WM), 투자은행(IB), 세일즈앤트레이딩(S&T) 등 주요 사업부문이 일제히 영업전략 재점검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들의 부담은 더욱 크다. 그룹 내 비은행 계열사 가운데 가장 큰 실적 기여를 기대받는 상황에서 상반기 실적을 떠받쳤던 리테일마저 흔들리자 증권사 최고경영자(CEO)와 임원진의 경계감도 한층 높아졌다.
여의도 본사 복도나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임원들의 스몰토크 주제도 휴가지 추천이 아닌 "눈치보여서 힘들다" 푸념으로 바뀌었다는 전언이다.
상반기 증권사 실적 상승을 끌어올렸던 리테일·WM 부문부터 기류 변화가 뚜렷하다.
iM증권 분석에 따르면 지난 6월 137조7000억원에 달했던 국내 증시 일평균 거래대금은 7월 들어 98조5000억원으로 한 달 만에 28% 급감했다. 증시 호황과 거래대금 증가에 힘입어 브로커리지 수익을 크게 늘렸던 증권사들로서는 급락장의 여파가 실적 직격탄이 되어 돌아오는 모습이다.
각 지점에는 갑작스러운 급락장을 예상하지 못한 투자자들의 항의성 전화도 빗발치고 있다. 증권사들은 손실을 입은 고객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직원들의 고객 응대와 사후 관리에 더욱 공을 들이는 분위기다. 일부 대형 증권사는 앞서 집행한 신용융자와 주식담보대출 등 신용공여 관리에 사력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WM 부문에선 휴가철에도 장기간 자리를 비우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변동성이 확대될수록 자산 배분이나 향후 증시 전망을 묻는 고액자산가들의 문의가 늘어나는데다, 급락 이후 손실을 본 고객들을 직접 달래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서다.
시장 상황에 따라 하우스뷰와 투자전략이 빠르게 수정되는 만큼 지점장이나 WM 담당 임원들이 평소보다 현장 상황을 더 자주 챙길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국내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A)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대표 우량주에서조차 미수채권이 발생해 일부 지점이 이를 해결하느라 상당히 애를 먹고 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또 다른 증권사 임원(B)도 “시장 변동성이 워낙 크다 보니 하우스뷰(House View)도 시시각각 달라질 수밖에 없어 시장을 예측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며 “현재는 지점 직원들의 투자자 응대를 밀착 관리하고 고객 이탈을 막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상반기 유가증권 평가이익으로 실적 효자 노릇을 했던 S&T 부문 역시 다가오는 변수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달 기준금리를 연 2.50%에서 2.75%로 0.25%포인트 인상한 가운데 시장에서는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도 지속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금리 인상 국면 초입인 만큼 향후 인상 속도에 따라 채권 평가손실 규모가 확대될 수 있다는 경계감도 크다. 증시까지 다시 흔들릴 경우 상반기 실적을 끌어올렸던 유가증권 관련 이익이 하반기에는 오히려 실적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여기에 공정거래위원회가 금융권 국고채 입찰 담합 건과 관련해 이달 말 전원회의를 열고 심의에 착수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최대 15조원대 과징금 부과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관련 금융사와 담당 임원들은 심의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 대형 증권사 S&T 관계자(C)는 “시장 상황이 녹록지 않다 보니 ‘이런 상황에 휴가를 갈 수 있겠느냐’는 푸념도 나오는 것 같다”며 “시장과 회사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일부 임원들이 휴가를 고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상반기 부진했던 IB 부문은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하반기에는 상반기 WM과 리테일에 집중됐던 북(Book) 배분을 더 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있었지만, 정작 공격적으로 북을 집행하기에는 시장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평가다.
특히 금리 방향성이 불투명해지면서 자금을 필요로 하는 기업과 이를 공급하는 금융사 사이의 눈높이 차이가 커지고 있다. 발행사는 추가 금리 상승에 앞서 낮은 수준에서 고정금리를 확정하고 싶어 하지만, 금융사는 향후 조달비용 상승 가능성을 감안해 높은 금리를 요구하거나 변동금리 조건을 선호하고 있다.
국내 한 대형 증권사 IB 관계자(D)는 “현재 고정금리와 변동금리 간 조건 차이가 상당하다”며 “발행사는 어떻게든 낮은 금리로 고정하고 싶어 하지만, 주선사 입장에서는 향후 금리 상승 가능성까지 고려해 고정금리를 높게 제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지 않으면 변동금리로 가야 하는데, 1년이든 2년이든 자금을 공급하는 기간에 확보해야 할 마진을 감안하면 금융사도 쉽게 양보하기 어렵다”며 “발행사와 주선사 간 금리에 대한 시각차가 커 지금은 영업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단기 조달 시장의 불안도 증권사들의 관망세를 부추기는 주요 요인이다.
최근 단기금리가 급등하면서 일부 대형 증권사는 시장에서 차환하려던 A1등급 기업어음(CP)을 예정대로 롤오버하지 못하고 직접 재매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만기가 돌아온 물량의 조달금리를 시장에서 맞추기 어려워지자 금융사가 자체 자금으로 물량을 떠안은 것이다. 이로 인해 증권사 내부적으로 "당분간 자금을 공격적으로 쓰지 말자"는 보수적 기조가 확산하기도 했다.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의 한 관계자(E)는 “지주 차원의 실적 압박은 거센 데 반해 IB 영업을 확대하기 위한 금리 환경은 우호적이지 않다. 여름 휴가 계획은 미루고 당분간 업무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