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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회계법인들의 인공지능(AI) 도입은 필수가 됐다. 그 속도와 방향은 회계법인의 회사 규모에 따라 서로 다르게 작동하고 있다. 대형 회계법인들은 글로벌 네트워크의 보안 규정과 플랫폼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곳이 있는 반면, 자체 AI 개발에 수백억원을 투입하며 업무 전반에 기술을 접목하는 곳도 있다. 중견 회계법인의 경우 상대적으로 작은 조직 규모와 고객 특성을 활용해 생성형 AI를 빠르게 업무에 접목하며 생존 전략으로 삼는 모습이다.
대형 회계법인 가운데서도 AI 투자와 활용 방식에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 삼일회계법인은 회계·세무 특화 생성형 AI인 'AI 어카운턴트(Accountant)'를 선보인 데 이어 계약서 분석, 문서 자동화, 내부회계관리제도(KSOX) 등으로 AI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AI 투자에만 수백억원을 투입하며 자체 기술과 데이터를 축적하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자체 생성형 AI 번역 모델 '링고'를 개발해 국제기계번역대회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AI 스타트업과 업무협약을 맺는 등 자체 데이터와 기술을 활용한 '소버린 AI' 역량 구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또 다른 대형 법인들은 글로벌 네트워크가 구축한 플랫폼을 중심으로 AI 기능을 확대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삼정회계법인은 스마트 감사 플랫폼 'KPMG 클라라(Clara)'에 생성형 AI 기능을 얹었고, 감사 자료 검색 시스템 '오딧세이(AuditSay)'도 별도로 개발했다.
한영회계법인은 글로벌 디지털 감사 플랫폼 'EY 캔버스(Canvas)'에 AI 에이전트를 도입해 위험평가와 감사절차 자동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자체 생성형 AI인 EYQ를 포함한 글로벌 AI 도구를 활용하고 있다. 안진회계법인도 글로벌 감사 플랫폼 '옴니아(Omnia)'에 에이전틱 AI를 접목해 감사 절차 자동화와 리스크 식별 기능을 강화했다.
겉으로는 모두 AI 투자와 활용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 기술의 출발점과 투자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는 평가다. 특히 글로벌 네트워크에 속한 대형 회계법인은 AI 활용에서도 본사가 정한 보안 규정과 데이터 관리 체계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국내 법인이 임의로 기능을 확장하거나 국내 고객 데이터를 별도로 학습시키는 데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보안 규정과 정보유출 리스크도 걸림돌이다. 회계감사는 고객의 재무정보와 민감한 기업 정보를 다루는 업무인 만큼 글로벌 보안 규정과 정보 유출 리스크 관리가 우선이다. 금융감독원 역시 지난 6월 열린 회계업계와의 간담회에서 AI 활용에 따른 감사정보 외부 유출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업무 효율성뿐 아니라 실제 비용 절감 효과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업계에서도 아직은 AI가 기대만큼 수익성을 높여주지 못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시 간담회 참석자들은 "AI 기술 활용 시 최종 검증 단계에서 오히려 인력과 시간이 많이 든다"며 "비용 절감 효과가 최근 감사보수 하락과 개발비 등을 상쇄할 수 있을지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고 신중한 의견을 드러냈다. AI 시스템 구축 비용과 낮아진 감사보수 사이의 괴리가 커 단기간 내 실질적인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중견 회계법인은 상황이 다르다. AI 활용이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는 인식이 강하다. 감사보수 경쟁 심화와 인건비 상승으로 수익성이 갈수록 악화하는 상황에서 업무 효율을 높이지 못하면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고객 구성의 차이가 AI 도입 속도를 가른다는 분석이다. 중견 회계법인의 주요 고객군은 비상장사와 중소기업이다. 상대적으로 개인정보보다는 상품 정보와 매출 정보, 생산 데이터 등을 다루는 비중이 높아 생성형 AI를 내부 업무에 접목하는 데 따른 규제와 보안 부담이 대형 회계법인보다 적다.
한 회계법인의 파트너급 회계사는 "민감한 고객정보를 다룰 때 상용 AI를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며 "중견 회계법인들의 경우 고객 특성상 보안 이슈에 상대적으로 덜 민감해 AI 활용 속도나 발전 속도가 굉장히 빠른 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회계사는 "중견 회계법인은 인건비 절감이 곧 수익성과 직결된다"며 "브랜드나 글로벌 네트워크보다 생산성으로 승부해야 하는 만큼 AI를 얼마나 빨리 내재화하느냐가 생존을 좌우할 것"이라고 했다.
AI 활용을 두고 대형사는 신뢰와 보안이라는 틀 안에서 신중하게, 중견사는 생존이라는 절박함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AI가 업계를 하나의 방향으로 밀어붙일 것이란 예상과 달리 현장은 각자도생식 생존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