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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주도하거나 독려하는 각종 펀드와 기금이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재정만으로 정책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우니 각종 인센티브를 앞세워 민간 자본을 유치하려는 것인데 이에 자금을 대야하는 기업들과 금융권의 부담은 크다. 당장 사업 고민이 큰 데다 과거 관(官) 주도 펀드들의 성적도 부진했던 터라 기업들의 고민은 더 깊어지는 모습이다.
역대 정부에서 '펀드'는 정책 철학의 선명성을 드러내고 국정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손쉬운 카드로 쓰여 왔다. 단순한 투자 상품 형태도 있지만 대체로 정부 재정을 마중물로 시장 자금이 더해져 조성되는 펀드가 많았다. 펀드가 정치적 테마가 되거나 '대통령의 한마디'로 시작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화제성 대비 영향력은 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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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번 정부는 전보다 펀드를 더 정교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이다. '국민성장펀드'가 대표적이다. 민관 자금을 바탕으로 첨단전략산업에 투자하는 이 펀드는 당초 100조원으로 구상됐는데 이후 150조원으로 확대 출범했고, 다시 200조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구상 단계부터 유례가 없는 사상 최대 규모였는데, 사업 영역과 규모를 거듭 키워가고 있다.
정부는 대기업과 함께 10조원 규모의 '산업성장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삼성, SK 등 특정 산업의 핵심 기업이 출자자로 나서 자사 공급망 내 소재·부품·장비 기업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벤처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목적의 'LP 성장펀드'도 본격 출범한다. 모태펀드가 맞춤형 사업을 설계해 기업 등 경험이 부족한 출자자의 참여를 유도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 첫 삽을 뜬 국가AI컴퓨팅센터 사업은 국민성장펀드와 삼성SDS 컨소시엄 등이 출자한 특수목적법인(SPC, 한국에이아이컴퓨팅)을 통해 진행된다. 한 기술기업과 광역자치단체가 손잡고 수백억원 규모 펀드를 설립했다. 이 외에도 여러 각종 현안마다 다양한 종류의 펀드들이 결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 정부 출범 당시는 국내외 정세 불안과 경기 침체에 따른 위기감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었다. 새로운 성장 산업을 키우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정부가 키를 잡아야 한다는 평가가 따랐다. 정부가 사업 참여자에 대해 각종 혜택을 부여하고, 이를 통해 시장에 새로운 투자자가 유입되는 선순환 효과도 기대됐다.
이처럼 관 주도의 펀드에 긍정적인 시각이 있다. 그러나 워낙 다양하고 큰 규모의 펀드가 만들어지니 이에 출자해야 하는 입장에선 벅찰 수밖에 없다. 반도체 등 일부 산업군을 제외하면 대부분 기업이 재무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가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고 기업들이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라도 실질은 다를 수 있다.
한 기관투자가 관계자는 "산업성장펀드는 일단 계획이 나오긴 했지만 실제 어떻게 만들어질지는 의문"이라며 "정부가 기업에 대해 자발적으로 의사결정하라고 하겠지만 기업 입장에선 압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정부는 다수 여당의 힘을 업고 이견이 있는 각종 법안 개정을 관철시키고 있다. 과거 '180석 여당'보다도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처음보다 지지율이 하락했다지만 이제 출범 1년여를 지났을 뿐이라 국정 동력은 여전하다. 기업들은 각종 규제나 노동 문제 등에서 정부의 협조가 필요하다. 펀드 출자가 '준(準)조세'로 여겨지더라도 불편함을 드러내긴 어렵다.
한 기업 관계자는 "증시 호조로 돈을 많이 버는 것으로 보이지만 일부 대기업 외에는 출자 여력이 있는 곳이 없다"며 "기업들의 활동에 정치권의 개입이 너무 심한 느낌이라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이전 정부의 정책 펀드들의 성과는 신통치 않았다. 정책 지원 기대감 속에 자금이 몰리기도 했지만 끝은 초라한 경우가 많았다. 정권 말미로 갈수록 시장의 관심과 정부의 영향력이 줄어드니 성공 가능성은 작아진다. 기업들이 이런 전례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국민성장펀드의 경우 벌써부터 고밸류 투자 우려가 나온다.
금융사들의 고민도 깊다. 사업 호조로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이지만 그만큼 각종 청구서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 주요 대기업과 함께 손잡고 각 지역과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상생금융 프로그램'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펀드나 기금 등 그 형태도 다양하다. 일부 금융사는 소송에서 승리하며 충당금을 환입하게 됐는데, 금융당국이 이를 상생기금에 출연하라 요구할까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국민성장펀드는 사실상 금융사가 떠받치는 구조다. 사업비의 절반은 민간에서 조달하는데 그 중 태반을 금융사가 부담한다. '생산적금융'은 각 금융지주의 자체 목표지만 국민성장펀드 실적은 정부 평가와 직결되니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금융당국이 각종 사고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금융지주 회장들의 연임에 제동을 거는 것도 부담요소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금융사들은 이익 남는 것을 내라는 압박을 받는 상황"이라며 "각종 규제는 그대로 둔 상황에서 돈을 내라고 하니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