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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최 회장은 젠슨황에게 왜 엔비디아는 자회사 중복상장이 없는지 물어봐라…(중략)…SK하이닉스 이사회는 식물 이사회인가? 사외이사 스스로 독립성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상법에 근거 이사는 이사회 안건 상정을 요청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창피합니다. 최태원 회장님, 고승범 SK하이닉스 의장님' 中)
솔리다임의 나스닥 기업공개(IPO)는 아직 확정된 사안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쉬운 일도 아니다. 그러나 확정되지도 않은 계획에 시장이 무척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13일에는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 단체에서 대놓고 "부끄럽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논평을 내놨다.
시장이 앞서간 측면이 없지 않겠지만, 결국 SK그룹을 믿기 어렵다는 태도로 보인다. 결정된 것도 없는데 반발부터 나온다는 게 역설적으로 SK가 그간 쌓아온 신뢰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 5일 "해외 종속회사 솔리다임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확정된 사항은 없다"라고 공시했다. 회사 내부에서도 어디까지나 검토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투자자들과 소통하고 있고, 이 때문에 그룹 차원에서도 고민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적어도 현재까지 확정된 내용이 없다는 회사 설명 자체는 사실로 보인다.
검토 단계일 뿐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솔리다임 나스닥行
쉬운 일이 아니기도 하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말 한국거래소의 상장·공시규정 개정안을 승인했고 이달 3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일각에서 솔리다임은 물적분할이 아니라 인수합병(M&A)을 통해 편입됐고 매출·영업이익·자산 규모도 모회사 대비 10% 미만이어서 주주동의 면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저비중 자회사라도 기업가치나 사업적 중요성 등을 따져 중요 자회사로 인정되면 면제할 수 없도록 했다. AI 사업에서 낸드가 차지하는 위상과 예상 기업가치를 감안하면 솔리다임은 중요 자회사로 판단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여기에 7월 ADR 나스닥 상장을 마치며 미국 투자자에 대한 공시·주주 대응 부담까지 새로 얹혔다. 이사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까지로 확대한 상법 개정과 중복상장 규제까지 감안하면 과거처럼 모회사 일반주주와의 이해상충 문제를 충분히 다루지 않고 해외 손자회사 상장을 추진하기는 훨씬 어려워졌다. 제도환경이 이만큼 바뀐 데다, 솔리다임이 당장 외부 자본 조달이 절실한 상황도 아닌 만큼 구태여 나스닥 IPO를 밀어붙일 유인 자체가 크지 않다는 평가도 많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개정 상법, 중복상장 규제, 미국 현지 ADR 주주 법적 대응 문제 외에 중국 대련 팹(Fab) 외엔 생산설비가 없다는 점까지 나스닥행을 이중, 삼중으로 가로막는 장벽으로 거론된다"이라며 "주주 여론도 안 좋고, 꼭 외부 자본 조달이 필요한 상황도 아니다. 다들 노심초사하며 회사 최종 결정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전했다.
왜 시장에선 미확정 사안에 성토부터 가득할까
근데 벌써부터 시장에 볼멘소리가 한가득이다. 솔리다임이 최종적으로 IPO를 추진하건 말건 SK그룹을 믿기 어렵다는 목소리로 들린다.
정황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SK하이닉스는 작년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 작업을 최종 마무리했다. 이후 편입된 미국 자회사 SK Hynix NAND Product Solutions Corp.(구 솔리다임)은 올초부터 그룹 인공지능(AI) 사업을 전담하는 AI컴퍼니로 사업구조 재편에 들어간 상태다. 기존 솔리다임의 낸드 사업은 신설 손자회사 솔리다임(Solidigm Inc.)으로 이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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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프리 IPO를 검토하는 신설 솔리다임의 모회사 AI컴퍼니에 SK㈜,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등 그룹 계열사 이해관계가 끼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연초 AI컴퍼니 구상이 시장에 드러나면서부터 SK하이닉스만을 위한 거래가 아니라는 의구심이 고개를 들고 있었는데, 계열사들이 속속 출자를 결의하며 장작들이 쌓여가는 와중에 솔리다임 투자유치 검토 소식이 불을 당긴 것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상법 개정으로 같은 그룹 내 계열사 돈에 손을 대기가 어려워진 상태에서 AI컴퍼니가 출범했으니 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라며 "작년 한화그룹 계열사들이 해외 투자법인을 신설하고 한화솔루션이 현물출자에 나서는 방식으로 우회지원이 일어났던 것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SK그룹 입장에서는 AI가 반도체뿐 아니라 에너지·통신·DC 인프라와 관련 밸류체인 투자를 아우르는 사업인 만큼 계열사 공동 출자가 합리적인 사업적 선택지일 수 있다. 문제는 그룹 전체에 합리적인 거래가 SK하이닉스 일반주주에게도 합리적인 거래인지는 별개 문제라는 점이다.
AI컴퍼니가 SK하이닉스에서 어떤 자산과 성장 기회를 가져가고, 반대로 SK하이닉스 주주에게 어떤 경제적 이익을 돌려주는지 설명하지 못하면 이해상충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주주 입장에서 보자면 AI컴퍼니 출범, 솔리다임 투자유치까지 일련의 과정들이, SK하이닉스가 막대한 자본과 경영 부담을 감수해 확보한 성장 옵션에 그룹 이해관계가 뒤늦게 올라타는 것처럼 비치기 때문이다.
외국계 투자은행(IB) 한 관계자는 "AI컴퍼니 재편, 솔리다임 신설 등은 연초부터 추진돼왔는데 그간 SK하이닉스 실적이나 주가가 압도적 성과를 보이면서 다들 흐린 눈으로 지나갔던 사안"이라며 "또 의심스러운 정황이 포착된 데다 마침 주가도 흔들리고 있으니 뒤늦게 SK그룹에 대한 불신 문제로 한꺼번에 재소환되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하이닉스 현금ㆍAI 테마 효과 '계열사 전반'에 배분이 목적?
SK하이닉스의 막대한 현금창출력과 AI 산업에서의 위상을 토대로 한 파이낸셜 스토리 '시즌 2'를 떠올리는 목소리도 있다. 올해 들어 SK하이닉스 인력 일부가 SK㈜가 있는 서울 종로구 서린빌딩 입주를 추진한다는 소식과 함께 자본시장 인력을 신규 채용하는 정황까지 더해진 참이다.
SK그룹 출신 한 인사는 "SK하이닉스 현금창출력에 그룹 계열사들이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게 투자업계 공통된 인식"이라며 "계열 직간접 지원이 어렵게끔 상법이나 관련 제도가 개선됐지만, 어떻게든 이를 우회하기 위한 그룹 차원의 이해관계가 여전히 작동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많다"라고 말했다.
현재는 흐지부지된 파이낸셜 스토리는 지난 2021년 등장한 SK그룹 핵심 의제였다. 뼈대 자체가 그룹 계열사 전반의 외부 투자유치→중복상장 반복 구조에 가까웠다. SK㈜를 중심으로 계열 성장사업을 키우고 외부 자본을 유치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린 뒤, 회수·재투자를 반복하는 구조를 지향했다. 당시에는 자회사 기업가치를 개별적으로 인정받는 것이 그룹 전체 가치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가 컸다.
결과적으로는 유치한 투자금 상당 부분이 고금리 부채 성격으로 그룹 재무를 짓누르게 됐고. 수습 작업은 올해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 증시에 만연한 중복상장 문제를 대대적으로 조명해 제도 개선을 앞당겼다는 역설적 공로를 제외하면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 SK그룹에 대한 불신을 폭증시킨 사건으로 지금도 회자된다. 이에 대한 별도 반성이나 사과는 없었고, 이후 '리밸런싱'이란 화두가 사실상 출구전략으로 제시되면서 현재에 이르렀을 뿐이다. 물론 시장에서는 '사실상 실패를 자인한 것'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이런 기억이 남아 있으니 해외 투자법인에 계열사들이 출자하고 신설 손자회사가 투자유치를 검토한다는 소식에 시장이 찜찜하게 반응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과거 파이낸셜 스토리 식으로 보자면 AI컴퍼니는 미국에 세운 또 하나의 '투자전문 중간지주사(SK스퀘어)'로, 솔리다임은 그 아래에서 외부 자본을 유치하고 향후 IPO까지 노려볼 수 있는 신규 주자로 비칠 수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미국판 SK스퀘어에 여러 계열사가 순차적으로 줄을 서고 있다는 점 정도다.
회사 차원에서 솔리다임을 상장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더라도 비슷한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구태여 지금과 같은 복잡한 지배구조를 짜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것이 그룹 전체가 아니라 각 상장 계열사와 그 주주를 위한 최선의 판단인지, 왜 굳이 이런 구조여야 하는지 납득할 만한 답을 내놓지 않는 한 불신과 찜찜함이 쉽게 가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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