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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민연금의 외화채 발행을 위한 법 개정 논의가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당초 내년 초 발행 가능성까지 거론됐지만 법안이 국회에 계류된 채 후속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외화채 도입을 추진했던 당시와 비교해 원·달러환율까지 크게 낮아지면서 정책 추진 동력도 약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월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민연금의 외화채 발행을 허용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민연금이 외화채를 발행하기 위해서는 현행법상 제도적 근거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
법안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해외투자용 외화 조달을 위해 외화채를 발행하거나 외화채무를 부담·보증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새로 마련했다. 기금운용위 의결이 전제 조건이며, 조달 자금은 반드시 해외 투자에 사용해야 한다.
투자를 통해 얻은 수익금은 외화채무의 원리금 상환 이후 해외로 재투자하거나 기금으로 적립하도록 했다. 해외 시장에서 조달한 외화를 명확히 해외투자 목적으로만 활용하도록 규정해 자금이 국내 외환시장에 재유입되어 외환시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차단한 셈이다.
실제로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CPPIB), 싱가포르 테마섹 등 해외 주요 연기금은 외화채 발행 등 다양한 방식으로 투자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당초 시장에서는 법 개정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내년 초 국민연금이 외화채 발행에 나설 가능성도 거론됐다. 국민연금이 해외투자 재원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국내 외환시장에 직접적인 달러 수요를 일으키는 대신 외화채권이나 해외 차입 등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국민연금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 국민연금의 운용 자산 1848조7000억 원 중 해외 주식(650조7000억원)과 해외 채권(107조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40.9%에 달한다. 여기에 대체투자(해외투자분)까지 고려하면 해외 투자 자산이 더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국회 일정이 발목을 잡고 있다. 후반기 국회 원 구성이 최근 마무리된 데다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거, 전당대회 등 정치 일정까지 겹치면서 관련 법안 논의의 우선순위가 밀린 것으로 알려졌다.
법안을 발의한 의원실에서도 "현재로서는 상임위원회가 열려야 구체적인 논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아직 법안 심사 일정이나 후속 논의가 구체적으로 잡힌 상황도 아니다.
시장에서는 법안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보다는 논의 시점이 늦어지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다만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실제 발행까지는 추가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국민연금이 어떤 통화와 만기로 외화채를 발행할지, 해외투자 재원 가운데 어느 정도를 외화채로 조달할지 등 기금운용 측면의 검토도 뒤따라야 한다.
외화채 도입을 둘러싼 시장 환경도 몇 달 사이 크게 달라졌다. 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한 배경에는 고환율이 자리했다. 지난 6월 원·달러환율이 1500원대를 웃돌면서 국민연금의 해외투자에 따른 달러 수요가 국내 외환시장의 부담 요인으로 지목됐다.
당시 정부와 여권에서도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자금 조달 방식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외화채 발행을 비롯해 해외 차입, 외환스왑 등을 활용해 국민연금의 달러 수요가 현물환 시장에 집중되는 것을 분산시키겠다는 구상이었다. 국민연금의 외화채 발행은 이른바 '뉴프레임워크'의 일환으로 거론되며 환율 안정과 기금의 해외투자 재원 조달을 동시에 노리는 방안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이후 원·달러환율이 빠르게 하락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환율 안정이라는 측면에서 외화채 발행을 서둘러야 할 정책적 필요성이 당시보다 낮아진 셈이다. 국민연금 역시 외화채 발행을 전제로 구체적인 일정이나 규모를 적극적으로 제시하기보다는 관련 제도와 운용전략을 검토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럼에도 한국계 외화채권(KP·Korean Paper) 시장에는 새로운 대형 발행 주체가 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여전하다.
한 증권사의 크레딧 연구원은 "국민연금은 정치 논리와 상관이 없다지만, 당초 고환율 상황에서 해외투자 자금 조달 방식을 다양화하려는 논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외화채 발행이 이뤄질 경우 기존 발행기관과는 성격이 다른 새로운 우량 발행주체이자 KP시장의 벤치마크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