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찾아뵙는 '갑'…국민성장펀드 '출자 배정' 기다리는 LP들
입력 2026.08.25 07:00

1·2차 GP 18곳에 금융권 자금 쇄도
일부 펀드, 하드캡 넘는 출자의향
RWA·면책·모험자본 실적 '삼중 유인'
비선정 GP는 펀딩 위축…양극화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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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민성장펀드가 국내 사모펀드 출자시장의 익숙한 풍경을 바꿔놓고 있다. 통상 펀드 결성 과정에서는 운용사(GP)가 기관투자가(LP)를 찾아가 출자를 요청하지만, 국민성장펀드에서는 금융회사들이 먼저 연락해 면담을 제안하고 출자 가능액을 배정받고 있는 분위기다.

    정책자금이 투입된 국민성장펀드 자펀드가 금융권의 생산적 금융 실적을 쌓을 수 있는 사실상 '지정 통로'가 되면서다. 제한된 펀드 한도를 두고 다수의 출자자가 경쟁하면서 GP가 LP별 출자액을 정하는 역전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2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국민성장펀드 간접투자 분야 1·2차 위탁운용사로 선정된 GP들은 금융회사들과 출자 규모를 조율하고 있다. 상당수 펀드에는 당초 결성 목표를 웃도는 자금이 몰려 GP가 출자자를 선별하거나 기관별 출자액을 줄여 배정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1차 GP 선정 결과가 발표된 당일 프로젝트형을 제외한 운용사 대부분에 연락해 먼저 찾아가겠다고 했다"라며 "일부는 당일 들어온 출자 의향만으로 최소 결성액을 넘긴 상태였고, 기존 LP들을 우선 고려하다 보니 원하는 출자액을 모두 배정받기는 어려웠다"라고 말했다.

    산업은행과 신한자산운용은 지난 5월 국민성장펀드 정책성펀드 1차 GP 11곳을 선정했다. 총 81개사가 지원해 7.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으며 자펀드 결성 목표는 3조9000억원이다. 이 가운데 GP들이 금융회사 등에서 확보해야 할 민간 매칭자금은 약 2조1700억원이었다.

    지난 7월에는 1조6000억원 규모의 2차 사업을 운용할 GP 7곳이 추가로 선정됐다. 65개사가 지원해 경쟁률은 9.3대 1에 달했다. 두 차례에 걸쳐 총 18개 GP가 5조5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게 됐다.

    당초에는 짧은 결성 기간 안에 수조원의 민간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변수로 꼽혔다. 다만 실제 상황은 반대로 전개됐다. 다수 GP가 결성 목표를 하드캡인 최대 두 배까지 높이는 방안을 검토했고, 일부 인기 펀드에는 하드캡의 4~5배에 이르는 출자 의향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출자 절차의 순서도 달라졌다. 일반적인 블라인드펀드 출자에서는 LP가 운용전략과 조건을 검토하고 내부 투자심사를 거쳐 참여 여부를 결정한다. 

    하지만 국민성장펀드에서는 우선 GP와 접촉해 출자 가능액을 확인한 뒤 내부 심사를 병행하는 분위기가 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투자심사를 통과하더라도 원하는 금액을 모두 배정받는다는 보장이 없어 GP와의 접촉 시점과 심사 속도도 출자 경쟁의 변수가 됐다는 평가다.

    금융권 자금이 몰리는 데는 정책자금의 앵커 출자 외에도 규제와 실적 측면의 유인이 함께 작용했다. 은행은 일정 요건을 충족한 정책목적펀드에 출자할 경우 기존 400% 대신 100%의 위험가중치를 적용받을 수 있다. 국민성장펀드 자펀드에 LP로 참여한 금융기관은 고의나 중과실이 없다면 투자 손실에 따른 기관·임직원 제재도 면제된다.

    대형 증권사에도 국민성장펀드는 활용도가 높다. 국민성장펀드 관련 투자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발행어음·종합투자계좌(IMA) 모험자본 공급 실적으로 인정되는 대상에 포함된다. 금융그룹 차원에서는 생산적 금융 실적으로도 제시할 수 있다. 금융당국이 4분기 금융회사별 생산적 금융 실적을 담은 팩트북 공개를 주문한 상황에서 출자 물량을 선점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다만 모든 금융회사의 이해관계가 같은 것은 아니다. 은행계 LP는 위험가중치 특례와 그룹 차원의 정책 실적을 동시에 고려하지만, 일부 증권사는 장기간 자금이 묶이는 블라인드펀드보다 회수기간이 짧은 프로젝트펀드의 수익성이 낫다고 판단해 출자에 선별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금융지주 계열사는 그룹 실적과 자본 부담을 함께 고려해 국민성장펀드 출자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며 "반면 규제상 유인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증권사는 장기 블라인드펀드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이유가 적어 개별 수익성을 더 따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출자 수요가 몰리면서 GP가 LP를 고르는 기준도 달라졌다는 분석이다. 기존에 관계를 맺어온 출자자와 한 번에 큰 금액을 넣을 수 있는 금융회사, 투자심사를 신속하게 끝낼 수 있는 기관이 우선순위에 오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출자 의향서(LOC)를 제출하더라도 실제 배정액은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을 사전에 안내하는 GP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국민성장펀드에 선정되지 않은 GP에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금융회사들이 한정된 올해 출자 예산을 국민성장펀드에 우선 배정하면서 모태펀드 등 다른 정책 출자사업에 선정된 운용사들은 민간 매칭자금을 구하지 못해 결성 시한 연장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책자금이 우량 GP와 민간 자금을 한꺼번에 끌어당기면서 펀드레이징 시장의 양극화가 커진 셈이다. 정부가 고른 GP라는 일종의 인증 효과까지 더해져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국민성장펀드 밖의 블라인드펀드를 먼저 검토하기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정책 간판을 단 소수 GP가 출자자를 골라 받는 동안 다른 운용사들의 결성이 멈추는 현상이 이어진다면, 모험자본 공급 확대라는 정책 효과보다 출자시장 쏠림이 먼저 부각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