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80조 현금 잡자"…은행권, '금리 3.9%' 특판까지 제시
입력 2026.08.25 07:00

현금성자산 급증에 은행권 자금 유치 경쟁
1년 안팎 예금에 3% 후반대 금리 유력
증권사 채권투자 줄이고 단기 운용처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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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반도체 호황으로 막대한 현금을 쌓은 SK하이닉스를 두고 금융회사들의 자금 유치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최근 채권시장 '큰손'으로 떠올랐던 SK하이닉스가 투자 속도를 조절하자 은행권에서는 연 3.9% 안팎의 금리까지 제시하며 자금 유치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SK하이닉스는 기존 증권사를 통한 채권 투자에 더해 은행 예금까지 운용처를 넓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일부 은행은 SK하이닉스의 대규모 여유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3%대 후반의 예금금리를 제시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에서는 연 3.9% 수준의 특판 금리를 제안한 상황이다. 운용기간은 1년 안팎이 논의되고 있다.

    이는 현재 시중은행들의 일반적인 기업 예금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기간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3.7%만 해도 은행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금리"라며 "자금이 필요한 은행이라면 대규모 법인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이보다 높은 금리를 제시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의 여유자금은 개인 대상 특판예금처럼 정해진 상품 하나에 가입하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기업이 운용할 자금의 규모와 기간 등에 맞춰 여러 은행에 나눠 예치하고, 은행별 자금 사정에 따라 적용되는 금리도 달라진다. SK하이닉스 역시 특정 은행 한 곳에 자금을 집중하기보다는 복수 은행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은행들이 SK하이닉스 자금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배경에는 가파르게 늘어난 현금이 있다. SK하이닉스의 현금성자산은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약 80조원대로, 전 분기보다 30조원 넘게 증가했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약 70조원 늘었다. AI 투자 확대와 HBM을 중심으로 한 메모리 호황이 이어지면서 회사가 벌어들이는 현금 규모 자체가 과거와 달라졌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늘어난 여유자금을 소화하기 위해 올해 들어 증권사 특정금전신탁(MMT)과 채권형 랩어카운트(MMW) 등을 적극 활용해왔다. 증권사들은 이 자금을 바탕으로 공사채와 은행채, 증권채, 카드채를 비롯해 우량 회사채와 장기 기업어음(CP) 등에 투자했다. SK하이닉스는 불과 수개월 만에 국내 크레딧 시장의 주요 수요처로 떠올랐다.

    최근에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SK하이닉스가 신규 채권 투자를 크게 줄이고 기존 운용상품의 만기가 돌아오는 자금에 대해서도 재투자 여부를 재검토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만기가 도래한 일부 자금을 기존 상품에 그대로 롤오버하기보다 은행 예금 등 다른 단기 운용처로 옮기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특히 은행에서 4%에 가까운 금리를 받을 수 있다면 SK하이닉스 입장에서도 예금의 상대적인 매력이 높아진다. SK하이닉스가 기존에 주로 투자했던 채권은 2~2.5년물인 반면 은행권에서 논의되는 예금은 1년 안팎이다. 만기를 짧게 가져가면서도 3%대 후반의 수익률을 확보할 수 있는 셈이다.

    SK하이닉스의 움직임은 이미 채권 발행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최근 SK하이닉스가 신규 투자를 줄이자 일부 공사채 발행물량이 당초 예상보다 축소되고 발행 스프레드도 확대됐다. 한국전력공사는 이달 11일 입찰에서 2년물 800억원, 3년물 700억원, 5년물 500억원 등 총 2000억원을 발행하기로 했다. 발행금리는 각각 4.00%, 4.22%, 4.41%로 민간채권평가사 평균금리를 7bp 이상 웃돌았다. 불과 일주일 전 한전채가 민평금리보다 낮은 수준에서 대규모 발행됐던 것과 대조적이다.

    채권시장에서는 당초 SK하이닉스의 수요예측 참여 중단을 두고 대규모 주주환원을 위한 현금 확보 차원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SK하이닉스가 최근 주주환원을 크게 확대하면서 여유자금을 회수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SK하이닉스가 채권시장에서 완전히 이탈하기보다는 예금과 채권을 병행하는 방향으로 운용 포트폴리오를 조정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SK하이닉스가 보유한 현금 규모가 워낙 큰 만큼 은행권만으로 전체 운용 수요를 소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채권 투자를 크게 줄이고 예금으로 완전히 돌아서는 분위기로 보기는 어렵다"며 "은행권에서 받을 수 있는 자금에도 한계가 있는 만큼 향후 은행채 발행 등이 재개되면 다시 채권 투자를 병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대규모 주주환원 발표 역시 SK하이닉스의 현금 운용 여력이 크게 훼손되지는 않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SK하이닉스가 잉여현금흐름(FCF)의 50% 이상을 주주에게 돌려주면서도 생산능력 확대와 신규 투자를 동시에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주주환원과 설비투자를 집행한 뒤에도 상당한 규모의 현금을 어떻게 운용할지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른 셈이다.

    이와 관련, SK하이닉스 측은 은행 예금 등을 포함한 자금운용 방안과 관련해 "여러 논의가 있지만 현재 확정된 바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