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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이 5년 전 기업공개(IPO)까지 단행하며 독립시킨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를 다시 흡수합병한다. 분리막 사업의 독자생존이 어렵다고 판단한 만큼 재무위험이 계열 전체로 번지는 것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합병 이후 SKIET의 차입금과 손실은 SK이노베이션 본체가 직접 부담하게 된다. SK이노베이션 주주 입장에서는 또 한 번 배터리 사업에서 발생한 재무부담을 떠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26일 SK이노베이션은 온라인 기업설명회(IR)를 열고 분리막 자회사 SKIET 흡수합병 계획을 설명했다. 회사는 "SK이노베이션 측의 자금 대여나 포괄적 주식교환, 제3자 매각, 유상증자 등 대안도 검토했지만 적합하지 않다고 봤다"라며 "종합 검토한 결과 합병을 통한 사업구조 재편이 가장 실효성 있는 합리적 대안이라 본 것"이라고 이번 결정의 배경을 전달했다.
SK이노베이션이 SKIET에 자금을 빌려줄 경우 이자비용이 불어나 재무 구조가 더 나빠진다. 추가 유상증자는 SK이노베이션 자금 부담을 키우는 동시에 SKIET 기존 주주의 지분가치 희석을 피하기 어려운 수단이다. 포괄적 주식교환 역시 SKIET가 별도법인으로 남는 만큼 신용등급 하락 등 재무 리스크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어렵다. 수년간 검토해온 매각 역시 성사 가능성이 희박하다. 결국 합병 외엔 대안이 없었다는 얘기다.
SKIET는 지난 2019년 SK이노베이션의 분리막 사업부를 물적분할해 출범한 자회사다. 전기차 시장의 고성장을 예상하고 분사 후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 IPO)를 거쳐 2021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
이후 공격적으로 해외 생산능력을 확대했지만 전방 수요 둔화와 중국 업체들의 공급 확대에 따른 가격 경쟁, 미국 보조금 정책 변화 등이 겹치며 최근 수년간 영업손실이 누적된 상태다. 작년 SK이노베이션이 주가수익스와프(PRS) 계약을 활용해 3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도 진행했지만 업황 부진이 길어지면서 독자 생존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문제는 합병으로 SKIET의 재무위험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SKIET는 현재 SK이노베이션의 연결 자회사다. 합병 전에도 SKIET의 차입금과 영업손실은 SK이노베이션 연결 재무제표에 반영돼 왔다. 합병이 완료되면 SKIET가 부담하던 외부 차입금의 상환 주체가 SK이노베이션으로 바뀌게 된다. SKIET의 당기순손실 가운데 SKIET 비지배주주에게 귀속되던 몫도 합병 이후에는 SK이노베이션에 100% 반영된다. 지금까지는 SK이노가 보유한 SKIET의 지분율 만큼 나눠 부담하던 손실을 합병 이후에는 SK이노베이션 주주들이 100% 전부 떠안게 되는 셈이다.
SK이노베이션은 자사 신용도를 활용해 SKIET의 금용비용을 낮추고, 중복 조직과 고정비 부담을 줄여 연간 약 600억원의 상각전영업익(EBITDA)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 설명했다. 향후 2년 내 EBITDA 기준 흑자전환이 가능할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영업이익 흑자전환 시점은 2029년 전후를 목표로 제시했다.
그러나 배터리 셀 자회사 SK온과 마찬가지로 분리막 사업의 정상화 여부 역시 전방 시장의 회복이나 보조금 등 각국 정부의 정책에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회사는 SKIET의 올해 1분기 공장 가동률이 20% 수준에 머물렀다고 밝혔다. 중국 생산거점을 매각하고 증평공장 가동 중단, 폴란드 중심 생산 거점 재편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외부 요인이 개선되기 전까지는 회사 차원에서 추가적인 개선 방안을 짜내기 어려운 구조로 풀이된다.
반면 합병으로 SK이노베이션이 직접 부담해야 할 차입금 규모는 즉각적으로 커진다. SK이노베이션은 작년부터 투기등급까지 떨어진 신용등급 방어와 재무건전성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한 상태다. SK이노베이션 별도기준 총차입금은 지난해 말 11조7205억원에서 올해 6월 말 10조3572억원으로 약 1조3600억원 줄어들었다. 그러나 합병이 완료되면 현재 SKIET가 직접 부담하고 있는 약 1조8000억원의 차입금이 SK이노베이션 본체로 넘어오게 된다.
투자업계에선 합병 전후 차입금 상환이나 양사 간 내부거래 소멸 등을 제외하더라도 SK이노베이션 별도 기준 총차입금이 다시 12조원 안팎까지 불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연결기준으로는 이미 SKIET 차입금이 반영돼 있어 부채 부담이 늘어난다고 보기 어렵지만, 자회사에 머물던 차입 부담을 신용도 회복에 나선 SK이노베이션이 직접 떠안는 구조로 바뀌는 셈이다.
투자은행(IB) 한 관계자는 "이미 SK온 수혈, SK E&S와의 합병, 자체 유상증자 등을 거치면서 SK이노베이션 발행주식 수가 대폭 늘어난 상태라 발행주식 2.6% 정도의 추가 희석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라며 "그러나 독자 생존이 어려운 SKIET를 흡수합병하면서 SK이노베이션 본체로 사업 손실이나 재무 리스크가 넘어오는 게 주주들의 주된 불만 요인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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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 주주들이 합병 과정을 주주총회에서 직접 판단하거나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기회가 없다는 점도 우려 요인으로 꼽힌다.
이번 합병은 신주 발행 규모가 기존 발행주식 총수의 약 2.6%에 그쳐 상법상 소규모합병 요건을 충족한다. 이에 따라 SK이노베이션은 별도의 주주총회 승인 없이 이사회 결의로 합병 승인을 갈음할 수 있으며, SK이노베이션 주주에게는 주식매수청구권도 부여되지 않는다. 주주들이 정해진 기간 내 합병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통지할 수는 있지만,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 총수의 20% 이상이 반대해야 소규모합병 절차를 중단시킬 수 있다.
회사는 합병신주 발행에 따른 기존 주주의 지분 희석이 약 2.6%에 그치고, 합병 후 통합(PMI) 작업을 거처 비용 절감과 수익성 개선으로 주당순이익(EPS)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최소화할 수 있을 거라 강조했다. 그러나 SK IET의 실적 회복이 지연될 경우 추가로 투입할 자금에 대해서는 별도의 한도를 설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결국 주주들이 합병 과정에서 행사할 수 있는 선택권은 제한돼 있으면서 향후 발생할 재무부담은 함께 감수해야 하는 구조인 셈이다.
실제로 이날 SK이노베이션 주가는 개장 직후 전 거래일보다 17% 이상 하락했다가 오후 들어 11.4% 하락한 11만2000원에 마감했다. 지난 두 달여 동안 실적 기대감으로 유입된 상승분 절반 가까이를 반납한 모양새다.
증권사 정유·화학 담당 한 연구원은 "SK온에 이어서 SK IET까지, 계열 배터리 사업에서 발생하는 부침을 SK이노베이션 주주가 받아내는 구조가 또 반복됐다"라며 "정유 사업 호조로 올해 8조원 이상 영업이익이 기대되는데 결국 주가는 또 바닥권을 향하고 있다. 과거에는 주가 관리를 사장단 성과지표(KPI)에 반영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주주환원에 대한 기대마저 크게 낮아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