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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으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자 반도체 장비사들의 수주도 늘어나고 있지만 공시는 자제해 달라는 요구를 대형 고객사로부터 받고 있다. 계약금액이 전년도 매출액 대비 일정 비율을 넘을 때만 공시 의무가 발생하는데, 이 기준을 밑도는 수주는 굳이 알리지 말라는 것이다.
코스닥 기업은 계약금액이 전년도 매출액의 10% 이상일 때 의무공시 대상이 된다.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은 5% 이상, 이 중 자산총액 2조원 이상 대규모 기업은 2.5% 이상이면 의무공시 대상이다. 계약 체결 공시는 수시공시로 분류돼 체결 다음 날까지 알려야 하는데 애초에 기준선을 넘지 않는 계약은 이 의무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다.
통상 기업들은 수주공시를 통해 자사 실적을 홍보하거나 IR 과정에서 주가를 끌어올리는데 활용하는데 고객사의 요청에 의해 공시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한 반도체 장비업체 관계자는 "고객사 대부분이 거래관계를 밝히지 말라고 하고 관련 내용이 유출되면 위약금을 무는 조항을 두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수주 물량 자체보다 공급망 전체를 회사 기밀로 다루는 성격이 강하다"며 "경쟁사가 협력사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장비업체 관계자도 "고객사의 특정 공장의 생산량 증가가 드러나는 공시라면 자제해 달라는 분위기가 있다"며 "고객사 입장에서는 생산능력 확장 계획 자체가 경쟁사에 노출되는 걸 꺼리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의무공시 기준을 피하기 위해 발주서(PO)를 나눠서 발행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각 공정별 일정이 있기 때문에 이를 위해 PO를 나눠 건당 금액을 낮추면 의무공시 기준이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공시를 자제하는 분위기는 업계 관행이라고 볼 수 있다"며 "수주를 받으면 홍보도 하고 IR도 하고 싶지만 10분의 1도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애플이나 엔비디아에 납품하는 업체들도 공시나 IR을 하고 싶어도 원하는 만큼 다 하지 못한다"며 "거래 상대방의 의사가 중요한 부분이라 반도체 업계만이 아니라 다른 업계에서도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최근 메모리 반도체 회사들은 자본적지출(CAPEX) 투자를 늘리며 생산능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메모리 제조사들은 2030년까지 생산능력을 전년 대비 2배 이상 확대하겠다는 목표 아래 신규 팹 구축 기간을 기존 4~5년에서 2년으로 절반 이상 단축하고 나섰다. 하반기에는 평택 P4, 청주 M15X 등 주요 팹의 전공정 장비 반입이 본격화하고 내년에는 평택 P5와 용인 신규 팹 대규모 발주까지 예고돼 있다.
공시 자제 분위기는 장비 발주 규모와 시점 자체가 곧 고객사의 생산능력 확장 전략을 드러내는 정보가 되면서 이를 관리하려는 유인도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
반도체 장비업계의 실적은 고공행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반도체 후공정 장비 제조업체인 한미반도체는 올해 2분기 매출 2511억원, 영업이익 1303억원을 기록해 각각 전년 동기 대비 39.5%, 51.0% 늘었다. 창사 이래 최대 분기 매출이다.
또 다른 반도체 후공정 부품 제조업체인 리노공업도 올해 2분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7.3% 늘어난 1432억원, 영업이익은 37.6% 증가한 735억원을 기록하면서 사상최대 실적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