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도 연기금도 '외면'…'수요 소멸'에 장기채 시장 '경고등'
입력 2026.08.28 07:00

30년물 4.75% 연고점 경신…10-30년 스프레드 두 달새 2배 '폭증'
보험사 "추가 매수 없다"…킥스 훼손·해약 리스크 우려에 지갑 닫아
연기금 외면에 WGBI 편입 효과도 미미…베어 스티프닝 장기화 경고

  • 초장기 국채 금리가 급등하며 채권시장의 경계감을 키우고 있다. 대규모 국채 발행 부담과 대외 불안이 장기물 금리를 가파르게 밀어 올리는 가운데, 시장을 지탱하던 핵심 기관투자자들의 매수세는 차갑게 식은 상황이다.

    2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최근 금융당국은 초장기 국고채 금리의 변동성을 완화하기 위해 보험사를 대상으로 국고채 30년물과 50년물 발행 축소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다.

    장기채 시장의 핵심 투자자 중 하나인 보험업계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주요 생명보험사는 이미 필요한 장기 자산 확보를 마쳐 추가 매수 유인이 크지 않으며, 당국의 국고채 발행량 조절이 자산운용 전략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입장이다.

    보험사가 매수 버튼에서 손을 뗀 사이, 채권시장에서는 장단기 금리차가 극단적으로 벌어지는 '베어 스티프닝' 현상이 심화했다. 국고채 장기물은 국가·기업의 재정 조달에 영향을 주는 만큼, 증권가에서는 최근 장기물 금리 급등을 금융시스템 전반을 위협하는 구조적 뇌관으로 보고 있다.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한 7월 16일 이후 지난 24일까지 국고채 3년물 금리는 1.2bp 하락하며 안정을 찾았다. 반면, 같은 기간 30년물 금리는 24일 기준 4.677%로 20.9bp 뛰었고, 지난 18일에는 4.751%까지 치솟으며 연고점을 경신했다. 10년물과 30년물의 스프레드는 17.1bp에서 34.2bp로 두 배 폭증했다.

    장기채 금리 급등의 주요 배경으로는 보험사를 비롯한 금융회사들과 연기금 등 주요 매수자의 수요 감소가 꼽힌다. 통화정책의 비교적 민감한 단기물 금리는 오히려 기준금리 인상 후 안정세를 찾았지만, 장기채 금리는 정책보다 수급 영향으로 오르고 있다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한 자산운용사 크레딧 연구원은 "30년물 금리 인상은 연기금의 채권 운용 전략 변화에 따라 매수 유인이 줄은 가운데, 보험사의 수요가 줄어든 영향이 크다"며 "전 세계적 초장기 금리 상승과 8월 말 정부 예산안 발표를 앞두고 재정 확대에 따른 국채 발행 증가 우려도 시장에 선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장기물 금리가 급등하면 보험사가 저가 매수에 나서 금리 상단을 제한하던 과거 공식은 구현되지 않는 모습이다. 과거 보험사는 통상적으로 부채 듀레이션(만기)이 자산보다 길었다. 이 구조에서는 금리가 오르면 보유 채권의 자산 가치가 떨어지더라도, 만기가 더 긴 부채의 현재가치가 더 큰 폭으로 감소해 순자산이 늘어나고 킥스 비율이 개선됐다. 이는 보험사들이 금리 상승기마다 합리적인 비용으로 자본 확충을 하기 위해 채권 저가 매수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이유다.

    다만, 보험사들이 IFRS17 규제에 대비해 지난해 장기채를 대거 사들이면서 판도가 바뀌었다. 상당수 생보사의 자산 듀레이션이 부채보다 길어지는 '역전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자산 듀레이션이 더 긴 상태에서는 금리가 상승할 때 자산 가치 하락 폭이 부채 감소 폭을 넘어서게 된다. 실제로 주요 생보사 8곳 중 5곳이 금리 50bp 상승 시 킥스 비율이 악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금리 급등에 따른 저축성보험 해지 증가도 보험사의 향후 장기채 매수를 제약하는 변수로 떠올랐다. 시중금리가 빠르게 오르며 금리 경쟁력이 낮아진 기존 저축성보험의 해약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금리 상승 국면에서는 타 금융권의 고이율 상품으로 자금이 이동하면서 저축성보험 해지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금리가 낮았던 과거에는 특판 등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기 수월했지만, 지금은 시장금리가 워낙 높은 상황인 만큼 저축성보험이 회계상 CSM(보험계약마진) 창출에도 도움이 되지 않아 유동성 방어와 장기채 운용 모두에 부담이 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IFRS17 정착 과정에서 금융당국이 내놓았던 규제 유예 조치도 수급 경색을 심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당초 금융당국은 부채의 현재가치를 계산할 때 실제 시장금리를 사용하는 만기 기준인 최종관찰만기(LLP)를 현행 20년에서 30년으로 확대할 계획이었다. 이는 초장기채를 매입해 자산과 부채의 만기를 일치시키는 보험사의 영업환경을 고려한 조치였다. 하지만 금리 하락기 부채 할인율 하락에 따른 보험사의 건전성 부담을 덜어준다는 이유로, 당국이 만기 확대 일정을 10년에 걸쳐 유예함으로써 현재 LLP는 23년에 묶여 있다.

    이 유예 조치는 금리 급등 국면에서 역효과를 낼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다. 보험사가 보유한 30년물 국고채 자산은 금리 급등에 따른 가격 하락이 100% 반영된다. 반면 보험부채는 23년까지만 시장금리를 적용받고, 그 이상 구간은 시장금리보다 낮은 장기 추정 모델을 사용해 계산된다. 

    금리가 가파르게 올라도 부채 평가액이 자산 평가손실만큼 충분히 줄어들지 않는 구조적 왜곡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종합자산부채관리(ALM)에 집중해야되는 보험사 입장에서는 30년물 금리가 올라도 채권 추가 매수에 나설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현재 당국이 국채 발행량을 줄이는 미봉책 외에는 장기채 주요 매수자들의 수요를 회복시킬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장금리가 추세적으로 하락 반전하거나, 유예된 보험사 부채 할인율 규제가 본격 시행되기 전까지 초장기 국채 시장의 수요 공백과 베어 스티프닝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주요 매수 주체가 부재한 상황에서 기댈 곳은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에 따른 외국인 수요 정도였지만, 이마저도 유입세가 시원치 않다"며 "현재로선 초장기물을 받아낼 주체가 사실상 부족하고, 일부 운용사가 저가 매수 기회를 엿보는 수준에 그치는 등 당분간 초장기 금리는 스티프닝 압력을 지속해서 받을 것이라는 게 시장의 주류 의견"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