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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호실적을 이어가면서 그룹과 계열사 전반에 활기가 돌고 있다. 회사가 벌어들이는 막대한 유동성이 그룹에 직간접적으로 이동하면서 그룹의 자본 활용 효율성이 높아졌다. 계열사들은 M&A와 신사업을 구상하는가 하면 외부 투자자도 유치하는 등 이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를 필두로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에너지 사업으로 적극적인 확장 행보가 이어지는 양상이다.
삼성전자는 불과 3년 전만 해도 주력 사업 부진에 애를 먹었다. M&A나 신사업을 벌이기보다는 재무라인을 중심으로 보수적인 경영에 집중하며 존재감을 잃어갔다. 작년부터 AI 붐이 일어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반도체 가격이 급등했고, 삼성전자의 실적과 주가가 함께 반등했다. 회사는 대규모 충당금을 반영하고도 2분기 90조원 가까운 이익을 거뒀다. 삼성전자의 사업 호조는 계열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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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상징적인 사례는 삼성디스플레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침체에 시달리던 2023년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원을 차입했다. 올해 2분기 중 이 자금을 모두 상환했다. 차입 당시에는 어쩌다가 자회사에까지 손을 벌리는 상황이 됐느냐는 우려가 나왔는데, 이제는 워낙 벌어들이는 돈이 많다 보니 만기를 넉넉하게 남겨두고 차입 관계를 정리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달 삼성SDI가 보유한 자사 지분 5%를 4조4500억원에 자기주식 형태로 매입하기로 했다. 삼성전자에서 상환받은 자금이 동력이 됐다. 회사는 취득한 자기주식을 소각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직접 자금을 들이지 않고 삼성디스플레이의 지배력을 높이는 효과를 봤고, 삼성SDI는 미래 성장 재원을 마련하게 됐다. 삼성전자의 곳간이 풍족해지자 계열사의 유동성 흐름도 좋아졌다.
삼성전자는 2024년초 평택캠퍼스 5공장(P5) 공사를 중단했는데, 반도체 수요가 늘어나자 작년 말 공사를 재개했다. 공사에 참여하는 삼성E&A와 삼성물산 등 계열사도 반도체 호황의 낙수효과를 누리고 있다. 이어 수십조원 규모 용인 클러스터 착공이 예정돼 있고, 이외 지역에서도 반도체 공장이 들어설 가능성이 있다. 수주 잔고와 기대 실적이 함께 반등하고 있다.
삼성전자에 제품을 공급하는 삼성전기와 삼성디스플레이 역시 호기를 맞았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호황이 서버와 데이터센터 전반의 투자 확대로 이어지면서 부품 계열사까지 수혜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이달 모건스탠리는 삼성전자 대신 삼성전기를 한국 기술주 중 최선호주로 꼽았다.
삼성전자의 실적 개선은 계열사의 매출이나 수주로 직접 연결되는 것뿐 아니라, 그룹 내부의 자금 흐름과 투자 의사결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삼성전자가 돈을 못벌 때는 수천억원 규모 M&A도 검토 안건에 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작년에는 독일 플랙트그룹과 ZF사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 사업(각각 15억유로)을 인수하며 조단위 M&A 시장에 복귀했다. 투자은행(IB)에는 금액은 상관 없으니 좋은 인수 대상을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다.
계열사들도 비슷한 분위기다. 삼성전자가 헤맬 때는 움직이기 조심스러웠는데 이제는 그룹 차원에서 M&A를 적극 독려하고 있다. 그룹 사업의 중요 축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올해 스위스 폴리펩타이드그룹을 인수했다. 앞서 언급한 삼성전자의 M&A보다도 규모가 크다. 이외에 다른 계열사들도 다양한 기업 인수 기회를 물색하고 있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한창 삼성전자가 좋지 않을 때는 각 계열사에도 가만히 있으라는 지침이 내려졌는데 이제는 왜 M&A를 하지 않고 있느냐는 지적을 받는 상황"이라며 "계열사마다 사업에 맞는 해외 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의 사업은 AI와 반도체에서 시작해 데이터센터, 전력, 에너지로 이어진 밸류체인으로 펼쳐지고 있다. 특히 AI 생태계에서 에너지 사업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이에 힘을 싣고 있다. 큰 방향성을 따라가기 위해 이전보다 다양하고 유연한 카드를 활용하는 것도 눈에 띈다.
삼성SDS는 올해 KKR을 대상으로 1조원대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삼성그룹은 기업 외 재무적투자자(FI)를 유치하는 데 극히 보수적인 기조를 보여왔는데, 총수가 지분을 들고 있는 계열사가 글로벌 투자사를 끌어들인 것이다. AI 산업과 관련한 노하우를 얻기 위해 전향적인 결정을 내렸다.
삼성물산도 미국에서 태양광 사업과 관련해 FI 유치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회사가 익숙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아니라 지분 거래기 때문에 잠재 투자자들과 초반 논의은 순탄치 않았다. 그러나 해외 사업 파트너도 필요하기 때문에 연내에는 거래가 성사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삼성그룹은 에너지 사업에 다시 힘을 주려는 분위기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생산은 물론, 이 반도체가 들어갈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삼성물산을 필두로 그룹의 발전·플랜트·투자 역량을 하나로 모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3년 전만 해도 삼성전자는 끝났다며 인력들이 줄줄이 이탈했는데 불과 1년 사이에 상황이 급변했다"며 "삼성전자가 잘 되니 관련 사업들도 수혜를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