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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대미 투자 1호 프로젝트 발표가 늦어지면서 관세 카드를 앞세운 미국의 투자 이행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한국으로선 1호와 이후 사업을 속도감 있게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각계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지만 시간 여유가 많지 않은 탓에 사업성을 면밀히 검토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 미국 현지에서 진행되는 투자라 우리 정부나 기업이 사업 관리에 큰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작년 출범한 2기 트럼프 행정부는 전세계를 상대로 관세를 대폭 인상하며 무역전쟁을 촉발했다. 각국이 관세를 원래대로 낮추기 위해 미국과 협상 테이블을 차렸다. 한국과 미국은 작년 7월 큰 틀에서 관세협상 합의를 이뤄냈다. 미국이 관세를 이전 수준으로 낮추고, 한국은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한다는 내용을 주고 받았다. 몇 달 뒤 '한미 전략적 투자에 관한 양해각서'가 체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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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해 한미전략투자법이 제정되고 한미전략투자공사가 설립되는 등 후속 절차가 진행되고 있지만 1호 프로젝트 발표는 늦어졌다. 미국 루이지애나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터미널, 알래스카 LNG 개발 사업, 메모리 반도체 설비 투자 등 다양한 건들이 거론됐는데 현실화하지는 않았다. 프로젝트 안건이 부상하면 정부가 '미확정' 입장을 내는 상황이 반복됐다.
한국의 대미 투자는 미국의 관세 인상 부담을 회피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설계됐다. '상업적 합리성 확보' '국민경제 발전 및 산업 경쟁력 강화 등 국익에 부합' 등 대원칙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졌다. 법까지 제정해 국가간의 명확한 약속이 됐으니 우리 정부도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만 총력을 다할 사안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투자 사업은 미국 대통령이 미국 투자위원회(위원장: 상무장관)의 추천을 받아 선정한다. 한국의 협의위원회(위원장: 산업통상부장관)와 협의를 거치긴 하지만 미국의 입김이 더 셀 수밖에 없다. 미국은 자국에 필요한 투자를 우선적으로 확보하려 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한국에는 미국 내 투자 유치가 쉽지 않거나, 사업성이 모호한 건들이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주로 에너지 관련 인프라 사업들이다. 좋은 건은 미국이 반대하고, 그렇지 않은 건은 한국이 난색을 표하니 의사결정이 늦어진다.
한국 내 준비가 완벽한 상황도 아니다. 대미 사업을 총괄하는 한미전략투자공사의 전략투자본부장이 취임 두 달여 만에 물러났다. 감사 등 필수 인력 채용 절차도 이어지고 있다. 공사는 세종시에 소재하고 있는데, 외교 업무에 준하는 역할을 하는 데 거리적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관세를 피하기 위해 대미 투자를 하는 것인데 솔직히 정부나 국민이나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겠느냐"며 "미국에서 좋은 사업을 주려하지 않을텐데 우리 입장에서는 손해를 보지 않아야 하니 딜레마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미 투자가 지연되자 미국의 압박이 심화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우리 정부에 대미 투자 프로젝트 결성을 서두르라는 취지의 서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한미 연합훈련 축소를 대미 투자 지연과 연계하는 시선도 있다. 민간 기업 투자까지 거론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미국의 항의에 청와대는 산업통상부를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과거 한국을 최악의 침해국(worst offenders) 중 하나로 꼽았다. 한국이 이란 전쟁 지원을 거부한 데 따른 불편한 감정도 갖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초 대미투자 특별법 제정이 지연되자 자동차 관세와 상호관세를 다시 인상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바 있다. 한국 입장에선 대미투자를 더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이달 미국을 방문한 후 1호 투자는 '에너지'며 내달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호 프로젝트를 발표한다고 부담이 모두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사업선정은 트럼프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29년 1월까지 이뤄진다.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선 정권의 힘이 강할 때 최대한 많은 투자를 확정하려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 입장에서는 많지 않은 기간 동안 수많은 잠재 프로젝트들을 살펴야 한다. 정부와 기업, 자문사 등 각계가 힘을 모으고 있지만 여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검토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수익성은 운에 맡겨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자문사 파트너는 "정부는 1호 사업을 빨리 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지만 미국에서 받는 초기 자료는 내용이 제한적이다 보니 사업성 판단이 쉽지 않다"며 "프로젝트마다 4~5주 안에 1차 의견을 내야 하다 보니 자문사들이 고역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국책은행이 주요 법무법인들을 대상으로 대미 투자 관련 업무에 참여할 수 있느냐는 의견을 비공식적으로 물었다. 각 법인의 최고 전문가들을, 6개월간, 해당 업무에만 참여시켜달라는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법인 입장에선 나랏일을 돕는다는 상징성이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장기간 한 사업에 묶이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다 보니 일부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대미 투자 프로젝트들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와 기업이 이를 관리하고 견제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대미 투자 중 조선협력투자에선 우리 조선사가 주된 역할을 하고 거기서 창출되는 수익도 챙긴다. 반면 2000억달러 투자는 다르다. 양해각서에 따르면 미국은 ‘투자 SPV(특수목적법인)'를 설립해 다수의 개별 프로젝트 SPV를 관리하게 된다. 투자 사업 선정부터 관리까지 미국의 주도로 이뤄지는 것이다. 각종 이익 공유 장치가 있지만 미국 측에서 한국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할지는 미지수다.
개별 사업의 운용 주체를 두고 한국과 미국간 이견이 발생할 수도 있다. 프로젝트 SPV는 '미국이' 소유하게 되는데, 미국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두고 의견차가 있는 분위기다. 미국은 미국 정부나 정부가 지정하는 기업이어야 한다고 보지만, 한국은 한국 기업의 미국 현지법인도 지분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기업 지분 보유 여부에 따라 사업 관여도는 물론 향후 수익 결과물도 달라질 수 있다.
미국에선 글로벌 투자사들이 미국 정부 측에 접촉해 기회를 물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잘 되면 운용 수익이나 성과 보수를 챙기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부담이 크지 않다. 한국에서도 나랏돈과 민간 자금이 대규모로 투입되는 만큼 전문성을 가진 관리자가 참여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공사는 행정적인 업무에 무게 중심이 있는 만큼, 개별 투자 사안은 외부의 도움을 받을 만하다는 것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주로 미국에서 소화하기 어려운 사업들이 넘어올텐데 자칫 잘못하면 큰 돈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며 "미국에선 글로벌 투자사들이 자금 관리를 하겠다고 정부에 줄을 서는 분위기인데 한국에서도 투자사에 자금 관리를 맡기는 안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