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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상장사들의 이사회 구성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이른바 '합산 3%룰' 강화 등 개정 상법의 핵심 조항이 올해 하반기부터 잇따라 시행되면서다.
2027년 정기주총은 이들 제도가 모두 적용되는 첫 정기주총 시즌이다. 특히 경영권 분쟁이 진행 중이거나 최대주주 지분율이 낮은 기업에서는 소수주주의 이사회 진입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사회 주도권을 둘러싼 표 대결이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기업들의 대응은 현재진행형이다. 올해 정기주총에서는 주요 상장사들이 집중투표 배제 조항을 삭제하고 이사 임기와 정원 등을 조정했다. 동시에 선임하는 이사가 많을수록 집중투표의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이사 임기와 선임 시기를 분산하는 방안도 대응책으로 거론된다. 법률·의결권 자문업계에서도 내년 주총을 겨냥한 이사회 구성과 표 대결 시나리오 관련 자문 수요가 늘고 있는 분위기다.
한 자문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은 벌써부터 내년 주총을 염두에 두고 이사 임기와 선임 시기를 조정하는 등 사전 작업을 해왔다”며 “지분율이 비슷한 주주 간 대결에서는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집중투표제가 맞물리면서 소수주주 측이 복수의 이사회 자리를 확보할 가능성이 커져 이사회 구성이 경영권 분쟁의 핵심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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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고려아연, 9월 전초전부터 내년 본게임까지
개정 상법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을 곳으로는 고려아연이 꼽힌다. 최윤범 회장 측과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이 경영권을 두고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오는 9월 임시주총에 이어 내년 정기주총에서도 이사회 주도권을 둘러싼 표 대결이 이어질 전망이다.
집중투표와 3%룰이 표 계산을 어떻게 바꾸는지는 당장 9월 9일 임시주총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려아연은 집중투표 방식으로 독립이사 4명을 선임한다. 양측이 각각 2명의 후보를 추천한 가운데 시장에서는 2석씩 나눠 가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주주는 한 주당 4개의 의결권을 갖고 특정 후보에게 표를 집중해 해당 후보의 이사회 진입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별도로 선임하는 감사위원이 되는 독립이사 1명에는 3%룰이 적용된다.
이번 임시주총이 전초전이라면 내년 정기주총은 본게임이 될 전망이다. 현재 기준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되는 고려아연 이사는 8명으로, 최 회장 측 5명과 MBK·영풍 측 3명으로 분류된다. 분리선출 감사위원 1명의 임기도 함께 끝날 예정이어서 주총 결과에 따라 양측의 이사회 내 세력 구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오는 9월10일부터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회사는 정관으로 집중투표제를 배제할 수 없고 분리선출 감사위원도 최소 2명으로 늘어난다. 여기에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합산해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합산 3%룰'까지 적용되면서 일반 이사와 감사위원 선거의 표 계산을 각각 따져야 한다.
이번 임시주총에서는 감사위원 후보 간 대결도 주목된다. 고려아연 측은 한국과 미국의 공인회계사 자격을 갖추고 딜로이트그룹 이사회 의장 등을 지낸 회계·감사 전문가 백인규 단국대 교수를 내세웠다. MBK·영풍 측은 책임투자와 ESG·기업지배구조 분야에서 활동해온 박유경 전 APG자산운용 아시아·태평양 책임투자 및 지배구조(ESG) 부문 총괄 대표를 추천했다. ISS와 서스틴베스트 등 주요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은 백 후보의 손을 들어준 상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임시주총을 앞두고 양측과 자문단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의결권 자문사들의 권고안도 속속 나오고 있다”며 “고려아연에서 회계·내부통제 문제 의혹이 불거졌던 만큼 회계 전문가인 백 후보의 전문성을 높게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실제 표 대결에서는 국민연금의 선택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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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G·에스원도 이사 대거 임기 만료…행동주의 변수
경영권 분쟁 기업만의 문제도 아니다. 최대주주 지분율이 낮거나 주식 소유가 분산된 기업에서는 집중투표제가 행동주의 주주의 이사회 진입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KT&G다. 현재 이사회 8명 가운데 3명의 임기가 2027년 정기주총에서 끝난다. 특정 지배주주가 없는 소유분산 기업인 데다 행동주의 펀드 플래시라이트 캐피탈 파트너스(FCP)가 2022년부터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환원 확대 등을 요구해온 만큼 국내외 기관투자가의 표심이 이사회 구성의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올해 FCP의 새로운 행동주의 타깃이 된 에스원도 이사회 9명 가운데 4명이 내년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FCP는 에스원 지분 1% 이상을 보유하고 이사회 전문성 강화와 잉여현금 활용 등을 요구하고 있다. 아직 이사 후보 추천 계획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주주제안에 나설 경우 집중투표제가 변수가 될 수 있다.
최대주주 지분율이 높은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이호진 전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지분 절반 이상을 보유한 태광산업은 행동주의 펀드 트러스톤자산운용과 수년째 갈등을 빚고 있다. 감사위원 선임에서는 최대주주 측 지분을 합산해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어 지분 우위가 크게 제한될 수 있다.
행동주의 펀드가 아니더라도 이사회 독립성을 둘러싼 소수주주들의 문제 제기도 이어지고 있다. 골프존홀딩스는 최근 최대주주 측이 추진하는 공개매수를 두고 소수주주인 터톤캐피탈 등이 이사회의 의사결정 과정과 독립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몇 주 갖고 있나"에서 "몇 명을 언제 뽑나"로
과거 경영권 방어에서 최대주주와 우호주주가 확보한 지분율이 핵심 변수였다면 앞으로는 이사를 몇 명씩 어느 시점에 선임하느냐도 중요해질 전망이다. 이사회 전체 정원과 개별 이사의 임기, 연도별 선임 인원 자체가 새로운 주총 전략의 변수가 되는 셈이다.
기업들의 대응도 구체화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삼성SDS는 올해 주총에서 집중투표 배제 조항을 삭제하고 이사 임기를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정관을 손질했다. 삼성SDS의 경우 이사 임기를 기존 '3년'에서 '3년을 초과하지 못한다'로 변경했다.
한화 계열사들도 이사 임기를 조정했고 일부 회사는 이사 정원을 줄였다. 효성 역시 이사 정원 등 이사회 구조를 손질했다. 다만 기업들은 이 같은 정관 변경이 개정 상법을 반영하기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어서 이를 집중투표제에 대한 '경영권 방어'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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