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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1기가와트(GW)급 AI 데이터센터(DC)를 구축하는 데 약 50조원의 자금이 필요하다고 가정하면, 연간 임대매출만 25조~30조원을 뽑아낼 수 있다. 최근 코어위브 실적에서도 60%대 매출총이익률(GPM)이 확인됐다. 대규모 컴퓨팅을 구축해서 빌려주는 능력 자체가 두 자릿수 마진을 보장하는 고부가가치 사업이 된 것이다. 대기업들이 내재화에 실패해서 빌려쓰는 입장에 머물게 되면 AI 사용량이 늘어날수록 마진을 지불하거나 비용만 부담하는 구조가 굳어질 수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
AI 연산 수요가 매 분기 폭증하면서 관련 인프라 사업에 뛰어든 대기업들의 사업 진척에 대해서도 투자업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AI 인프라 자체가 수익자산이 되면서 관련 역량을 직접 보유한 기업과 빌려 쓰는 기업의 경제성 격차가 벌어질 가능성이 커지면서다. SK그룹을 필두로 대부분 대기업들이 관련 사업에 뛰어들고 있지만 투자업계에선 아직 글로벌 시장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6일(현지시간) 엔비디아는 2027회계연도 2분기 매출액이 962억달러(원화 약 130조원)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글로벌 시가총액 1위 기업의 매출액이 1년 만에 2배 증가한 데다 13개 분기 연속 사상 최대치를 경신한 것이다. 매출 성장 대부분이 데이터센터 부문에서 발생했는데, 회사는 다음 회계연도에도 약 70%의 매출 성장을 예상했다. 이마저도 실제 확인되는 수요에 비해 확보한 공급 능력이 부족해 보수적으로 제시한 전망치다.
이번 실적 발표 내용을 두고 시장에서는 AI컴퓨팅 공급 증가 속도가 수요 증가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불과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엔비디아가 반도체 구매 비용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 빅테크들이 막대한 차입과 자본을 동원해 CAPEX를 확대하는 구조를 두고 거품 논란이 지속됐으나 여전히 AI 수요가 강력하다는 게 재확인된 것이다.
자연히 최근 월가가 본격적으로 뛰어든 AI 인프라 금융에 대한 시각도 서서히 바뀌고 있다. AI DC 같은 핵심 연산자원 자체가 장기간 현금흐름을 만들어내는 수익자산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시각이 점차 강해지는 분위기다. 한때 거품의 증거처럼 부각됐던 메타의 컴퓨팅 자원 외부 공급 구상 역시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원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자문시장 한 관계자는 "미국 현지에선 하이퍼스케일러들이나 네오클라우드 업체들이 인프라를 빨리 선점하는 게 중요하다 보고 CAPEX 부담은 아랑곳 않고 속도를 내고 있다"라며 "어차피 AI 수요는 늘어날 테고, 서비스 적용 범위도 늘어날 테니 월가에서도 금융 서비스를 제공해서 상품 구조를 설계하기 시작했고, 엔비디아가 여기서 주도적 역할을 맡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대기업들도 이런 변화에서 사업 기회를 찾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의 속도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27일 SK텔레콤의 100% 자회사 SK브로드밴드가 AI DC와 해저케이블 사업을 떼어내 SK호라이즌을 신설한 것도 이 같은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 SK그룹은 반도체·에너지부터 AI 인프라 구축·운영, 서비스 공급까지 AI 풀스택 기조를 내세워 작년부터 AI 인프라 사업에 힘을 실어왔다. SK텔레콤이 전면에 나선 가운데 SK하이퍼와 SK호라이즌 등 자회사들이 사업·지배구조 재편과 외부 투자유치를 통해 밸류체인 분담에 나선 셈이다.
SK그룹 내부적으로 반도체나 에너지 담당 계열사까지 세부 과제를 조율하며 관련 역량을 집결하기 위한 구상이 한창인 것으로 파악된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으로 그룹 내 에너지 역량을 결집한 데다, SK하이닉스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확보한 고객 네트워크까지 갖추고 있어 다른 그룹사에 비해 유리한 입지를 점했다는 평이 많다. 그룹 차원에서도 초기 사업성이나 수요 확보 여부를 따지기보다 속도부터 내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대기업들도 클라우드(CSP) 사업을 운영해본 곳들은 있지만, AWS나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같은 빅테크처럼 초대형 GPU 클러스터를 구축해본 곳은 없다"라며 "해본 적도 없는데 테넌트 확보 불확실성까지 겹쳐 있으니 다들 신중한 분위기인데, SK그룹 정도가 그나마 가장 전향적인 상황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삼성그룹의 경우 삼성SDS를 중심으로 AI 인프라 사업 확대에 나섰지만 아직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나기 전이라는 평가가 많다. 삼성SDS가 클라우드 사업 경험을 보유하고 있지만 수십조원 자금이 투입되는 대규모 AI 인프라를 독자적으로 추진하기에는 자본력이나 사업 경험 모두 부담이 크다. 이례적으로 KKR 등 외부 자본과 손을 잡은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SK그룹과 달리 내부에 에너지 사업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만큼 독자적으로 전력망(그리드)을 확충하기 힘들어 계속해서 재무적투자자(FI) 도움이 필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AI DC를 지으려면 부지와 전력을 먼저 확보하는 게 중요해서 반도체 사업을 가지고 있어도 전력 문제를 외부에 의존하는 구조면 속도를 내고 싶어도 내기 힘들 수가 있다"라며 "최근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계획이 대폭 늘어나기도 했고, 계열 건설사들은 관련 설계·조달·시공(EPC) 역량을 재가동하거나 부활시키려 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양사는 정부가 추진하는 대규모 AI 인프라 프로젝트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맡고 있다. 다만 국내 대기업 특유의 계열 구조상 필요한 역량과 자본이 여러 상장사에 분산돼 있어 사업이 본격화할수록 지배구조와 이해관계 조정 문제가 부각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반도체와 에너지, 건설·운영 등 각 계열사가 밸류체인 일부를 담당할 수는 있지만 이를 하나의 사업으로 결합하는 과정에서 투자 부담과 수익이 각사에 다르게 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그룹마다 관측되는 사업 진척도의 차이보다는 이 같은 문제가 전체 사업 속도를 좌우하게 될 것이란 시각도 나온다.
양사와 마찬가지로 메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네이버나 GS그룹에 대한 관심도 꾸준하다. 양사는 AI 인프라 영역에서 각기 다른 강점을 보유한 사례로 꼽힌다.
네이버는 국내에서 대규모 GPU 클러스터 구축·운영부터 자체 AI 모델 개발, 서비스까지 직접 운영해본 유일한 기업이다. 그러나 글로벌 빅테크에 비해 자체 확보한 인프라나 자본력도 제한적이어서 GW급 인프라 사업을 독자적으로 추진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투자업계에서는 네이버가 엔비디아와 협력을 본격화하긴 했으나, 역시 외부 FI와 손잡고 대규모 자본을 조달하기 위한 사업구조를 마련해내는 것이 관건이라고 보고 있다.
GS그룹은 반대편에 가깝다. 사업 포트폴리오 전반이 AI·테크 사업과 동떨어져 있으나 발전사업이나 에너지 프로젝트 개발 역량을 두루 갖추고 있다. 대규모 전력 확보가 AI 인프라 개발의 핵심 병목으로 떠오른 만큼 보유 발전설비나 전력조달 역량을 활용해 글로벌 하이퍼스케일러나 빅테크를 테넌트로 유치하기에 오히려 유리한 입지라는 평가도 있다. 직접 컴퓨팅 자원을 공급할 역량이 없어도 전력과 부지 등 기반 인프라를 제공하는 형태로 비교적 빠르게 관련 사업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증권사 에너지 담당 한 연구원은 "GS그룹이 보유한 동해 지역 발전자산 가동률이 떨어지는 문제가 현재 글로벌 빅테크와의 협업 기회로 조명되고 있다"라며 "직접 AI DC를 구축, 운영하고 임대사업까지 벌이려는 대기업보다는 오히려 발전사업만 해온 GS그룹 같은 곳이 가장 먼저 사업화 성과를 낼 수도 있는 역설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