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수급 쏠림 현상으로, 국내 증시가 깊은 내상을 입고 투자자 신뢰가 흔들렸다. 금융당국의 '투자자 진입 차단식 규제'로 급한 불은 끈 모습이지만, 본질적인 처방이 아니라는 업계 지적이 나온다.
특정 고위험 상품으로의 쏠림과 시장 왜곡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단순 수급 억제를 넘어, 시장 스스로 변동성을 완충하고 분산할 수 있는 '파생 구조화 생태계'로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업계 제언이 나온다.
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단일종목 레버리지·인버스 ETF 16종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상장 초기(5월 27일~7월30일) 11조 6787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기본예탁금 상향 규제가 시행된 7월 31일 이후 8월 28일까지 일평균 거래대금은 1조59억원으로 종전 대비 90% 이상 감소한 모습이다. 특히 예탁금 상향 전후 10거래일간 일평균 거래대금은 11조406억원에서 1조1675억원으로 89% 넘게 감소세를 보였다.
-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하지만 변동성의 불씨는 여전하다. SK하이닉스의 대규모 자사주 소각과 삼성전자 주주환원 계획이 발표된 지난 20일과 21일 거래대금은 각각 1조 599억 원, 9771억 원을 기록하며 다시 1조 원 안팎으로 치솟았다.
지난 28일 기준 하루 거래대금은 5370억원까지 다시 감소했지만, 반도체 대형주 관련 주요 이벤트가 발생할 때마다 거래대금 증가세가 되풀이될 것이라는 시장 우려는 여전하다.
진입 규제에 따른 풍선효과도 뚜렷하다. 단일종목 레버리지에 몰렸던 자금은 국내 지수형 레버리지 ETF나 신용융자로 옮겨붙었다. 해외로 눈을 돌린 투자자들은 미국 나스닥 레버리지 상품에 순매수를 이어가기도 했다.
이처럼 투자자 진입만 차단하는 금융당국의 규제에 한계점이 드러나자, 업계 일각에서는 개별주식 선물·옵션 시장의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는 일간 배율 유지를 위해 매일 장 마감 직전 대규모 리벨런싱(대량 매수 및 매도)을 거친다. 문제는 국내 파생시장의 수용 여력이 낮다 보니, 장 막판 쏟아지는 리벨런싱 물량이 선물과 현물 시장을 연쇄적으로 자극하며 본주 가격을 뒤흔드는 '왝더독(Wag the dog)' 현상을 초래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주문 충격을 파생시장에서 흡수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주문한다. 미국처럼 종가 부근에 쏠리는 헤지 주문을 장중에 분산 체결하도록 유도하는 시간가중평균(TWAP) 가이드라인 도입이 대표적이다.
아울러 시장조성(MM) 증권사에 대한 증권거래세 감면 혜택 복원과 위탁증거금 규제 완화를 통해 호가 층(유동성 심도)을 두텁게 다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다만, 파생시장 유동성 부족 자체를 사태의 단일 원인으로 보기 어렵다는 반론도 나온다. 대형 반도체 종목의 파생 거래 규모는 꾸준히 늘어왔으며, 이번 사태를 호가 공급 실패로 인한 단순 가격 괴리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본질은 시가총액 최상위 종목에 개인 투자자 자금이 쏠리며 대형주가 급등락을 반복하는 '테마주'처럼 변질된 데 있다는 진단이다.
주가 급변 시 손실과 충격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구조(숏감마)가 형성됐을 때, 변동성이 커질수록 반대로 완충 작용을 해주는 '파생 구조화 상품(롱감마)'이 적시에 충분히 공급되지 못한 점이 시장 충격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자산운용업계에서는 인프라 정비보다 다양한 시장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상품 다변화'가 선행되어야 파생 생태계가 살아난다고 강조한다. 국내 증시가 특정 대형주에 편중된 구조에서 획일적인 2배 레버리지 상품만 허용되다 보니 수급 쏠림이 불가피했다는 진단이다.
투자자가 하락장이나 횡보장에서도 위험을 피할 수 있도록 원자재(금·은·구리·원유 등) 선물 ETF나 하방 손실을 일정 수준 제한하는 '버퍼형 ETF' 등 다양한 손익 구조를 가진 파생 결합 상품이 대폭 확충돼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파생 시장 인프라를 먼저 깔아둔다고 변동성이 저절로 잡히는 것이 아니다"라며 "투자자들이 다양한 시장 국면에서 선택할 수 있는 대체 상품이 활성화될 수 있게 규제를 조정해야, 그에 맞춰 개별주식 옵션이나 단기 파생 시장 체질 개선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라고 짚었다.
결국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이 유발한 시장 왜곡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사후 규제 일변도'에서 벗어나 '사전 인프라 혁신'으로 정책 프레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책적으로는 신종 고위험 파생 상품 상장 전 시장 충격과 유동성을 검증하는 시험 상장(파일럿) 제도와 시나리오별 스트레스 테스트 도입이 요구된다. 아울러 주간·일간 단위 옵션 도입 등 상품 설계의 자율성을 넓혀 시장 참여자 스스로 충격을 흡수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 업계 주장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특정 상품으로의 쏠림이 발생했을 때 이를 상쇄할 수 있는 다양한 파생 구조화 상품이 발 빠르게 공급되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파생상품을 거래 위험성을 근거로 무조건 틀어막기보다 시장 완충판 역할을 할 수 있는 구조화 생태계를 열어주는 것이 근본적인 재발 방지책"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