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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구조화금융 시장에 해외 기업이 새로운 기초자산으로 등장하고 있다. 해외 기업의 회사채, 주식, 신용부도스와프(CDS·Credit Default Swap) 등을 기초로 국내 투자자가 투자할 수 있는 원화 구조화상품을 잇달아 설계하는 분위기다.
베트남 최대 기업집단 빈그룹(Vingroup)의 주식을 담보로 한 원화 유동화증권, 미국 빅테크 기업인 메타(Meta)와 엔비디아(NVIDIA)의 신용위험을 활용한 상품도 국내에서 검토되고 있다. 그동안 국내 부동산과 기업 신용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구조화금융 시장의 외연이 해외로 넓어지는 모습이다.
최근 국내 증권사들은 베트남 최대 기업집단 빈그룹 주식을 담보로 한 사모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 계획을 세웠다. 사모 ABS는 BBB급 신용도로 발행되며 총 3000억원 규모, 만기는 3년이다. 신한투자증권 베트남 현지 법인이 한국 투자자를 대상으로 아리랑본드를 발행하고, 이를 국내 증권사들이 인수가 각각 유동화하는 방식이다.
기초자산에는 빈그룹 부동산 자회사인 빈홈(Vinhomes)와 호텔·리조트 부문 빈펄(Vinpearl) 등의 주식이 담보로 활용된다. 빈그룹이 베트남 증시에서 차지하는 시가총액 비중이 약 19%에 달하는 만큼 현지에선 익숙한 대형 자산이지만, 국내 투자자 입장에서는 베트남 기업의 주식과 채권을 결합한 구조화상품이라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생소하다. 시장에서는 한양증권 등 일부 국내 증권사들이 해당 상품을 투자자들에게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빅테크의 신용위험도 국내 구조화금융 시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메타와 엔비디아의 CDS를 기초로 한 상품이 검토 대상에 올랐다. 해외에서 거래되는 CDS 계약을 특수목적회사(SPC) 등에 편입한 뒤 이를 다시 원화 유동화증권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ABS나 자산유동화전자단기사채(ABSTB) 등의 발행 형태가 논의 중이며, 사모 형태로 발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 상품이 등장하는 배경에는 최근 미국 AI 기업의 신용위험 확대가 있다. AI 인프라 투자를 대폭 늘리면서 대규모 자본적지출(CAPEX)과 외부 자금조달 부담이 커졌고, 이에 따라 우량한 펀더멘털에도 채권 스프레드와 CDS 프리미엄이 확대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8월 들어 메타와 엔비디아를 포함한 주요 AI 기업의 신용위험 지표가 미국 투자등급 회사채 시장 평균보다 높은 수준을 보이면서 이를 활용한 상품 설계 여지도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구조화금융 시장에서는 이 같은 신용 스프레드 확대가 새로운 상품 설계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글로벌 시장에서 거래되는 신용위험을 국내 투자자의 수익률 수요와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익숙한 신용파생상품을 국내 투자자가 접근할 수 있는 원화 상품으로 재구성하는 셈이다.
해외 기초자산의 국내 유입이 빨라지는 만큼 위험 평가 역량이 충분한지를 둘러싼 우려도 있다. 국내 투자자에게 익숙하지 않은 해외 기업의 신용위험뿐 아니라 CDS 거래상대방, 담보자산, 환율과 법률 구조 등 여러 위험이 한 상품 안에 결합할 수 있어서다. 기초자산 자체의 신용도가 높다고 해서 유동화증권의 신용도까지 동일하게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특히 CDS를 활용한 상품은 기초기업의 신용 이벤트뿐 아니라 CDS 프리미엄 변동에 따른 평가손익에도 노출될 수 있다. AI 산업의 수익화가 지연되거나 경쟁 심화로 실적 변동성이 커질 경우 CDS 프리미엄이 급등하면서 국내 매입 기관이 평가손실을 떠안을 가능성도 있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초기 발행 검토 물량 자체는 많지 않지만, 빅테크발 신용 이벤트가 발생할 경우 평가손실로 이어질 수 있는 고위험 파생 구조"라며 "기초자산의 이름값만 보고 접근하기보다는 실제 위험이 어디에 전가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채권시장에서는 이번 흐름이 국내 구조화금융 시장의 제도적 한계를 드러내는 동시에 새로운 사업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해외에서는 국채와 회사채, 신용파생상품 등을 활용한 구조화금융이 대규모 시장으로 자리 잡았지만 국내는 관련 상품과 제도 기반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는 지적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해외 자산을 국내로 들여오는 것뿐 아니라 반대로 우리나라 국채나 회사채를 활용한 구조화상품에 대한 해외 수요도 적지 않다"며 "국내 시장도 상품 구조와 투자자 보호 장치를 정비하면 구조화금융을 새로운 자본시장 비즈니스로 키울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