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상장 문턱에 막힌 로봇기업들…성장 자금 조달 비상
입력 2026.09.07 07:00

중복상장 규제에 IPO 엑시트 불확실성 커져
HL로보틱스 500억 프리IPO 중단…모회사 150억 출자
HD현대로보틱스 IPO 논의도 소강…가이드라인 보완 주시
원익로보틱스는 정책자금 확보…향후 엑시트 방식 과제

  • (그래픽=윤수민 기자) AI 생성 이미지(편집)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AI 생성 이미지(편집)

    중복상장 원칙 금지로 대기업 계열 로봇기업들의 성장자금 조달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상장을 통한 투자금 회수(엑시트)가 불투명해지면서 상장 전 외부 투자 유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다. 

    로봇산업은 연구개발(R&D)과 생산시설 등에 대규모 선제 투자가 필요한 만큼, 모회사 출자나 정책금융 등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며 IPO 시점을 저울질하는 분위기다.

    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HL그룹의 로봇 계열사 HL로보틱스는 약 500억원 규모의 프리IPO 투자 유치를 추진했지만 현재 관련 절차가 멈춘 상태다. 중복상장 규제 강화로 향후 IPO 시기와 가능성을 예측하기 어려워지면서 외부 투자자 확보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HL로보틱스는 HL홀딩스가 지분 95%를 보유한 자회사다. 프리IPO가 중단된 이후 지난 8월 HL홀딩스는 HL로보틱스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150억원을 납입했다.

    HL로보틱스 측은 "이번 증자는 지난해 충북도청 납품 이후 다양한 고객사를 확보하기 위한 사업자금 마련 차원"이라며 "향후 IPO 계획과 프리IPO 모두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HD현대로보틱스도 중복상장 규제 강화로 상장 일정이 불투명해진 상태다. IPO 추진 의지는 강하지만 모회사 주주 동의 등 거쳐야 할 절차가 많아 당장 본격적인 추진에는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HD현대로보틱스의 IPO 추진 의지는 확실하지만 관련 논의는 소강상태인 것으로 안다"며 "중복상장 가이드라인이 보완되기 전까지는 본격적으로 진행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HD현대로보틱스에는 이미 외부 FI의 대규모 자금이 들어와 있다. 지난해 산업은행과 KY PE로부터 1800억원 규모의 프리IPO 투자를 유치했다. 당시 투자계약에는 일정 기간 내 IPO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지주사인 HD현대가 FI 지분을 매입하는 조건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상장 지연이 장기화할 경우 모회사에도 부담이 될 수 있는 구조다.

    원익로보틱스는 정책자금인 국민성장펀드 등을 통해 대규모 성장자금을 확보했다. 원익홀딩스가 지분 96% 이상을 보유한 원익로보틱스는 전북 완주 로봇핸드 생산공장과 AX센터 구축 등을 위해 총 3500억원 규모의 증자를 추진하고 있다. 이 가운데 1500억원은 한국산업은행에 설치된 첨단전략산업기금이 전환우선주(CPS) 방식으로 투자하고 나머지 2000억원은 민간투자자로부터 조달할 예정이다.

    다만 원익로보틱스 역시 향후 IPO에 나설 경우 중복상장 규율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만큼 정책자금의 엑시트 방식에도 관심이 쏠린다. 당장의 성장재원은 마련했지만 결국 투자자에게는 자금을 회수할 통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가 로봇을 비롯한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대규모 자금을 공급하는 상황에서 중복상장 규제와 성장자금 공급 정책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도 향후 과제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중복상장 규제가 장기화할 경우 로봇기업의 자금조달 부담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국내에서는 IPO가 FI의 주요 엑시트 수단으로 활용되는 만큼 상장 불확실성이 커지면 프리IPO 등 외부 투자 유치도 위축될 수 있어서다. 특히 로봇산업은 기술 개발과 양산 체제 구축에 대규모 선제 투자가 필요한 만큼 적기에 성장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IPO 시기를 가늠하기 어려워지면 FI 입장에서도 투자 결정이 쉽지 않다"며 "원익로보틱스처럼 정책자금을 받는 경우에도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니, 향후 IPO가 가능한 방안이 조율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