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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현재 세계 1위 로펌은 커클랜드앤엘리스(Kirkland & Ellis)다. 작년 매출 108억달러(약 14조7000억원)로 전세계 로펌 중 처음으로 100억달러의 벽을 넘어섰다. 지분 파트너 1인당 이익은 1100만달러(약 149억원)에 달했다.
커클랜드는 2000년대 들어 사모펀드(PEF)에 힘을 실으며 외형을 키웠다. 2009년 데이비드 폭스(David Fox) 변호사를 경쟁 로펌에서 영입한 후 성장세가 더 가팔라졌다. 폭스 변호사는 커클랜드의 M&A 사업을 키워 수익 기반을 넓혔다. 커클랜드의 성장 전략을 이끈 핵심 인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폭스 변호사는 올해 법률기술 기업 어빙테크놀로지(Irving Technology)를 설립했다. 이 기술을 기반으로 인공지능(AI) 기반 로펌 어빙(Irving)을 출범시켰다. 어빙은 기존에 어소시에이트 변호사들이 하던 리서치나 문서 작성 등 반복 업무는 AI가 수행하는 구조를 지향한다. 어빙에 소속된 변호사는 복잡한 판단이나 협상, 고객 대응 등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영역을 담당한다.
대형 로펌들은 파트너와 수많은 어소시에이트 변호사들이 투입하는 '시간'을 바탕으로 성장해 왔다. 그런데 커클랜드의 성장을 상징했던 인물이 이번에는 AI에 기대 그 성장 공식을 뒤집으려는 실험을 하는 모양새다. 변호사 인력을 최소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커클랜드 역시 자체 플랫폼 개발에 수억달러를 투입하기로 하는 등 AI에 공을 들이고 있다. 커클랜드가 기존의 'Big Law'를 유지하면서 AI를 접목시키려 한다면, 어빙은 AI를 중심으로 로펌의 사업 모델 자체를 다시 설계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어빙의 시도가 법률자문 시장의 인력 구조와 사업 모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시선이 모인다.
국내 법률자문 시장에도 AI는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각 법무법인들은 AI 활용 시스템을 구축하고, AI 에이전트 이용료로 거금을 지불하고 있다. 법조 업무에 활용할 각종 AI 솔루션들도 속속 생겨난다. 고객이 AI를 쓰니 이에 대응해야 하는 법무법인도 AI 활용은 필수다.
AI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데는 법조계 안에서 이견이 없다. 다만 AI를 어느 수준까지 활용해야 하느냐는 고민은 남아 있다.
국내 법무법인 역시 해외 로펌처럼 파트너와 어소시에이트 변호사가 함께 업무를 수행하고, 그 노동력과 시간에 비례해 수임료를 받는 사업 모델을 갖고 있다. 그러나 AI가 어소시에이트 변호사의 일을 상당 부분 대체하면 비용을 청구할 기반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
서비스를 받는 고객들은 이미 AI를 활용하는 데 익숙하다. 고객이 법률자문 계약을 맺을 때 AI로 할 수 있는 부분은 빼달라고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변호사 인력 투입을 제한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이는 자문료 감소로 이어진다.
한 투자은행(IB) 관계자는 "M&A 법률자문 업무도 상당 부분 AI를 통해 진행할 수 있다 보니 자문 비용을 깎으려는 움직임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법률자문 시장의 사업 모델은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파트너와 다수 어소시에이트 변호사가 일하는 방식에서 파트너와 소수 변호사 혹은 파트너와 AI 구조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파트너들의 업무 효율성과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AI 활용을 독려하는데 그럴수록 저연차 변호사의 일감은 감소한다. 문제는 이들이 실무 경험을 쌓을 기회까지 줄어든다는 점이다. 장기적으로 스타 변호사 육성 전략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고객과 일감을 가진 기존 파트너는 더 많은 수임 기회와 수익을 챙기겠지만 어소시에이트 변호사는 반대의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궁극적으로 법무법인의 인력 구조도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의 구조가 급박하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AI가 침투할수록 신규 인력 채용 규모는 줄어들 가능성이 커진다. 일부 법무법인은 올해 신입 변호사 채용 수를 줄이는 안을 고민하는 분위기다.
한 법무법인 파트너 변호사는 "이미 작년에 AI 때문에 채용 규모를 줄인 곳들이 있었는데 올해도 비슷한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