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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금융사들이 잇달아 해외 금융사 인수에 나서고 있다. 포화한 국내 시장에서 민원과 규제 리스크를 떠안는 대신, 해외시장에서 우량 매물을 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인수합병(M&A) 시장이 정체되면서 ‘매수자 우위 시장’(buyer's market)에 가까워진 가운데 본업과 자산운용 역량을 확보할 수 있는 금융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국내 금융사들은 잇따라 글로벌 금융사 지분 혹은 경영권 확보에 나서고 있다. 보험사나 증권사 등 비은행 중심으로, 미국과 영국 등 선진 시장에서 매물을 찾고 있다. 금융지주 중심, 아시아 지역 위주였던 2010년대 금융사 아웃바운드(outbound; 국내사의 해외사 인수) M&A 추세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당장 눈에 띄는 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다. 이들은 현재 각각 글로벌 보험사 인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그간 삼성의 금융 계열사가 대형 해외 M&A에 소극적이었던 만큼 이례적인 변화로 해석된다.
DB손해보험은 지난 5월 미국 특화보험사 '포테그라' 인수를 마무리했다. 인수가액은 약 2조3000억원으로 국내 보험사가 단행한 해외 M&A 중 최대 규모다. DB손보 입장에서도 자기자본의 25%를 투입한 최초의 초대형 베팅이다.
증권가에서 해외 M&A에 가장 적극적인 금융사로는 미래에셋증권이 꼽힌다. 현재 일본 증권사 인수를 검토하고 있으며 앞서 미국의 온라인 증권사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 2024년 인도 증권사 '쉐어칸' 인수에 이어 글로벌 M&A 시장에서 보폭을 넓히는 모습이다.
보험업계와 증권업계 1, 2위를 다투는 금융사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는 배경에는 국내 시장의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금융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로 저출생·고령화가 심화하면서 성장 여력이 갈수록 줄고 있다는 분석이 지속된다.
당장 국내엔 매물도 부족하다. 최근 매물로 나온 KDB생명, 롯데손해보험, MG손해보험 등은 대부분 건전성이 충분치 않은 중형사로 인식된다. 인수 후 정상화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한 데다 낮은 자기자본이익률(ROE)로 인해 자본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증권업계도 사정이 비슷하다. 올 상반기 증시 호황에도 대형 증권사의 브로커리지 점유율이 상승했을 뿐, 중소형사는 수혜를 보기 어려웠다. 인바운드 M&A로 몸집을 불려봐야 실익이 크지 않다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특히 최근 몇 년간은 매물 자체가 드물었다. 2025년 KCGI의 한양증권 지분 인수, 2024년 우리금융지주의 포스증권 인수 등 한 손에 꼽히는 규모다.
금융업 특유의 규제 리스크도 해외 진출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보험업은 대표적인 규제 산업으로 자회사 투자 등 자본 운용 전반에 제약을 받고 있다. 대형 보험사들은 대규모 자본을 보유함에도 자산의 60~70%를 채권에 묶어두는 보수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사모펀드 등 대체투자 비중이 40%에 달하는 미국 메트라이프 등과 대조적이다.
더욱이 보험사의 수익구조는 전통적인 보험손익 대신 투자손익 중심으로 재편되는 흐름이다. 이에 해외의 성장성 큰 기업을 인수하면 안정적인 수익 축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 것으로 해석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 인수는 사실상 자산운용사를 산다는 개념"이라며 "국내에선 투자 제약이 많다 보니 수익성에 한계가 있고, 해외 시장을 통해 이를 만회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업에도 규제 리스크가 크게 작용한다. 증권사 대표들을 줄줄이 중징계 했던 '라임·옵티머스 사태'가 대표적이다. 당시 금융당국은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직무정지 등의 징계를 결정했지만, 정작 법원에선 "의무를 처분 대상자에게 불리하게 확대해석했다"고 판단했다.
최근에도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해외주식 투자 열풍 등을 겨냥한 압박이 이어졌다. 투자자들의 민원이 불거질 때마다 증권사가 책임을 떠안는 구조라는 불만이 나온다. 영업 활동 제한보다 위험 관리·판매 방식에 대한 규제가 보편적인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다.
한 금융사 고위 관계자는 "법적으로 절차상 문제가 없는 딜도 민원이 잇따르면 일단 당국이 멈춰세우고 '민원 해결하고 오라'라는 경우가 많다"며 "이미 포화 상태인 국내 시장에서 리테일(소매) 점유율을 올려봐야 규제 및 민원 리스크만 커지니, 초기 비용이 좀 크더라도 예측가능한 선진국 시장에 진출하는게 중장기적으론 이득이라는 계산"이라고 말했다.
시장 상황도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평가다. PwC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글로벌 보험사 M&A 시장은 296억달러·191건 규모로 직전 반기(318억달러·207건)보다 소폭 줄었다. 이에 "매수자들이 까다로워지면서 매도자의 가격 기대치가 조정되고 있다"고 짚었다.
딜로이트안진은 최근 보고서에서 "2026년 보험 M&A 시장은 전면적인 거래 증가보다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과 자본 재배치, 장기적 가치 제고를 목적으로 한 거래가 중심이 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지금까지 국내 금융사들의 해외 M&A 성과는 준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래에셋증권은 2분기 해외법인의 연결 세전이익 기여도가 24%에 달했다. 전 분기 대비 6%포인트(p) 확대된 것으로 미국(37%), 홍콩(35%), 런던(18%), 인도(5%) 등 주요 해외 거점이 고른 성과를 냈다.
삼성화재 역시 지분 40%를 보유한 영국 '캐노피우스'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올 상반기 기준 캐노피우스의 지분법이익은 1685억원으로 순이익의 12.3%를 차지한다. DB손보는 포테그라 편입으로 올 하반기 약 1200억원의 순이익이 추가로 반영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만 이런 성과가 이어질 것이란 보장은 없다. 대형 M&A의 경우 당분간 자본 감소 및 건전성 약화 등의 부작용도 감내해야 한다. 실제 DB손보의 경우 포테그라 인수로 지급여력비율이 20%p 이상 하락하기도 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자본 여력과 오너·최고경영자(CEO)의 강력한 의지를 갖춘 소수 대형사를 중심으로 아웃바운드 딜을 선호하는 흐름이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