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 회장 전격 교체, '정치적 외압' 보단 '윤종규의 그림자'
입력 2026.09.15 07:00

11일 회추위서 현직 성과ㆍ미래 비전 집중 점검
주가ㆍ실적 사상 최대시점, 65세→60세 '세대교체'?
양 회장-이사회 사이 미묘한 시각차 그간 거론돼
'정치적 외압' 부담이 오히려 '이사회 판단' 정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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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KB금융이 예상을 깨고 3년 만에 새로운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했다. 전격적 교체의 배경을 두고 여러 해석이 제기되는 가운데, '부패한 이너써클론'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외압설보다는 이사회 내부 기류 변화가 핵심 원인으로 꼽히는 분위기다.

    금융권에서는 독립이사 전원으로 구성된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가 양 회장의 리더십에 만족하지 못했다는 것에 주목한다. 윤종규 전 회장의 마지막 임기를 함께한 '선임 독립이사'들이 주도한 것으로 추정되는 회추위가 윤 전 회장의 신임을 한 몸에 받던 이재근 부문장의 손을 들어준 것이 이번 후보 선정 결과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관리의 양종희보단 영업의 이재근? 세대교체도 '물음표'

    11일 열린 회추위 최종 면접에서 7명의 독립이사들은 후보들이 '현직 시절 이끌어 낸 성과'와 '그룹의 미래 비전'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간 그룹의 성장 동력이 됐던 은행의 대출 성장이 정체된 가운데, 주주환원 요구는 커지고 규제는 고도화되는 등 그룹 안팎의 현안이 엄중한만큼, 능력 위주의 리더십을 요구한 것이다.

    양종희 회장은 영업보다는 관리에 특화된 인물로 통한다. 이사회 사무국장을 역임했고, 윤종규 회장이 KB금융 최고재무책임자(CFO)로 근무하던 시절 경영관리부장으로 호흡을 맞췄다. 윤 회장 취임 직후 재무담당 부사장으로 발탁됐다. KB손해보험에선 5년간 대표로 재직하며 인수 후 통합(PMI)에 집중했다.

    기획통ㆍ재무통으로, 회장 취임 당시에는 윤종규 회장 재임 시절 크게 확장된 KB금융의 안정화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됐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취임 이후 3년간 격변하는 환경 아래에서도 그룹 사상 최대 순이익을 이끌어내고, 주주환원율도 4대 금융그룹 중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현장에서도 확장보다는 관리적 리더십이 엿보였다는 후문이다. 고객들이 KB에 가지는 인상이 중요하다며 영업점의 환경과 직원들의 접객 태도에 상당한 신경을 쓴 것으로 전해진다.

    이재근 부문장은 지주에서 재무기획 상무, 은행에서 영업그룹 부행장을 거쳤다. 행장 취임 이후 영업에서 상당한 성과를 냈다는 평가다. 취임 전 2조5000억원대였던 국민은행 순익 규모를 3년간 3조2000억원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국민은행은 이 행장 재임 시절 신한은행ㆍ하나은행을 제치고 리딩뱅크를 탈환했다.

    영업점 운영시간을 6시까지로 연장한 '9To6 Bank'를 확대하고, 산재해있던 앱을 통합하며 KB스타뱅킹 월간활성사용자수(MAU)를 취임 전 900만명에서 2024년말 기준 1400만명까지 끌어올렸다. 기관영업과 상업투자은행(CIB)에 힘을 실어주며 소매영업에 편중해 있던 은행의 영업 구조도 전환시켰다는 분석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지주 영업 환경에 큰 변화가 없던 2010년대라면 양종희 회장의 리더십으로 충분했을것"이라며 "인공지능(AI)과 머니무브, 정치 및 규제 환경 변화가 겹치며 금융그룹이 '변화'를 강요받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이 변수였다"고 짚었다.

    다만 이사회의 결정에 물음표를 제기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최종 후보 발표 직후 조화준 KB금융 회추위원장은 '과감한 변화와 세대교체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발언했는데, 1966년생 만60세로 양종희 회장과 5살 차이에 불과한 이재근 후보를 '세대교체'라고 부를 수 있겠느냐는 의견이다. 이미 업계엔 황병우 iM금융지주 회장, 이찬우 NH금융지주 회장 등 50대 회장들이 활동하고 있다.

    주가도, 실적도 사상 최고치인 상황에서 리더십을 바꾼다고 지금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느냐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양 회장에게 뚜렷한 과오가 없는 상황에서 갑작스런 교체는 경영의 불안정성만 높일 수도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 양 회장과 이사회 사이 미묘한 시각차...윤 회장-조화준 위원장 인연 주목

    금융권 일각에서는 이번 회추위 결과의 배경으로 윤종규 전 회장의 영향력을 꼽기도 한다. 재임 9년간 KB금융을 리딩그룹의 반열에 올려둔 윤 전 회장의 '레거시'(유산)가 이사회ㆍ기업문화 등 곳곳에 남아있는 상황에서, 양종희 회장이 '부정적 후광 효과'의 손해를 봤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회추위원 7명 중 조화준 이사회의장 겸 회추위원장과 최재홍 독립이사(가천대 교수), 김성용 독립이사(성균관대 로스쿨 교수) 3명은 윤 전 회장 재임 당시 선임된 인물들이다. 윤 전 회장의 마지막 3년 임기를 함께하며 비은행 부문의 성장과 그룹 순이익 4조5000억원 돌파를 지켜본 이들이다.

    특히 조화준 회추위원장은 KT그룹 최초의 여성 CEO로, 윤 전 회장이 KT에 사외이사로 근무할 당시(2006~2009년) 자회사 KTF의 CFO를 담당하고 있었다. 2023년 KB금융이 조 위원장을 사외이사로 영입하자 두 사람의 인연이 회자되기도 했다.

    이번 회추위 후보 선정은 최종적으로는 만장일치로 결정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사회 규정상 회장 후보 선임에는 7명의 독립이사 중 5명 이상이 찬성해야 후보가 확정된다. 회추위에서 윤 회장 시절 임명된 독립이사들이 논의를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양종희 회장이 이들 '선임 독립이사'의 마음을 사는 데 실패한 결과란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 3년간 양 회장과 이사회 사이의 미묘한 시각차가 일부 감지되기도 했다. 이환주 국민은행장(1964년생) 선임 당시 나이가 이재근 행장(1966년)보다 많았던 점을 두고 이사회 일각에서 '세대교체 역행'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에도 임기가 만료된 이재근 부문장의 역할론을 두고 양 회장과 이사회가 서로 다른 의견을 냈다는 이야기가 지주 안팎에 흘러나왔다.

    최종후보군(숏리스트) 선정 과정에서도 지주 내부에서는 이환주 행장의 합류를 점쳤지만, 이사회에서 이재근 부문장을 선호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환주 행장은 '나라사랑카드' 사업에서 탈락하는 등 영업면에서 아쉬움이 있었지만, 이재근 부문장은 KB금융의 아픈 손가락인 인도네시아 부코핀은행을 흑자전환 시킨 공로가 있다는 것이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양종희 회장이 윤 전 회장과 비교해 이사회와의 스킨십에 적극적이지 않아 보인다는 시각도 있었다"며 "이재근 후보는 윤 전 회장의 '호위무사'라고도 불렸다는 점에서 윤 회장의 의지가 이번 회장 선임까지 영향을 줬다는 의견이 회사 안팎에 적지 않다"고 말했다.

    지배구조법은 '공회전'...외압 부담이 오히려 이사회 정당화

    이번 회장 선임 절차에서 정치적 외압은 감지되지 않았다. 일각에서 전격적 CEO 교체의 배경으로 지난해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을 꼽기도 하지만, 실제로 큰 영향은 없었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지주 회장 연임을 정치권에서 정말로 문제시했다면, 연초 회장 연임이 확정된 신한금융이나 BNK금융부터 이슈가 됐어야 했다"며 "현재 논의 중인 지배구조법 개정안은 주로 '3연임'을 문제삼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KB금융 회장 선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 회장 선임 절차에 대한 문제의식은 지난해 말 이재명 대통령의 문제 제기에서 시작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금융위ㆍ금감원 업무보고에서 "부패한 이너써클이 생겨 멋대로 돌아가며 지배권을 행사한다"고 지적했다. 이후 금융당국은 지배구조 선진화 태스크포스(TF)를 출범, 회장 3연임 금지 등 개선안을 논의해왔다.

    당초 상반기 중 발표될 것으로 예상됐던 지배구조 개선안은 6월에서 7월로, 다시 7월에서 8월로 발표 시기가 늦춰졌다. 국회도 큰 관심이 없는 상황이다. 3연임 금지 및 연임 시 주주총회 특별결의 의무화 등을 담은 지배구조법 개정안이 법안심사소위원회에 회부됐지만, 아직 실제로 상정돼 논의가 진행되지는 않은 상태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양 회장이 정무위원회 국회의원들을 예방한 자리에서도 분위기가 크게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며 "2022년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ㆍ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의 용퇴 때처럼 금융감독원장이 직접 견제한 상황도 아니고, 지배구조법 개정이 정부ㆍ여당의 우선순위도 아닌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정치적 외압을 거론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사회가 오히려 '회장의 연임이 죄악시되는 분위기'를 활용한 게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이사회의 독립성'을 전면에 내세워 '이변에 가까운 의사결정'을 정당화한 모양새라는 것이다. 

    한 지배구조 전문가는 "지배구조법 개정을 추진중인 정부와 여당이 '독립적 판단을 통해 CEO 교체를 결정한' 이사회를 문제삼기는 어렵다"며 "정치적 외압에 대한 부담이 오히려 이사회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구도를 만든 셈"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