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대통령은 옛말, 국민연금 신임 CIO '종이호랑이' 오명 벗으려면
입력 2026.09.15 07:00

Invest Column
1800조 굴리는 국민연금, 9개월 간의 CIO 공백
흔들린 기조에 불타는 주식시장 뇌관으로 지목된 NPS
투서 난무하며 내홍에 허비한 시간
정풍에 맞서야 할 신임 CIO에 놓인 과제들
전문가 집단, ‘수익률’에만 집중할 환경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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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민연금을 둘러싼 크고 작은 논란들은 상반기 증시 호황이란 착시 속에 묻혀 있었다.

    세계 3대 연기금이란 명성이 민망하게 1800조원에 달하는 국민들의 노후 자금을 배분하고 투자를 총괄하는 최고책임자(CIO)의 자리는 9개월째 공석으로 방치돼 있었다. 연금은 역대급 수익률을 기록했다며 자찬하고 있지만, 증시가 후퇴하면 거품처럼 사라질 장부상 이익이란 점이 자명했고, 이미 막대한 자금을 손에 쥘 절호의 기회는 놓쳐버렸다.

    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은 "이 좋은 장을 기준 때문에 포기하면 우리가 바보가 될 수 있다", "애널리스트가 점쟁이냐" 등 과격한 발언을 쏟아내더니 자산배분 원칙을 이리저리 바꿨다. 급기야 리밸런싱 자체를 유예하며 한국 주식시장의 뇌관으로 지목됐다. 우리나라와 같이 증시에 불이 붙은 이웃나라 일본의 공적연금은 자국 시장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주식을 내다판 주체였는데, 그 결과 주식시장의 자산 쏠림을 완화하고 배분 전략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민연금이 정부의 '증시부양' 대명제를 충실히 이행하고, 동시에 정무적 판단으로 해석될 여지를 남긴 일관성 없는 기준의 변화에 대한 대가는 이제부터 치러야 할 판이 됐다.

    ESG투자, 스튜어드십코드 등 과거에 연금이 앞장섰던 사회적 투자 기조는 흐릿해졌다. 수면 아래서 기업 또는 자본시장과 얼마나 많은 소통을 이어가고 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정작 홈플러스와 같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안에선 이렇다 할 목소리도 내지 못했다. 최근 MBK파트너스가 불 붙인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과정에서 역시 국민연금은 사실상 '중립' 입장을 나타내며 한발 빼는 모습을 연출했다.

    불과 3~4년 전엔 기업을 향한 보다 명확한 메시지를 내며 국민연금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려는 시도가 있기도 했다. 전임 이사장인 김태현 이사장이 재직할 당시, 이사장이 회장 선임절차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자 최정우 전 포스코그룹 회장이 낙마했다. 지난해 임기가 만료한 서원주 전 CIO는 취임 직후 KT 대표이사 선임에 문제를 삼았고, 이후 사기업인 KT의 수장은 반년이 넘도록 공석으로 남았다. 물론 '연금 사회주의' 등 논란만 야기하는데 그쳤는데, 이후 국민연금이 기업의 거버넌스 개선에 앞장서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 낸 사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물론 국민연금 또는 기금운용본부가 중장기 전략을 수정하거나, 기업에 대한 개입을 자의적으로 결정할 권한은 그리 크지 않다. 보건복지부 산하의 기금운용위원회, 기금운용본부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등 외부 인력이 포함된 전문 조직에 의사 결정 권한이 있기 때문에 이사장 또는 CIO의 판단만으로 연금의 전략이 좌지우지 된다고 보기만은 어렵다.

    그렇다고 국민연금이 일련의 행보에 정무적 판단이 깔려 있다고 보는 시선에서 자유롭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방선거와 개각 등 정치적 이벤트에 밀려, 정작 연금의 핵심이자 키맨인 투자 사령탑 CIO의 인선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두 차례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자 대통령의 복심으로 꼽히는 이사장은 각종 투자 현안에 앞장서 방패막이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사실 정풍(政風)에 자유롭지 못한 국민연금의 현실은 내홍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000 실장이 모 국회의원과 친하다더라", "여권 핵심 인사들과 밀접한 관계다", "차기 CIO에 유력한 후보다" 등 외부로 새어 나오는 내부의 목소리들은 투자의 성과와 전략보단 정치적 메시지에 더 가까웠다.

    대내적으로 이름이 오르내린 기금운용본부 내 핵심 중의 핵심으로 거론되던 인사에겐 현재 대기발령 조치가 내려져 있다. 이사장도 아닌, 그렇다고 국회에 불려 다니는 최고 책임자급도 아닌 실장급 인사의 정치적 배경과, 최근의 행보가 일일이 투자자들 입에 오르내리는 상황은 국민연금이 투자와 성과에만 집중할 수 없는 처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투서가 난무하고, 또 확인되지 않은 내용들이 자본시장 관계자들을 넘어 일반 투자자까지 확산하는 모습을 보면 국민연금의 내부통제 수준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오랜 기간 비워진 의자에 앉아야 할 신인 CIO 자리에는 털어내야 할 먼지들이 쌓여 있다.

    이규홍 신임 국민연금 CIO는 사립학교 교직원연금공단 출신이다. 삼성자산운용, ,SG증권 DB자산운용,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 등 민간 자본시장에서 이력을 남겼고, 2019년부터 약 4년간 사학연금의 CIO를 맡아 연기금 운용 경력을 쌓았다. 

    어수선한 조직을 재정비해야 하는 건 당면한 과제다. 최고층에 비(非) 전문가 정치인이 선임되는 건 피하기 어려운 일이나, 최고의 투자 전문가로서 기금운용본부가  오로지 수익률과 안정성이란 불변의 목표 속에 오롯이 투자에만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필요에 따라 이사장과도 맞서야 하는 책무 또한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기둥 역할로서, 호황을 누리면서도 동시에 시장의 불안감을 잠재울 수 있는 묘수를 찾는 것도 급선무다. 국민들의 관심사인 부동산 시장에서 '임대주택' 투자 확대 등과 같은 쟁점에서 국민연금의 명확한 스탠스를 보여줘야 한다.

    정부가 주도하는 국민성장펀드, 이젠 국내까지 투자 대상을 확대할 가능성이 옅보이는 한국투자공사(KIC)의 움직임 속에서 그동안 대체투자시장에서 중심을 잡아온 연금의 위상을 되찾는 것도 하나의 과제로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