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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의 최대 화두는 SK하이닉스가 벌어들이는 막대한 현금을 어떻게 그룹 전반에 돌게 하느냐다. SK하이닉스 지분 20%에 불과한 SK스퀘어를 거쳐 SK㈜로 간 자금이 다시 계열사로 흘러가기까지는 누수가 많다. 이에 SK그룹은 SK하이닉스의 아랫 단에서 과실을 나누는 안을 구상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가 2021년 인수한 인텔 낸드 사업부(옛 솔리다임)는 AI컴퍼니로 사명을 바꿨다. AI컴퍼니에는 SK하이닉스를 비롯해 SK㈜·SK이노베이션·SK텔레콤 등 주요 계열사도 출자자로 나서기로 했다. 기존의 낸드 AI컴퍼니 아래 신설된 솔리다임(Solidigm Inc.)으로 넘겼다. 현 솔리다임의 재무 성과를 계열사들이 나눌 수 있는 구조가 됐다.
솔리다임은 글로벌 투자은행(IB)의 도움으로 상장(IPO)이나 상장전 투자유치(Pre IPO)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노종원 전 SK하이닉스 사장이 주목받고 있다. 그는 미국에서 사모펀드(PEF)를 결성해 스톤브릿지그룹과 손잡고 솔리다임에 투자하는 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 규모만 수조원에 이를 것으로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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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노종원 전 사장은 SK그룹 내 대표적인 반도체 전문가로 꼽힌다. 2011년 하이닉스 인수 당시 실무를 담당했고, 임원이 된 후에는 도시바메모리(키옥시아) 투자, 인텔 낸드 사업부, 키파운드리(옛 매그나칩반도체 파운드리) 투자 및 인수 등을 이끌었다. 작년부터 SK아메리카스로 적을 옮겨 미국 내 반도체 사업 전략을 총괄하다가 최근 회사를 떠났다.
회사가 이왕 투자를 유치한다면 사정을 잘 아는 곳에서 받는 편이 낫다. 그러나 노종원 전 사장은 단순히 회사 사정에 밝은 인사가 아니다. 그는 솔리다임을 인수하고 통합 작업을 거쳐, 경영까지 한 핵심 '내부자'다. 전 CEO가 자신이 소속했던 회사와 옛 부하들을 상대로 '바이어'로 나선 셈이다. 이런 형태의 거래가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금은 회사를 떠났으니 '이해상충' 문제는 없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노 전 사장이 아직 회사에 있던 올해 상반기부터도 PEF를 차려 SK그룹 거래에 참여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내부자로서 투자 거래를 구상한 것이다. SK그룹 측에선 사업을 총괄하는 수장이 그럴 리가 있겠느냐는 반응이었는데, 이 소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구체성을 띠게 됐다.
가장 큰 것은 '정보 비대칭' 문제다.
노종원 전 사장이 업무 중 취득한 정보는 전문 투자자도 확보하기 어려운 것들일 수밖에 없다. 고객 계약이나 원가 정보, 기술 수준, 차기 사업 계획 등을 활용하면 거래 구조를 짜고 조건을 협상하는 데 우위에 설 수밖에 없다. 노 전 사장이 받게 될 투자 기회와 조건이 다른 잠재 투자자들에도 동일하게 부여될 수 있느냐는 물음이 제기될 만하다.
솔리다임이 지금 대규모 자본 유치가 필요한지 미지수다. 회사는 사업부 성격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경영 역량을 갖춰야 하니 외부 투자 유치를 통해 이를 가속화할 필요성이 있다. 다만 기업용 SSD(eSSD) 등 분야에서 사업 성과를 내는 상황에서 굳이 외부 자금이 필요하냐는 지적도 나온다. 상장에 앞서 기업가치를 확인하는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솔리다임은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경영 구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투자 유치를 위한 자문사 선정도 회사가 적극적으로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 해도 그룹 전반에 영향을 미칠 사안은 그룹과 소통하지 않을 수 없다. 투자 논의 역시 그룹 수뇌부와 교감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노종원 전 사장의 솔리다임 투자 논의에서는 SK그룹의 과거 전례들이 떠오른다. SK그룹이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곳간이 커졌고, 주요 경영진들이 기여분과 자기몫을 주장하는 사례도 있었다. SK그룹 옆에서 사업적 이익을 챙기는 곳들도 많았다.
자연히 노종원 전 사장의 행보는 알케미스트캐피탈파트너스와도 겹쳐 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알케미스트는 SK그룹과 관계각 깊은 PEF 운용사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고(故) 은진혁 알케미스트 대표와 돈독한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알케미스트의 거래 상당 수가 SK그룹과 관련된 거래였다.
키파운드리 인수가 대표적이다. 알케미스트는 2020년 다른 운용사(GP)와 PEF를 꾸려 매그나칩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을 인수했다. 당시 SK하이닉스와 새마을금고중앙회가 핵심 LP로 나섰다. 불과 1년 뒤 SK하이닉스가 키파운드리를 인수했다. SK하이닉스는 처음엔 시장 상황의 불확실성을 들어 단순 LP로 참여했다는 입장을 보였다.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가 향후 인수를 염두에 두고 알케미스트를 중간 단계로 활용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다.
알케미스트는 2021년 SK텔레콤의 기지국 설치 등을 맡는 SK TNS를 인수했다. 작년 PEF 만기가 돌아오면서 SK TNS 매각에 나섰는데 팬택씨앤아이와 KCA파트너스가 각축을 벌였다. 팬택씨앤아이를 이끄는 박병엽 회장 역시 최태원 회장과 막역한 관계로 알려져 있다. 알케미스트 측에서는 이런 관계를 감안해 막판까지 어느 쪽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할 것인지 고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거래 종결이 늦어지는 것도 이런 역학관계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 은진혁 대표는 팬택씨앤아이로부터 수십억원을 차입했는데, 알케미스트가 이에 보증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케미스트는 작년에 SK텔레콤의 2억달러 규모 미국 AI 기업 투자를 자문하며 100억원 가까운 자문료를 받았다. 이 역시 차입금 상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SK그룹 측에서 배려한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됐다.
노종원 전 사장의 솔리다임 투자 안건 역시 알케미스트의 행보와 비슷하다. 스톤브릿지그룹의 김지훈 회장은 최태원 회장과 가까운 대표적인 인사 중 하나로 꼽힌다. 과거 SK그룹 관련 거래에서 스톤브릿지가 여러 차례 후보군으로 거론된 바 있다.
노종원 전 사장은 SK C&C를 비롯해 여러 핵심 계열사의 중추적 역할을 맡았다. 한창 미국과의 관계 형성이 중요한 시기엔 SK아메리카스에 몸을 담았다. SK그룹 수뇌부의 이해관계와 노 전 사장의 행보가 맞물려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과도한 상상일까. SK그룹에 몸담고 있던 핵심 인사의 중요 기업에 대한 투자, 이것만으로도 SK그룹과의 이면 거래 가능성에서 완전히 자유롭긴 어려워 보인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노종원 전 사장은 키파운드리 투자를 주도한 인사인데 그 때도 그룹 수뇌부와 연결성을 의심하는 시각이 있었다"며 "노 전 사장이 솔리다임에 투자한다면 제2의 알케미스트가 될 수 있다는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