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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증권사들이 중견·중소기업(SME) 대상 기업금융 전략을 다시 짜고 있다. 기업공개(IPO)나 유상증자, 메자닌 등 당장 자금조달 수요가 있는 기업을 찾아 주관 수수료를 받는 기존 방식만으로는 안정적인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정부가 증권사에 모험자본 공급 확대를 요구하는 가운데 기업을 일찍 발굴해 직접 투자하고 대출·ECM·M&A 등 후속 거래까지 장기간 함께하는 방식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분위기다.
최근 IPO 시장 위축도 이 같은 변화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업공개(IPO)를 통한 주식 발행은 2건, 616억원으로 전월 6건, 1650억원보다 건수는 66.7%, 발행액은 62.7% 감소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일반 IPO 기업은 17곳에 그치며 전년 동기 대비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여기에 지난달부터 중복상장 제도 개선안까지 시행되면서 단순 IPO 주관 경쟁만으로 실적을 쌓기는 더욱 까다로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증권사 내부에서도 기존 SME 영업방식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다. 특히 단기 성과지표(KPI)를 중심으로 영업조직을 운영하면 오히려 재무구조가 좋은 중견기업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워지는 역설이 거론된다.
자금 사정이 좋은 기업은 당장 증자나 메자닌을 발행할 필요가 적은 데다 여러 증권사가 경쟁적으로 접촉하는 만큼 실제 거래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한 대형 증권사 기업금융 본부장은 "단기적인 목표를 두면 우량한 기업을 찾아가기가 어려워진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우량 중견기업은 당장 자금을 빌릴 필요가 없고 한 차례 거래를 검토하더라도 실행 여부가 수시로 달라지는 만큼, 단기간 내 수익을 내야 하는 RM 입장에서는 오히려 즉각적인 자금조달 수요가 있는 기업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기업 규모에 따라 커버리지 대상을 기계적으로 나누는 기존 방식에도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성장해 대기업이 된 고객을 다른 조직으로 넘겼다가 기업 규모가 다시 작아지면 돌려받는 식으로는 오랜 기간 쌓은 기업 이해도와 관계가 끊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중견·중소기업 대상 ECM 업무만 떼어 별도의 수익모델로 만들기도 대형 증권사의 높은 인건비와 조직비용을 감안하면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에 실제 증권사들의 조직과 영업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신한투자증권은 올해 CIB총괄 직속으로 IB종합금융부를 신설했다. 중소·강소기업과 AI·반도체·헬스케어·친환경에너지 등 신성장 산업 기업을 대상으로 종합 기업금융 솔루션을 제공하는 조직이다. 발행어음을 담당하는 종합금융운용부와 연계해 모험자본 공급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기존 기업금융 조직에서도 상품 다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심텍이 추진하는 3000억원 규모 영구 전환사채(CB)의 발행 주관도 맡아 투자자 모집 등 관련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IPO 한 건을 수임하는 데 그치기보다 리파이낸싱·유동화·메자닌 등 기업의 다양한 자금조달 수요를 따라가는 방식이다.
KB증권 역시 올해 기업금융 조직을 재정비하면서 중견·중소기업 커버리지 기능을 기업금융2본부 중심으로 재편했다. 기존 SME금융부를 커버리지2부로 바꾸고 기업금융1본부의 기업금융4부를 기업금융2본부로 옮겨 커버리지3부로 변경하면서 커버리지1·2·3부 체제를 갖췄다.
대신증권은 지난해 말 조직개편을 통해 SME본부를 신설한 뒤 올해 외부 인력 영입 등을 거쳐 9명 규모로 조직 구성을 마쳤다. 중소·중견기업의 유상증자와 CB·BW 등 메자닌 주관 업무에 더해 신기술금융 조직과 연계한 투자 업무도 병행한다.
하나증권도 지난해 말 중소·중견기업 지원을 담당하는 SME실을 별도로 신설했다. 기존 커버리지1·2·3실에서 실무 인력을 재배치해 5명 안팎의 조직을 꾸리는 등 SME 기업금융 전담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정책 환경도 변화를 재촉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발행어음·종합투자계좌(IMA)를 운용하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 7곳은 올해 1분기 총 9조9000억원의 모험자본을 공급했다.
발행어음·IMA 조달액 대비 모험자본 공급 의무비율은 올해 10%에서 내년 20%, 2028년 25%로 단계적으로 올라간다. 금융당국은 증권사들이 성장잠재력이 있는 기업을 직접 선별하고 위험을 부담하는 것이 '증권업 본연의 기능'이라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중견기업이나 A등급 회사채에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자금을 넣는 것만으로 규제 요건을 채우기도 어려워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중견기업과 A등급 회사채 투자액의 경우 전체 모험자본 공급 의무액 가운데 최대 30%까지만 실적으로 인정하도록 했다. 증권사가 보다 초기 단계의 중소·벤처기업이나 지분투자 등으로 투자 대상을 넓히도록 유도하기 위한 장치다.
결국 SME 기업금융의 경쟁 기준도 '당장 딜이 있는 기업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에서 '좋은 기업을 얼마나 일찍 찾아 장기간 관계를 만들 수 있느냐'로 바뀌고 있다는 평가다. 기업의 주식을 직접 보유하거나 성장 단계에서 대출을 공급한 뒤 IPO와 회사채, M&A까지 이어갈 경우 주관 수수료만으로 끝나는 거래보다 장기적인 수익원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IB 관계자는 "좋은 기업은 오히려 당장 증권사에 돈을 빌리러 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기업이 자금이 필요해진 뒤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장 가능성이 있을 때부터 관계를 만들고 투자와 자금조달을 함께하는 방향으로 기업금융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고민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