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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해 회사채 시장을 떠나 은행대출과 기업어음(CP) 등 단기 조달로 버티고 있는 기업들이 내년 초 다시 공모채 시장으로 몰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가파른 시장금리 상승을 피해 장기 회사채 발행을 미룬 기업들의 조달 수요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시장으로 옮겨가 있는 만큼, 통화정책 불확실성이 걷히는 시점에 발행 수요가 한꺼번에 되돌아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9일 발표한 '2026년 8월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8월 은행 기업대출은 한 달 새 9조7000억원 증가했다. 7월 증가액 7조7000억원보다 2조원 늘었다. 대기업 대출만 4조9000억원 증가했다. 한은은 주요 은행의 대출영업 강화와 회사채 상환 등을 위한 기업들의 자금 수요가 맞물렸다고 설명했다. 반면 같은 기간 회사채는 9000억원 순상환됐다. CP·단기사채는 4조1000억원 순발행을 이어갔다.
회사채 시장의 발행 열기도 한풀 꺾인 모습이다. 금융투자협회가 지난 10일 내놓은 '8월 장외채권시장 동향'을 보면 8월 회사채 수요예측 금액은 1조25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 2조1900억원보다 9400억원 줄었다. 전체 채권 발행액 역시 76조6000억원으로 전월보다 8조8000억원 감소했는데, 특수채와 금융채뿐 아니라 회사채 발행 감소도 영향을 미쳤다.
배경에는 빠르게 높아진 시장금리가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7월과 8월 두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올려 2.50%였던 기준금리를 3.00%까지 끌어올렸다. 금투협에 따르면 8월 말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연 3.838%로 전월 말보다 8bp(1bp=0.01%포인트) 올랐다.
장기물 금리까지 전반적으로 상승하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 3~5년짜리 고정금리 회사채를 발행하기보다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낮은 은행대출이나 짧은 만기의 CP로 시간을 벌 유인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증권사 커버리지 현장에서도 회사채와 은행대출 간 가격 차이가 올해 발행시장 위축의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한 증권사 커버리지 담당 임원은 "시장금리는 향후 기준금리 인상을 상당 부분 선반영해 올라와 있는 반면 은행 조달금리는 상대적으로 완만하게 움직이고 있다"며 "기업에 회사채 발행 금리를 제시했을 때 은행대출과의 금리 차이가 너무 크다 보니, 장기로 조달해 불확실성을 없애는 게 좋다고 이야기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기업들이 은행대출 쪽으로 갈 수밖에 없고 실제 은행들도 기업금융 자산을 많이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올해 회사채 발행을 피했다고 기업들의 장기 조달 필요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은행대출은 만기가 돌아오면 다시 차환해야 하고, CP와 단기사채 역시 짧은 만기를 반복해서 연장해야 한다. 시장금리가 안정될 경우 이들 자금 중 일부는 다시 장기 회사채로 갈아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연초는 소위 '연초 효과'로 불릴 만큼 기업들의 연간 자금조달 계획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기관투자가의 신규 자금 집행도 재개되는 전통적인 회사채 발행 성수기다.
시장에서는 통화정책의 '종착점'이 확인되는 시점을 발행 재개의 계기로 보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10일 공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향후 물가와 경기, 금융안정 상황을 점검하면서 "추가 금리인상의 시기와 속도 등을 결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두 차례 연속 인상에도 아직 인상 사이클 종료를 선언하지 않은 셈이다. 추가 인상 가능성이 열려 있는 동안 기업들이 서둘러 장기 금리를 확정할 유인이 크지 않은 이유다.
반대로 추가 인상 이후 한국은행이 당분간 금리 효과를 지켜보겠다는 신호를 줄 경우 시장금리는 기준금리보다 먼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이 시점이 회사채 발행을 미뤄온 기업들의 복귀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게 DCM 업계의 관측이다.
한 증권사 기업금융 관계자는 "지금은 시장금리가 너무 높아 은행대출을 받거나 단기 CP를 돌리는 기업들이 많은데, 금리가 안정되면 이들이 내년 1월께 회사채 시장으로 넘어올 가능성이 높다"며 "올해 발행하지 못하고 미뤄놓은 물량에 원래 내년 초 예정된 차환 물량까지 겹치면 상당한 규모의 발행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 DCM 부서 입장에선 올해와 정반대의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셈이다. 통상 여름 휴가철이 끝난 뒤 추석 전까지는 연말 시장 변동성을 피하려는 기업들의 발행이 몰리는 시기지만, 올해는 주관사들의 발행 일정에도 빈 공간이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한 증권사 DCM 담당자는 "통상 8월 중순 이후부터 추석 전까지 회사채 발행을 많이 하는데 지금은 슬롯이 많이 비어 있다"며 "실제로 시장에 딜 자체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올해 감소한 발행물량 전체가 내년으로 이월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반도체와 조선 등 실적 개선으로 현금흐름이 좋아진 기업들은 실제 외부 조달 필요가 줄었고, 향후 시장금리가 예상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은행대출 선호가 장기화할 수도 있다. 내년 초 발행 러시 여부 역시 향후 기준금리 경로와 크레딧 스프레드, 기관투자가의 채권 자금 유입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올해 회사채 시장의 발행 가뭄이 단순히 기업 자금수요 감소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는 데 시장의 시선이 모인다. 은행대출과 단기금융시장으로 잠시 옮겨간 조달 수요가 적지 않은 만큼, 금리 인상 사이클의 끝이 보이는 순간 올해 미뤄진 물량과 내년 예정된 차환 수요가 겹치며 회사채 시장 분위기가 빠르게 뒤집힐 수 있다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