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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금융당국이 은행장 선임 과정에서 은행 이사회의 역할을 키우라고 주문하면서 금융지주들이 연말 인사를 앞두고 기존 승계 절차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BNK금융이 가장 먼저 은행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의 후보 추천 권한을 확대했고, KB금융과 신한금융 등도 제도 보완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당국이 말하는 '추천권'의 범위에 따라 지주와 은행 간 인사권 조정 폭이 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단순 후보 추천을 넘어 최종 후보 선정까지 은행이 맡게 될 경우 지주 회장의 핵심 권한인 자회사 CEO 인사권이 크게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BNK가 먼저 움직인 은행장 승계절차 개편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BNK금융은 최근 경영승계 절차를 개편해 은행 임추위에 CEO 상시 후보군 추천 권한을 부여하고, 은행 임추위원장이 지주 자회사 CEO 후보추천위원회의 최종 면접에 참석해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최종 후보를 추천하는 지주 자회사 CEO 후보추천위원회 구조는 유지했다.
BNK금융이 먼저 움직인 배경에는 잇따른 당국의 지배구조 개선 요구가 있다. 금감원은 올해 초 BNK금융에 대한 수시검사를 통해 회장 선임 절차 등을 들여다봤다. 지난달에는 경남은행 검사 결과에서 은행장 선임 과정에서 은행 임추위가 실질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며 개선을 요구했다. 당시 BNK금융 자추위가 은행장 후보군 현황과 진행 경과를 경남은행 임추위에 충분히 공유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됐다.
이찬진 금감원장도 지난 15일 금융지주 자회사 CEO 승계 절차가 미흡하다며 후보군 선정과 검증, 평가, 기록 전반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라고 주문했다. 자회사 임추위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점도 직접 언급했다.
BNK금융이 곧바로 승계 절차를 손질하면서 다른 금융지주들도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금융권에서는 연말 주요 은행장 임기 만료를 앞둔 만큼 각 지주가 기존 제도를 유지하더라도 은행 임추위의 역할을 어떻게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있는지 설명하거나 추가 보완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추천권 있어도 제각각…관건은 실제 행사 범위
현재 금융지주들은 은행장 선임 과정에서 은행 이사회의 의견을 반영하는 절차를 두고 있다. 다만 실제 권한의 범위는 지주마다 다르다.
하나금융은 하나은행 임추위가 은행장 후보군의 롱리스트와 숏리스트를 심의·의결해 지주에 전달한다. 이후 하나금융 그룹임추위가 최종 후보를 결정한다. 우리금융도 자회사 임추위가 특정 인물을 지주 자추위에 후보로 추천할 수 있다. 다만 복수 후보 가운데 최종 한 명을 고르는 권한은 우리금융 자추위가 갖는다.
KB금융은 지주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크다. KB금융 계열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후보군을 관리·압축해 단수 후보를 정하면 국민은행 은행장후보추천위원회가 자격요건과 적합성을 검증해 주주총회에 추천한다. KB금융 측은 임추위가 있는 자회사에서 후보군 구성을 위한 후보 추천 절차도 이미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다만 이는 최종 후보 한 명을 정해 지주에 올리는 권한과는 구분된다.
신한금융은 신한은행 임추위가 은행장 자격요건을 정해 지주에 전달하면 신한금융 자회사경영관리위원회가 이를 참고해 후보를 선정하는 구조다. 이후 은행 임추위가 후보의 적격성을 다시 검증하고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거쳐 최종 선임한다. NH농협금융은 농협은행 이사회 의장이 지주 임추위에 배석해 은행 측 의견을 전달한다.
결국 핵심은 추천권의 유무보다 실제 행사 범위다. 특정 후보를 지주 후보군에 올리는지, 후보군 심사와 압축 과정에 참여하는지, 최종 후보 선정까지 관여하는지에 따라 은행 임추위의 권한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는 내규상 '은행장 후보 추천' 권한이 있더라도 이를 의무적으로 행사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해 왔는데, 당국의 해석에 따라 해당 구조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이 가장 주목하는 부분도 당국이 은행 임추위의 역할을 어느 단계까지 확대하려는지다. 은행 임추위가 지주의 상시 후보군에 인물을 추천하고 후보 평가 과정에 의견을 내도록 하는 수준이라면 기존 제도를 일부 보완하는 것으로 대응할 수 있다.
반면 은행 임추위가 최종 후보 한 명까지 직접 선정해 지주에 올리는 구조를 요구할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현재 지주가 최종 후보를 정해 은행에 내려보내는 방식이 은행이 최종 후보를 정해 지주에 올리는 방식으로 바뀌게 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도 지주의 법적 권한이 모두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주요 은행은 금융지주가 지분 100%를 보유한 완전자회사인 만큼 최종 선임은 은행 주주총회 의결을 거친다. 다만 지주가 후보 선정에는 관여하지 않고 주주로서 최종 의결만 하는 구조가 된다면 지금보다 은행장 인사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은행 임추위의 역할을 확대할 경우 지주와 은행이 후보군을 각각 관리하는 중복 문제도 생길 수 있다. 현재 지주 자추위가 내·외부 후보군을 관리하고 검증하는 상황에서 은행 임추위까지 별도의 후보군을 꾸릴 경우 같은 승계 절차를 이중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후보 관리와 최종 추천을 은행에 맡기면 지주가 자회사 대표를 선임하는 기능 자체가 약화될 수 있다.
당국은 자회사 CEO 선임이 지주 회장의 의중에 과도하게 좌우되는 구조를 완화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은행 임추위가 후보군 관리와 평가 과정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해 인사 결정이 특정 주체에 집중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최종 후보까지 은행이 뽑나…지주 역할 놓고 논란
은행 임추위의 역할이 어디까지 확대되느냐에 따라 금융지주의 역할을 둘러싼 논란도 커질 전망이다. 금융지주는 은행·보험·증권·카드 등 자회사를 거느리고 그룹 전체 전략과 경영을 조율한다. 그룹 실적과 경영전략에 대한 책임은 지주 회장이 지면서 핵심 자회사 CEO 인사에는 관여하지 못하는 구조가 적절하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후보자를 추천하는 것과 최종 후보자를 추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라며 "최종 후보까지 자회사가 결정하게 되면 사실상 지주 회장의 자회사 인사권을 계열사에 내려보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개별 회사의 상황은 해당 회사 이사회가 가장 잘 안다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지주와 은행이 각각 후보군을 관리하면 같은 작업을 반복하게 되고, 반대로 선임 권한을 은행에 모두 넘기면 지주가 그룹 전체 경영을 책임지면서 정작 핵심 자회사 대표 선임에는 관여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오는 23일 이찬진 원장과 주요 금융지주 회장들의 조찬 간담회에서도 이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권에서는 당국이 말하는 '은행 임추위의 실질적 역할'이 후보 추천과 평가 과정의 참여를 의미하는지, 최종 후보 선정권까지 포함하는지 보다 구체적인 설명이 나올지 주목하고 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현재도 은행 측에서 후보를 추천하거나 자격요건을 제시하는 등 회사별로 나름의 절차를 운영하고 있어 추천권이 있느냐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며 "은행장 임기 만료까지 3개월가량밖에 남지 않은 만큼 23일 간담회에서 당국이 원하는 역할이 구체화되면 각 금융지주도 그에 맞춰 승계 절차를 빠르게 정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