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자료 참고하라"…증권·보험사까지 떠안은 '생산적 금융 팩트북'
입력 2026.09.21 07:00

당국, 은행 이어 증권·보험사까지 작성 압박 확대
가이드라인 없이 은행권 '150p' 분량 보고서 공유
대중 공개까지 '사실상 의무'…연말까지 급조 부담

  • 증권·보험업계가 뒤늦게 생산적 금융 백서 작성에 나선다. 지난 5월 자발적 참여를 권고했던 금융당국이 최근 전 금융사에 동참을 압박한 결과다. 특히 이미 초안 작성을 마무리한 은행권과 대비되면서 업계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최근 전 금융권에 '생산적 금융 팩트북' 작성을 권고했다. 지난 5월 당국이 처음 아이디어를 제안한 뒤 은행권을 중심으로 팩트북을 준비했는데, 이를 증권·보험사까지 확대한 것이다.

    생산적 금융 팩트북은 각 금융사가 추진 중인 생산적 금융 실적 등을 담은 백서다. 각사는 생산적 금융 관련 실제 집행한 투자 및 계획 등과 함께 전담 조직 및 인력 확충 현황, KPI 반영여부 등에 대해 자율적으로 작성할 수 있다.

    금융위는 지난 5월 처음 백서 작성을 제안했다. 각 금융사가 직접 생산적 금융에 대한 기준을 설정한 만큼 '실적 부풀리기' 가능성에 대한 지적이 나왔던 탓이다. 이에 금융사가 백서를 공개하고, 정부 및 전문가, 시장 참여자 등으로부터 평가를 받는 체계를 구축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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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은행권이 먼저 움직였다. 은행연합회를 비롯해 시중은행 및 각 금융지주가 함께 생산적 금융 실적 취합 및 비교 작성에 나섰다. 약 4개월이 지난 지금 시중은행 대부분이 팩트북 작성기준을 마련하고 보고서 초안을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은 최근 이 '권고'의 수준을 높인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에 따르면 당국은 지난주께 개별 금융사에 4분기까지 팩트북 공개를 준비해야 한다는 내용을 전달했다. 애초 당국이 자발적 참여를 제안했던 만큼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았던 금융사들이 크게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금융지주에 속하지 않은 증권사와 보험사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당장 연말까지 대중에 공개할 만한 수준의 팩트북을 작성하는 건 어렵다는 반응이다. 5대 금융지주와 달리 전담 부서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고,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인력 역시 현저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당국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앞서 팩트북 작성에 나선 은행권도 각 사마다 다른 기준과 분류체계 등으로 혼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금융당국은 이미 작성이 완료된 모 은행의 초안을 공유하며 벤치마킹을 유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과 금융지주가 대상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작성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아 당황스러운 상황"이라며 "현재 준비된 게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어 "ESG보고서만 해도 전담 부서에서 반년씩 걸려 작성하는데, 아무리 팩트북 형태라도 외부에 공개되는 점을 생각하면 간단한 일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당국에서 한 은행의 사례라며 150쪽짜리 보고서를 보여줬는데, 증권사가 은행 것을 참고해봐야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며 "팩트북의 분량이나 품질을 어느정도 맞춰야 할텐데 발행어음, IMA 등 모험자본 실적이 사실상 대부분이라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당국이 금융권의 '자발적 참여'라는 명분을 강조하면서 금융사들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명확한 가이드라인 및 기한 등에 대한 언질이 없는 상황에서 금융사들이 뒤늦게 당국의 압박을 알아차리고 합류하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일부 중소형사는 여전히 팩트북 작성 여부에 대해 확정하지 못했다. 금융위가 팩트북을 처음 제안한 '금융업권 생산적 금융협의체'에는 금융지주 10곳과 증권사 7곳, 보험사 24곳 및 정책금융이 참여한다.

    또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작년 생산적 금융 계획을 제출하라고 할 때도 실제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수일 정도에 그쳐 급조했던 측면이 있다"며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생산적 금융에 대한 진지한 고민보다 포장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