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지분부터 '학습형 지분투자'…해외 M&A 나선 보험사들, 셈법은 '복잡'
입력 2026.09.21 07:00

내수 정체에 해외 금융사 '눈독'…전면 인수 대신 '단계적 지분 확보'
130조 美 메가딜도 '신평사 경고'…법적 리스크·사후 통합 '첩첩산중'
단순 배당 넘어 투심위 참여까지…거버넌스·운용 역량 내재화 '관건'

  • 국내 대형 생명보험사들이 해외 금융 플랫폼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내수 시장 정체와 자본 규제 압박을 벗어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구상이다.

    생보사들은 자본 확보 부담을 덜기 위해 해외 금융사 지분을 단계적으로 확보하는 우회로를 택하고 있다. 100% 전면 인수 대신 소수지분을 통한 '학습형 투자'로 선진 운용 역량을 흡수하거나, 지배지분을 직접 사들여 비보험 영토를 넓히는 방식이다.

    1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대체투자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유럽계 부동산·사모대출 운용사 지분을 잇달아 매입했다. 이어 북미 대형 금융그룹인 프린시플파이낸셜그룹(PFG) 지분 투자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생명은 인도네시아 노부은행(40%)과 미국 증권사 벨로시티 클리어링(지분 75%) 지분을 인수하며 비보험 금융 라이선스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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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손보업계에서도 삼성화재의 영국 로이즈 특종보험사 캐노피우스 지분 확보와 DB손보의 미국 포테그라 100% 인수 등 국경 간 딜이 잇따르며 보험업권 전반의 해외 영토 확장이 가속화되는 추세다.

    생보사들이 해외 금융사로 향하는 배경에는 구조적인 실적 압박이 자리 잡고 있다. 국내 보험수익 성장률이 5%를 하회하고 급격한 고령화로 보장성 보험 신계약 마진(CSM) 창출이 둔화하면서 내수 중심 사업 모델은 한계에 부딪힌 모습이다.

    이에 따라 수익의 상당 부분을 자산운용에서 창출하는 글로벌 선진 보험사처럼 사모신용·인프라 등 고수익 대체자산 소싱 역량을 직접 내재화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업권 전반에 만연한 상황이다.

    해외 시장에서는 장기 부채와 운용 역량을 단번에 결합하는 '메가딜'이 해법으로 부상했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미국 생명·연금보험업계의 코어브릿지와 에퀴터블의 합병(약 220억 달러 규모)은 전액 주식교환 방식으로 양사의 자본 비율을 방어하며 성사됐다. 

    이는 코어브릿지의 운용자산 1000억 달러(약 130조원) 이상을 에퀴터블의 운용 자회사인 얼라이언스번스틴(AB)으로 순차 이관해 운용자산 급증과 위탁 수수료 내재화를 동시에 꾀한 모델이다.

    다만, 합병 직후 S&P가 레버리지 확대와 통합 리스크를 들어 양사를 부정적 관찰 대상으로 지정했다. 미국 투자자문업자법(IAA)상 기존 고객 75% 이상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계약이 흔들리는 '법률적 복병'도 변수다. 이와 함께 양사의 기관형과 개인 자문형으로 나뉜 유통 채널 간 이질성도 막대한 사후 통합 비용 소요 요인으로 지목됐다.

    국내 생보사들의 사정은 더욱 복잡하다. 대등 합병이나 직접 경영권 인수를 가로막는 규제 탓에 '학습형 지분투자'라는 우회로를 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국내 상장 생보사는 상법상 제약 탓에 미국식 전액 주식교환 방식을 적용하기 어렵고, 현금 매수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형 딜 집행 시 가용자본 차감과 요구자본 증가 등으로 킥스(지급여력) 비율이 급락하는 자본 부담이 수반된다. 여기에 보험업법상 '자회사 소유 한도 규정'에 따라 직접 대규모 지분을 사들이는 방식은 제한되는 상황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현재 대형 생보사의 경우 자회사 소유 한도 규정 캡(한도)에 매우 근접해 있어 해외 금융사 지분 확보에 있어 운신의 폭이 제한된 상태"라며 "결국 사모펀드(PEF)나 블라인드 펀드를 통해 출자하고 타 금융사와 지분을 쪼개 들어가는 간접 투자가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라고 말했다.

    투자 우회로는 열었지만, 대규모 자산 이관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사업 시너지를 끌어내기까지는 현실적 제약이 뚜렷하다. 미국 합병 사례처럼 피인수 운용사로 국내 캡티브 자산을 대거 넘겨 운용 마진을 극대화한다는 구상은 국내 현실과 괴리가 크다.

    실제로 국내 보험자산을 해외로 대규모 위탁 배분한 선례 자체가 전무하다. 높은 환헤지 비용과 현행 외환 익스포저 한도를 비롯해 킥스 규제상 외환·신용 위험액 증가 등으로 물리적 자산 이전의 실익이 낮기 때문이다.

    부채 관리와 자산운용이 분화된 영미권과 달리, 모든 기능을 단일 법인이 도맡는 국내 '종합보험사' 체제도 자산 이관의 구조적 걸림돌이다.

    결국 단계적 지분 매입을 통한 '학습형 투자'가 일방적인 '수업료 지불'에 그치지 않으려면, 시너지 창출 방식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업계 지적이 나온다.

    소수지분 투자가 단순히 장부상 배당 수취에 머물러선 안 된다는 설명이다. 이사회나 투자심의위원회에 직접 참여하는 '거버넌스 권리'를 계약 단계부터 확보해, 현지 금융사의 의사결정 체계를 모회사로 온전히 흡수할 필요성이 부각된다.

    이어 해외 자산 이관 대신, 현지 플랫폼이 조달한 우량 사모대출(PD)이나 인프라 자산을 국내 퇴직연금·변액보험 라인업으로 들여오는 '역수입' 파이프라인 구축도 필수적이라는 관측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 보험사의 상대적으로 취약한 자산운용 경쟁력을 감안할 때 해외 진출은 일종의 '수업료'를 지불하는 장기적 학습 과정"이라며 "당장의 정량적 재무 수치에만 매몰되기보다 정성적인 내적 역량 축적과 사후 통합(PMI) 리스크 통제가 뒷받침되어야 실질적인 결실을 볼 수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