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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금리 인하를 기다리며 자금 조달을 미뤄왔던 국내 기업들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국내 회사채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자 은행대출과 단기자금, 외화채 등으로 조달 창구를 옮겨왔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마저 긴축에 다시 시동을 걸면서다. 원화와 달러 조달 비용이 동시에 높아지면서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싼 자금을 찾아 움직일 수 있는 '피난처'가 좁아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연준은 지난 16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기준금리 목표범위를 연 3.50~3.75%에서 3.75~4.00%로 0.25%포인트 올렸다. 2023년 7월 이후 3년2개월 만의 인상이다. 이번 결정은 FOMC 위원 12명의 만장일치로 이뤄졌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하며 금리 인상의 배경으로 물가 안정을 들었다.
문제는 이번 인상이 한 차례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9월 공개된 연준 경제전망에서 FOMC 참가자들이 제시한 올해 말 정책금리 중간값은 4.1%로, 지난 6월 3.8%에서 0.3%포인트 높아졌다. 현재 정책금리 중간값이 3.875%라는 점을 고려하면 연내 추가 0.25%포인트 인상을 시사한 셈이다.
국내 금리도 이미 인상 국면에 들어섰다. 한국은행은 지난 7월 기준금리를 2.50%에서 2.75%로 올린 데 이어 8월 다시 3.00%로 인상했다. 2024년 10월부터 이어졌던 인하 사이클이 끝나고 두 차례 연속 금리를 올린 것이다. 한국은행은 물가와 성장, 금융안정 상황을 점검하면서 추가 인상의 시기와 속도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회사채 시장에는 이미 부담이 반영되고 있다. 연준의 금리 결정을 소화한 지난 17일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연 4.063%, 무보증 AA-등급 회사채 3년물 금리는 연 4.726%에 거래를 마쳤다. AA- 3년물 금리는 2023년 1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 6월 말 국고채 3년물 3.733%, AA- 회사채 3년물 4.396%와 비교하면 약 석 달 만에 모두 30bp(1bp=0.01%포인트) 가량 뛴 셈이다.
기업들은 이미 비싼 회사채를 피해 은행으로 움직이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8월 은행권 원화 기업대출은 한 달 새 9조7000억원 늘어 잔액이 1430조8000억원에 달했다. 특히 대기업 대출이 4조9000억원 증가했다. 한국은행은 주요 은행들의 영업 확대뿐 아니라 회사채를 상환하려는 기업들의 자금 수요가 대기업 대출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반면 같은 달 회사채는 9000억원 순상환됐다.
현재까지는 은행대출이 회사채보다 가격 측면에서 유리한 구간이다. 지난 7월 기준 예금은행의 신규 기업대출 평균금리는 연 4.20%, 대기업 대출은 연 4.18%로 집계됐다. 당시에도 AA-등급 3년물 회사채 금리는 4%대 중반까지 올라온 상태였기에, 기업 입장에서는 4% 후반의 회사채를 찍는 대신 거래은행과 대출을 협의하는 것이 비용 면에서 유리했다.
다만 이 같은 대출의 가격 우위가 계속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기준금리 상승은 시차를 두고 은행의 시장성 조달비용과 대출금리에도 반영된다. 여기에 5대 시중은행이 올해 4분기에 차환해야 할 은행채 규모만 27조1000억원으로 집계된다. 저원가성 수신 증가세가 둔화된 상황에서 은행채 발행까지 늘어나면 기업들이 그동안 활용해온 은행대출의 가격 메리트도 점차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달러 조달 역시 뚜렷한 대안이라고 보기 힘들어졌다. 연준의 추가 긴축 가능성이 커지면서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5% 안팎의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 기업의 달러채는 통상 동일 만기의 미 국채 금리에 신용스프레드를 더해 가격이 정해지는 만큼 미 국채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수록 발행 비용도 함께 높아진다.
실제로 최근 달러 조달을 추진했던 두산에너빌리티는 주관사단까지 꾸렸지만 외화채 발행 계획을 철회하기도 했다. 당시 미 국채금리가 상승하면서 회사가 내부적으로 설정한 목표금리와 실제 시장 금리 사이의 차이가 커진 것이 주요 배경으로 꼽혔다. 해외 사업을 위해 달러가 반드시 필요한 기업을 제외하면 고금리를 감수하면서 외화채를 찍을 유인이 크지 않다는 평가다.
환율도 부담이다. 연준의 금리 인상 직후인 17일 원·달러 환율은 하루 만에 13.6원 오른 1382.2원에 마감했다. 지난 9일 1336.1원까지 내려왔던 환율은 불과 6거래일 만에 46.1원 올랐다. 달러 강세가 이어지면 외화채를 발행한 뒤 원화로 바꾸거나 환헤지를 하는 과정의 비용 계산도 한층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회사채 시장에서 투자 수요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달 초 코웨이는 2000억원 규모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1조8000억원을 모았고, 하나증권도 3000억원 모집에 2조원 넘는 주문을 받았다. 우량 기업의 채권을 높은 금리에 담으려는 기관 수요는 여전히 탄탄하다는 의미다.
기업 입장에서 문제는 '돈을 구할 수 있느냐'보다 '얼마를 주고 구해야 하느냐'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시장에서는 올해 회사채 발행을 미루거나 은행대출로 대체한 기업들의 부담이 내년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거론된다. 일반 기업대출의 만기가 통상 회사채보다 짧은 만큼 올해 늘어난 대출의 차환 시점이 돌아오고, 올해 미뤄둔 회사채 발행까지 겹치면 내년 시장의 공급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통상 11월 중하순부터 기관투자가들의 북클로징이 시작되는 점을 감안하면 기업들이 올해 장기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발행 창구도 사실상 9~10월에 집중돼 있다.
한 증권사 DCM 담당자는 "한국과 미국이 동시에 긴축으로 돌아서고 원화채와 미 국채금리가 함께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선택지별 비용 차이는 빠르게 좁아지고 있다"라며 "조달시장이 닫힌 것은 아니지만, 싸게 돈을 구할 수 있는 창구를 찾아 이동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