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권' 한마디로 인사판 흔든 금감원장...모호한 지배구조 주문
입력 2026.09.21 13:44

취재노트
당국과 함께 만든 승계체계…이제 와서 왜 '미흡'한가
은행 권한 키우면 답일까…지주 책임, 인사권은 어디로
연말 인사 코앞에 새 잣대…바꿀 이유부터 설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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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회장 선임 땐 영(令)이 서지 않았으니, 연말 계열사 인사권을 빌미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 아닌가. 다만 현재 금융지주의 인사권이 어떻게 행사되고 있는지는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은 것 같다." (한 금융지주 임원급 관계자)

    금융감독원이 금융지주의 은행장 선임 방식에 다시 손을 대고 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대부분 금융지주의 자회사 최고경영자(CEO) 승계 절차가 미흡하고 자회사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의 역할도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이 원장이 문제로 든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CEO 자격요건이 추상적이고 후보 압축 단계별 검증기간이 충분하지 않으며, 상시후보군 관리와 후보 압축, 검증 절차도 형식적이거나 불투명하다고 봤다. 지배구조 모범관행에 따라 지주 자추위가 후보군 현황을 공유하거나 은행 임추위에 추천권을 부여한 곳도 일부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금융권에서도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만들자는 취지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후보 검증이 요식행위에 그치거나 특정 인맥과 계파가 CEO 선임을 좌우한다면 당연히 손봐야 한다.

    다만 여기서 두 가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자격요건을 구체화하고 검증기간과 후보 평가 기록을 충실히 남기는 것은 승계 절차의 완성도를 높이는 문제다. 반면 은행 임추위가 후보 선정 과정에서 어디까지 권한을 가져야 하느냐는 지주와 자회사 사이의 인사권 배분을 다시 짜는 문제다.

    지금 금융권에서 나오는 질문도 여기에 있다는 평가다. 지금까지 운영해 온 선임 체제 자체를 바꿔야 할 만큼 무엇이 잘못됐느냐는 것이다.

    현재의 승계 구조 역시 금융당국과 지주 이사회 사이 치열한 샅바 싸움의 끝에 정립된 것이란 분석이다. 금융당국이 업계와 논의해 마련한 지배구조 모범관행에 맞춰 각 지주가 제도를 손질해왔다. 

    은행 임추위가 자격요건을 정해 지주에 전달하고, 지주가 후보를 선정하면 다시 은행이 적격성을 검증하는 곳도 있다. 은행이 직접 후보군에 인물을 추천하는 곳도 있다. 방식은 달라도 은행 이사회가 승계 과정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각사 나름대로 제도에 반영해왔다.

    실제로 일부 금융지주와 은행들은 당국의 정기검사 등에서 이 같은 구조를 설명했고 당시 별도 지적을 받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기존 방식 역시 모범관행에 부합한다고 판단해 운영해왔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금감원장이 갑자기, 이런 체계를 '미흡하다'고 규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 방식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했고, 은행 이사회의 권한을 더 넓히면 그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지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 감독당국이 함께 만든 기준 아래 금융회사들이 운영해온 체제를 바꾸려면 적어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있어야 한다.

    은행 임추위에 후보 추천 권한을 넓힌다고 지배구조가 반드시 좋아진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지금도 지주가 내·외부 후보군을 관리하고 여러 차례 검증을 거친다. 은행이 같은 작업을 별도로 수행하면 절차가 중복될 수 있다. 반대로 후보 관리와 최종 추천까지 은행에 맡긴다면 그동안 지주가 맡아온 역할을 왜 축소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특히 은행은 국내 금융지주에서 가장 큰 자회사다. 그룹의 실적과 전략에는 지주 회장이 책임을 지면서 은행장을 고르는 과정에서는 영향력을 최대한 줄이는 구조가 책임과 권한의 균형에 맞는지도 따져볼 문제다. '제왕적 회장'을 견제한다는 명분만으로 기존의 지주·자회사 간 역할 분담을 흔들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당국이 언급한 '추천권'의 의미도 아직 선명하지 않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은행 임추위가 지주가 관리하는 후보군에 특정 인물을 추천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인지, 후보 평가와 압축 단계에 더 깊게 관여하라는 것인지, 최종 후보 한 명까지 은행이 정하도록 하겠다는 것인지에 따라 제도 변화의 무게는 전혀 달라진다.

    전자라면 기존 제도를 보완하는 수준이다. 후자라면 사실상 지주가 행사해 온 핵심 자회사 인사권을 은행으로 옮기는 문제가 된다. '은행 임추위의 실질적 역할'이라는 표현만으로 이 정도의 변화를 요구하기에는 설명이 부족하다.

    감독당국은 금융회사의 잘못된 관행을 바꿀 권한도, 책임도 있다. 기존 모범관행이 부족했다고 판단해 기준을 다시 손볼 수도 있다. 그러나 감독수장이 새로운 답을 내놓았다는 이유만으로 기존 체제가 곧 잘못된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만들어 온 '룰'을 흔들려면 무엇이 잘못됐고, 새 방식이 왜 더 나은지부터 충분히 들여다보고 설명해야 한다.

    금감원장은 은행장을 비롯, 계열사 인사가 불과 3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갑작스레 문제를 제기했다. 그리고 오는 23일 주요 금융지주 회장들과 만난다. 당장 10월이면 인사를 위한 실적 평가와 고과 측정이 시작된다. 발언 시점도, 의도도 이해가지 않는다는 반응이 금융권에서 제기되는 이유다.